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3/2013042302603.html
대표적인 보수 인터넷 커뮤니티로 알려진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운영자가 서울의 한 대형 대학병원에서 현직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전문의 A(33)씨인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일베’는 지난해 총선·대선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규모가 커진 인터넷 사이트로 보수 성향을 보이며 논란의 중심에 자주 섰다. 사이트 운영자에 대해서는 그간 알려진 바가 없었다.
A씨는 대부분의 병원 동료들에게도 자신이 ‘일베’ 운영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낮에는 의사, 밤에는 일베 운영자’로 생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닷컴 취재결과 A씨는 최근에 ‘일베’ 사이트를 12억원에 매각하기 위해 인터넷 업계에 종사하는 다양한 인사들을 직접 접촉해 협상을 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이미 A씨가 12억원에 ‘일베’ 사이트를 팔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베’는 최근 국제 해킹그룹 ‘어나니머스’가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회원정보를 해킹해 공개하자 여기에 가입한 국내 네티즌들에 대한 대대적인 ‘신상털기’에 나서 논란을 일으켰고, 영국 BBC가 낸시랭을 초청해 공연을 한다는 사실이 전해졌을 땐 회원들이 BBC에 수백통의 항의 메일을 보내 공연을 취소시키기도 했다.
◇“의대 교수하려면 ‘일베’ 운영자라는 사실 밝혀지면 안돼”
지난 2월 인터넷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B씨는 “A씨가 12억원에 ‘일베’를 매각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서울 시내에서 A씨를 직접 만나 매각 협상을 벌였다.
B씨는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사이트가 아주 잘 되고 있을 텐데 왜 매각하려 하는지 나도 궁금했다”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자신을 ‘일베’ 운영자 아이디인 ‘새부’로 소개한 A씨는 협상 자리에서 현직 의사인 신분을 밝힌 뒤 “의대 교수가 돼야 하는데 내가 일베 운영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평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협상은 12억원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가격 조건이 맞지 않아 당일 매각은 성사되지 않았다. 며칠 뒤 B씨측은 “사이트를 12억원에 사겠다”고 다시 연락했지만 A씨측으로부터 “12억에 매입하려는 곳이 원래 한 곳 있었는데 그쪽에 이미 팔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최근 ‘일베’의 한달 광고 수익이 7000~8000만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이트를 1년간 유지했을 때 12억 정도의 기대 수익이 난다고 본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인터넷 도메인 등록업체에 따르면 ‘일베’ 사이트의 도메인 주소 정보는 지난달 21일 날짜를 기준으로 갱신됐다. 메인 서버가 변경됐다거나 도메인의 상태가 변경되면 도메인 정보가 갱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씨는 “사업자가 새로 바뀌어서 도메인을 갱신한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도메인 기간이 만료되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면서도 “업계에서는 이미 ‘일베’가 매각됐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과도한 ‘일베’의 정치적 편향성 부담스러워한 듯
지난해부터 ‘일베’가 과도한 정치적 편향성을 지니게 되자 A씨가 이를 부담스러워 매각을 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일베’는 애초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어 낸 ‘디씨인사이드’ 사이트에서 파생됐다. ‘디씨인사이드’에서는 그날그날 올라오는 게시물 중 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몇개의 글을 따로 모아 ‘일간베스트’라는 코너를 만들어 별도로 관리했다.
하지만 보통 음란한 내용의 글이나 사진, 호남 비하(卑下) 등 지역주의 조장 게시물 등 격한 글들이 최다 조회수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다. ‘디씨인사이드’ 측이 이를 계속 삭제하자 A씨는 2010년 삭제된 글만 따로 모아두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게 ‘일베’였다. ‘일베’의 원래 이름도 그래서 ‘일간베스트 저장소’다.
일베는 지난해 총선을 시작으로 안철수 대선후보의 출마, 대선 등 연이은 정치적 이벤트를 거치며 급팽창했다. 대선이 있었던 지난해 12월 3주차의 주간 방문자만 96만명에 달했다.
‘일베’는 대선 때 캠프 대변인들이 공식적으로 거론할 정도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의 진성준 대변인은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일부 회원들이 인터넷 여론조작을 지시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고,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의 안형환 대변인은 “일간베스트는 순수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공간으로 유명하다”고 반박했다.
‘일베’는 그밖에도 과도한 호남·광주 비하와 여성 비하 글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등의 태도가 문제가 됐다. ‘신고 당하지 않고 강간하는 방법’ 같은 글이나 성폭행을 모의하는 듯한 글들도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컴퓨터 천재’ A씨, “난 일베와는 관련 없다” 부인
A씨는 그동안 철저히 신분을 숨겨왔다. 병원 직원들은 A씨에 대해 ‘인터넷 전문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뿐 ‘일베’와의 관련성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A씨가 일베 운영자라는 사실을 호남 출신 여의사 동료가 알게 되면 상황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했다. ‘일베’가 논란이 될 때마다 사이트 운영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던 만큼 A씨가 여기에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A씨는 업계에서도 ‘컴퓨터 천재’로 불렸다. 의사인 신분 때문에 ‘제2의 안철수’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A씨는 과거에도 채팅 사이트 등 다양한 사이트를 만들고 매각했던 경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2일 병원에서 만난 A씨는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먼저 “일베 때문에 오셨느냐”고 했다. 그는 “나는 이제 일베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매각을 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A씨는 “일베의 웹마스터에게 물어보라”며 “(매각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답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본인이 ‘일베’ 운영자라는 사실에 대해 A씨는 “인터넷에 잘못된 정보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변호사를 통해 모두 대응할 방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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