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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첫차의 추억
게시물ID : car_359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태풍적토마
추천 : 16
조회수 : 1938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11/04 10:45:14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32569&s_no=132569&page=19
 
남자친구분이 화물차를 운전한다고 창피해야 하냐고 하신분의 글을 보고 갑자기 우리집 첫차가 생각이 나서 글써봅니다.
 
제가 어릴때부터 아버지께서는 택배업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집에는 차가 없었습니다. 택배상하차와 거래처관리가 주된업무셨죠.
 
그러다가 대학교 1학년때였던가 집에 차가 생깁니다.
 
아버지 회사에서 지입차가 필요한데 직원들에게 구입하라해서 그렇게 우리집 첫차가 탄생합니다.
 
나에게 운전을 가르쳐준 녀석...
 
그차가 폐차할때 썼던 제 일기입니다.
 
opti1316350574.jpg
 
SV110: 삼성트럭 일본의 1톤트럭을 그대로 들여와 한국실정에 맞게 좌핸들로 개조하고 후에 이름을 야무진으로 바꾼 놈이다.
몇마력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여튼 현대나 기아의 1톤트럭보다 힘이 좋아 렉카차로 많이 쓰였다.
 
실질적인 우리집 첫차 나에게 운전을 가르쳐준 친구
이차로 내가 진짜 운전이라는것을 배웠고 무엇보다 우리집의 밥줄이었다.
이 친구 때문에 누나도 나도 대학공부도 하고 힘든IMF도 이겨낼수 있었다.
시골의 황소같은 역할을 이녀석이 묵묵히 해줬다. 그러고보니 색깔도 똥색이네...
 
며칠전 초겨울이 되고부터 요놈이 겔겔 거렸다.
부산에 어지간한 언덕도 무거운 짐을 싣고도 힘차게 올라갔었는데
창원터널 오르막길에서 퍼진것이다.
새벽5시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차가 퍼져서 길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다는 것이다.
 
내차를 끌고 언덕으로 가보니 이놈이 조용히 새벽산 안개속에 잠들어 었다. 그래도 비상등은 들어오는걸 보니 아직 완전히 간건 아니구나 싶어서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워낙에 부품수급이 어려워 소모품도 제때 못갈고 26만키로를 견딘놈이다. 일단 내가 차에 타서 시동을 걸어봤다.
겔겔거릴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몇번 더 이놈을 깨웠으나 거친숨만 내뱉을뿐 전혀 미동도 없었다.
 
다른차에게 방해되지 않게 좋게 보내주자 싶어 일단 차를 끌어서 갓길에 대기로 했다. 내차에 로프를 매어 출발했는데 세상의 끈을 놓기 싫은지 몇번이나 로프가 터졌다. 10톤넘는 하중도 견딜수 있는건데 자꾸만 실밥이 터져 나갔다. 결국 로프를 제대로
아버지께서 트럭에 타시고 나는 내차에 타고 다시금 출발했는데 일이 터졌다. 오르막길에서 로프가 끊어져 이놈이 브레이크도 들지 않은채 50미터 정도를 미끄러졌다. 나도 전속력으로 후진했는데 도저히 막을수가 없었다. 그 짧은 10여초가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나는 더이상 룸미러를 볼 수없었다. 쿵!
 
아~ 어쩌지? 아버지가 걱정돼어 차에서 뛰어서 내려갔다 그런데 다행히 옆에 바퀴한쪽이 고랑에 빠진채 아버지께서는 하나도 다치시지 않으셨다.
 
휴~ 끝까지 주인을 지켜주고 가는놈 덕분에 이놈의 외관은 만신창이가 됐다. 유리가 깨지고 문짝이 찌그러지고 마지막까지 널 고생시키는구나......
 
출발할때 부른 렉카가 이제야 도착했다. 고랑에 빠져서 구난후 견인했는데 한쪽 바퀴가 고랑에 끼여서 꿈쩍을 안했다. 이 친구와 같이 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시험에 떨어지고 방황할때 아버지를 도와 일하면서 차에서 자고 밥도 먹고 음악도 듣고 일도하고 좋은일 슬픈일 다 같이 했는데 남들에게는 그저 고물트럭이지만 나에게는 친구같은 존재였다.
그런생각에 잠겨있는데 덜그럭 소리가 났다.
이제 미련이 없다는듯이 바퀴가 고랑에서 빠졌다.
 
견인돼어 가는 이놈을 차에서 바라보니 운구차를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보이는 공터에 이놈을 내려 놓으니 이제 정말 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찡했다.
 
아버지께서도 섭섭하신지 연신 창밖을 내다보시며 한숨을 쉬신다. 그도 그러실것이 아버지의 다리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결근이라고 모르시는분이 이놈이 이래돼니 하루를 결근하시고 아예 집밖에 나가시지도 않으셨다.
 
3인승이지만 우리4가족이 끼어서 다타도 벤츠 부럽지 않게 행복했었는데 고맙다. 친구야
지금쯤 어디 고철이 돼어 있겠지? 너는 한낱 차가운 쇳덩이에 불과할지 몰라도 너와 함께한 추억들은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 이 다음에 내가 어떤 좋은차를 타더라도 그때 너랑 보냈던 그 시간만큼은 행복하지 않을것 같다. 다 찢어진 시트와 덜덜거리는 문짝도 너랑 함께면 행복했는데 그때 그 마음 잊지않고 열심히사마 너도 잘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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