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임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즐겨한다.
게임을 하다보면 정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미없는 사람도 있고
초보자라는 이유로 조건없는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보자라는 이유로 등쳐먹는 사기꾼같은 사람도 있다.
나처럼 게임을 못하는 사람도 있고, 잘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있다.
나는 게임을 하면서 참 여러부류의 나쁜 사람들을 만났다.
어릴적 집이 pc방을 했었기에 나는 어린나이에 컴퓨터게임을 접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했고, 그 후로 그랜드체이스, 라그나로크, 바람의나라, 마비노기, 크레이지 아케이드, 윙또, 샤이닝로어, 포립, 포트리스2, 디아블로, 캐치마인드, 배틀가로세로, 뮤, 해피시티, 붉은보석, 미르의전설, 열혈강호, 네오다크세이버 등등 그 시대에 나온 온라인 게임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 해본 경험이 있다.
pc방 의자를 최대한 올리고, 옷을 깔아서 앉아야 책상과 키가 맞았던, 게임을 좋아하던 열살의 꼬마는 이제 스물 두살이 됐다.
(키는 안타깝게도 그때와 많이 다르지 않다...)
12년이라는 적지않은 시간동안 게임을 해 왔으며, 나이로 따지면 내 생에 절반 이상을 게임과 보낸 셈이다.
그런 내가 보기에, 예전에 비해서 게임에 대한 인식은 굉장히 많이 바뀐 것 같다.
내가 처음 라그나로크를 시작하고, 뭣도모르고 도둑벌레를 때렸다가 수많은 도둑벌레들에게 다굴맞아 죽었을 때,
(도둑벌레는 바퀴벌레처럼 생긴 몬스터로, 한마리를 때리면 인근에 있는 도둑벌레가 다 같이 달려들어서 다굴한다. 징그럽고 빡친다.)
그런 나에게 몬스터를 어떻게 잡는지, 스텟과 스킬은 뭘 올려야 하는지 알려주고, 포션을 사 주거나 장비를 맞춰주면서 '괜찮으면 같이 게임하지 않겠냐'고 물어봐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나처럼 나이도 어린애가 게임하는건 처음봤다면서 많은걸 도와주셨다.
파티를 맺고 사냥을 가면 그렇게 재미있을수가 없었다.
난 사냥같은 단순 반복적인 작업은 싫어하지만, 그 파티에선 사냥하면서 대화도 많이 나누고, 서로 장난도 많이쳤다.
그렇게 사냥하다가 누군가가 확성기(라그나로크에선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외침말같은 그 서버 내에서 모두가 볼 수 있는 시스템)로, 자신의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했다.
우리는 그사람이 너무 안됐다고 생각했고, 귓속말로 위로의 말을 보냈다.
그 사람은 다시 확성기로 "위로해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친구와 함께 했던 게임이라 생각나서 들어와봤는데, 친구 아이템도 계정도 그대로있는데 친구만 없는게 너무 슬퍼서 괜히 게임에다가 폐를 끼쳤네요." 라고 썼다. (오래전일이라 잘은 기억안나지만 대충 저런말이었다.)
우리는 다시 귓속말로 괜찮다고 위로해줬고, 한동안 확성기로 그 사람과 죽은 친구를 기리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그 후로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내가 고등학생이 됐을 때, 유료화였던 라그나로크가 무료서버를 연다는 말을 들은 나는 라그나로크를 설치해서 바로 무료서버에 캐릭터를 생성했다.
솔직히 말해서 라그나로크는 예전에 내가했던 그 게임과 느낌이 많이 달랐다. 색은 굉장히 탁했고 캐릭터들의 움직임도 그럭저럭이었다. 위치렉은 심해서 선공몬스터에게서 빠져나오려고 도망가면 갑자기 몬스터에게 이끌리면서 한대 맞고, 도망가면 또 끌려와서 맞고 하다가 죽고 그랬다.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라그나로크는 단지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추억이 되면서 한껏 미화된 철지나고 유행지난 게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추억에 계속 미련이 있던 나는 그 모든 불편을 감수하면서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즐겁게 대화하면서 파티사냥을 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파티에 들어가서 사냥을 하던 나는 곧 다른 파티원에게 "그렇게 떠들고 놀지말고 사냥이나 해라" 는 말을 들었다.
금방 사냥에 질린 나는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곧 누군가가 확성기로 "자기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 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이 안쓰러웠다.
물론 누군가는 '게임에서 왜 저런소리를 해? 관심받고싶나?' 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굉장히 소심하기에 현실에서도 친구가 적었고, 그런 나는 무리에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위해 공통된 화제가 필요했던 또래들에게 좋은 뒷담화대상이 되었다. 원체 소심했던 나는 그로인해 더 소심해졌고, 초등학생때부터 고등학생때까지는 친한 친구랄게 딱 두명밖에 없었다. 나는 사람을 상대하는게 무서웠다. 내가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표현하기 힘들었고, 내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표현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친한 친구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모든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줄 아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은 게임속이었다. 혼자 있어도 아무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도 않고, 내 외모로 나를 평가하지도 않고, 모두가 동등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기에 나는 그 학생이 왜 게임에서 확성기로 자신의 고통을 고백했는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 학생에게 귓속말로 응원을 보내려던 나는 그 다음 확성기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건 니가 병x이라 그래"
"왕따당하는게 뭐 자랑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 애미가 존1나 자랑스러워 할듯 ㅉㅉㅉ 그렇게 살지마라"
내가 귓속말로 '다른 확성들은 모두 무시하라'고 말해주려 했을때 이미 그 학생은 게임을 나간 후였다.
나는 담배연기가 싫어서 pc방에 자주 가지않는다.
우리집에 pc방을 했었을때는, 어른들이 담배를 피다가도 옆자리에 아이가 앉으면 담배를 껐고, 아이들이 많은 시간대에는 담배를 피지 않았다. 간혹 담배를 많이 피우는 손님이 있으면 사장인 삼촌이 가서 "아이들이 많으니까 담배를 좀 꺼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하면 대부분 수긍하고 담배를 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기관지가 좋지않아 pc방을 꺼리긴 하지만 게임 이벤트는 간혹 pc방 대상으로 열리는 경우가 있으며, pc방에서는 경험치나 돈도 더 잘 벌리기에 가끔 pc방에 가곤한다.
갈때마다 늘 똑같은 풍경이다. 어른이고 애고 할것없이 마구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거나 썅욕을 한다. 욕을 하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하다. 같은팀이 못해서,
같은팀이 실수해서,
적팀이 못해서,
렉이 걸려서,
적한테 죽어서,
아군이 적한테 죽어서,
내가 시키는대로 하라고,
게임을 드럽게 못한다고
그 외에 기타등등 참 여러가지 사유로 욕을 한다.
나는 담배냄새보다 그런 욕설이 듣기 싫어서 pc방을 잘 안 간다.
그런 욕은 어디서 배웠는지 변성기도 오지 않은 고음까지 올라가는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욕을 해 대는 애들도 싫고
그런 애들이 몸만 자랐다 뿐이지 어른으로써의 면모는 거뭇한 턱수염과 목소리와 덩치 외에는 없는 애같은 어른들이 게임에서 졌다고 테이블을 걷어차거나 마우스를 세게 내려찍는 모습도 싫고
게임머니를 벌려고, 레벨업을 하려고 인상을 팍 구기고 전혀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싫다.
그 사람들은 게임의 본질을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나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게임을 시작했고, 계속해서 실수를 해댔다.
사전에 캐릭터 공략법등을 검색해서 찾아 본 후였지만 그래도 글로얻는 정보와 실제로 하는 게임은 분명히 달랐다.
그렇게 네판쯤 돌았을때, 같은팀의 어떤사람이 나에게 욕을 했다.
"아 시x 쳐돌았나 미친새끼야"
영문을 몰랐던 나는 나한테 하는 말이냐고 되물었고, 그 사람은
"너말고 더있냐 쓰레기새끼야" 라고 대답했다.
나는 무슨상황인지 잘 몰랐지만 내가 뭔가 잘못했기에 욕을 먹은거라 생각했고, 내가 초보라서 그런데 잘못한게 있으면 알려달라고 정중히 말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역시 욕설이었다.
"닥쳐 씨xx아. 말걸지마"
그리고 거의 2~4분꼴에 한번씩 나에게 욕설을 했다.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던 나는 가뜩이나 없는 실력에 더 우왕좌왕해서 적에게 붙잡혀 죽거나 팀을 구해주지 못했고, 그럴때마다 욕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게임의 중반쯤 되어서야 다른 팀원이 "그런식으로 남이 다 잡아놓은 적 막타 가로채면 안돼요." 라고 말해주고 나서야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게됐다. 그래서 아까 그 사람에게
"제가 이 게임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잘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어요." 라고 사과했지만, 그 사람은 "게임을 못하면 하질 말아야지" 라며 한참을 욕을 하다가 나갔다.
나는 그 이후로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공성전은 하지 않는다. 컴퓨터를 상대로만 싸운다. 그게 재미없는것도 아니고, 사람을 상대하는것보단 더 쉬우니까.
내가 어릴적부터 즐겨 하던 게임은 이런게 아니었다.
사냥속도는 더뎌도 즐겁게 수다떨며 게임했고,
서로 잘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고 격려해줬다.
그때도 악플러가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착한 사람이 더 많았다.
나는 삼년전 라그나로크와 해피시티를 오래간만에 하면서 만난 3~40대의 어른들과 요즘 게임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다 이렇게 말했다. "요즘애들은 게임은 못하면서 욕만 잘 한다"고.
그때 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 했지만, 이젠 무슨말인지 알 것 같다.
게임은 즐겁게 하려고 있는건데, 요즘은 게임을 하면 즐겁게 하기가 너무 힘들다.
레벨이 낮거나 장비가 구리면 무시당하고,
친한 사람과 수다떨면 친목질이라고 욕먹고,
자기가 인맥이 많다고 자신의 뜻과 반대되는 사람이 있으면 지인을 총 동원해서 한 사람을 매도하지 않나,
게임 못한다고 욕, 잘한다고 욕, 적군도 아군도 가리지않고 욕, 욕, 욕.
게임은 오락이고 놀이이다. 즐거우려고 하는건데 왜 스트레스를 받아 가면서 게임을 하려고 하는걸까.
설령 누군가 비매너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고의성이 있는지 분별한 후에 비판하는게 당연한데 바로 비난부터 날리면 상대방이 실수로 비매너 행위를 했더라도 자신의 실수를 수긍하기 힘들것이다.
그냥 이 모니터 건너편에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될텐데, 요즘 사람들은 그게 어렵나보다.
게임하는 연령대는 점점 어려지고 있고, 넷상에서 좋은거, 좋지 않은거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애들은 점점 거칠어진다.
중학교도 가지 않았으면서 피가 사방으로 튀고 내장이 흘러나오는 잔인한 게임을 하며 온갖 악을 써댄다.
내가 어린시절 즐겼던 게임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이제 앞으로도 그때처럼 게임을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 서글퍼진다.
물론 게임은 앞으로도 계속 하겠지만, 그때처럼 즐겁게 할 수는 없을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