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청계광장, 아니 전국에서 일고 있는 촛불 시위는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될 ‘시대적 시위’다. 이는 70~80년대의 옛날 논리가 다시 돌아오느냐, 아니면 21세기의 새로운 논리가 득세하느냐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민은 어리석고 아는 게 없으니, 정부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면서 희생하고 고생하면 언젠가는-아니면 당신 자식들은 잘 살게 되리라”라는 옛 논리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그렇다고 구라치네. 웃기지 마쇼. 그래봤자 당신네 일가친척들이나 잘 살게 되더이다. 이제는 우리가 직접 하겠소!”라는 새로운 논리를 따를 것인가의 대립인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후자임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선동에 휘둘리는 감정적인 대중’이 문제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선 선동적인 정보와 주장의 검증 및 자성은 하루, 아니 몇 시간이면 완료되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우매한 대중을 크게 문제 삼지는 말라. 대중이 어리석다고 하는 당신은 21세기 패러다임을 학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물밀듯이 거리로 촛불들이 쏟아지다보니 여러 가지 아쉬운 점들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는 무엇이 성공이고, 실패인지에 대해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만 철회하면 된다는 사람이 있는 한편, 한-미 FTA 철회까지는 가야한다는 사람, 상수도-의료보험-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사람,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사람, 그리고 가장 극단에 이명박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 (탄핵은 국회에서만 가능한데, 이미 당신, 혹은 당신의 이웃들이 이게 불가능하게 한나라당에 과반 의석을 주었다. 따라서 탄핵은 안 되고, 기껏해야 자발적 하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좌파 운동가들이 아쉬워하는 ‘조직화’의 문제는 그리 큰 게 아니다. 촛불시위에서 체계적인 조직이 없는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네트워크’적인 시위라고 보면 된다. 인도하는 사람, 선동하는 사람이 붙잡혀 가면 그대로 흐지부지 해산하고 말기 위해 조직화를 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당신들이 이해하기 쉽게 ‘점조직’ 시위라고 하자. 필요할 때만 전체로 뭉치는 시위다. 그냥 자유롭게 다니도록 내버려두라.) 그럼 도대체 무엇이 이뤄져야 촛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게 성공인 것인가? 아니면 청와대의 술책에 속아 넘어간 실패인 것인가? 즉, 무엇이 촛불시위의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 것인가? 촛불에 담긴 바람들이 제각각이라 성공을 논하는 것은 일부의 불만을 낳을 수 있다. 그러니 모두가 실패하는 사례를 제시하여, 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게 더 쉬워 보인다. 첫 번째 실패 :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강제에 이은, 경찰뿐만 아니라 군대를 동원한 5.18 광주식의 폭력진압이다. 이미 피를 흘린 시민들이 한 둘이 아니며, 이에 따라 시위의 강도는 더욱 세질 것이고, 경찰로는 대처가 안 될 상황에 이를 것이다. 80년대 권력에 고개를 숙여본 건설회사의 ‘무소불위’ CEO가 대통령이니만큼, 당시와 똑같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관건은 군대가 이에 반대하고 항명해야 한다는 것인데, 역사의 죄인이 되느냐, 다시 존경받는 군대가 되느냐는 군 수뇌부의 결단에 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결정에 따라 대한민국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느냐, 민주정치의 교과서로서 존경받는 나라가 되느냐가 갈리게 될 것이다. 이는 가장 현실성이 낮지만, 일단 일어나면 총체적 파국으로 번질 실패다. 두 번째 실패 :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부를 떠나, 18대 국회에서 과반수, 아니 개헌가능선인 2/3를 차지한 우파 국회의원들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악(改惡)하여 실질적으로 촛불시위를 원천 봉쇄하는 것. 그리고 인터넷 언론에 재갈을 물릴 법률을 입법 처리하는 것이다. 지금 다음 아고라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개인 블로그에서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 마저 경찰, 혹은 국정원 국내정보담당 부서에서 추적에 들어갈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촛불시위로 크게 덴 한나라당에서 ‘당론차원’으로 전원 찬성투표를 지시하면 충분히 통과될 수 있는 법안들이다. 이걸 어떻게 막을지를 생각해보라. 세 번째 실패 : 이게 가장 뼈아픈 실패인데,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하야한다고 하자. 그럼 그 다음에 누가 이 나라를 이끌 것인가? 촛불을 든 사람들이 사분오열 될 것이 뻔하다. 반이명박 운동의 선봉에 섰던 사람은 창조한국당 문국현 의원 지지자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협상에서 선봉에 섰던 사람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다. 대부분의 시위참가자들은 정치적 중도층이지만 원내 의석을 많이 가진 통합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진보신당 스타인 노회찬, 심상정의 존재의식은 매우 희미한 실정이다. 도대체 누가 이명박 다음의 정국을 이끌어나갈 수 있단 말이냐? 이렇게 분열이 생기면 다시 한나라당 정치인들, 특히 박근혜 및 정몽준이 어부지리를 챙길 것이다. 촛불시위가 ‘시대정신’을 바꾸지 못하고, 다시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내줄 수밖에 없단 말이다. 촛불을 괜히 밝힌 꼴이 된다. (통합민주당은 흐지부지된 영국 ‘자유당’의 전철을 밟을 듯. 진보신당이 토니블레어의 ‘노동당’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세 가지 실패를 막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촛불시위를 통해 우리가 얻어내야 할 목표를 현실적으로 따지고, 이를 위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타당하다. 현실적 목표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그 쪽과 이쪽이 바라는 바를 일별하여 중요도를 매기고, 무엇을 주고받을지를 따져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청와대와 촛불을 든 ‘대다수’ 국민들간의 이익 스펙트럼을 그려보고, 어느 선까지 우리가 얻어낼 수 있을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다음에서 부등호는 가치의 크기를 나타냄)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의 정권유지 > 신자유주의 정책(상수도, 공기업 및 의료보험 민영화)강화 및 80년대 개발논리(한반도 대운하)를 통한 경제 회복 > 한-미 유대 강화(한미FTA, 쇠고기 수입) vs [촛불시위] 쇠고기 수입 재협상 및 내각 총사퇴 < 탈 신자유주의 정책(상수도 민영화, 민간의료보험제 폐지, 공기업 민영화 폐기) 및 21세기형 지속발전논리를 통한 경제회복 < 이명박 대통령 하야 혹은 탄핵 글쓴이는 정권에 살 길을 열어주면서 얻어낼 것은 다 얻어내는 것이 성공한 촛불 시위라고 본다. 이명박 하야를 주장하는 것은 퇴로를 막고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 청와대를 ‘이판사판’의 지경으로 몰아갈 수 있다. 첫 번째 실패, 즉 5.18 광주가 서울에서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무리 꼴 보기 싫어도 그 정도까지 몰아가는 것은 청와대의 운신의 폭을 줄이는 것이니 현실적이지 못하다. 위 이익 스펙트럼상으로 글쓴이가 제안하는 다층 목표는 다음과 같다. 이는 분명히 갑론을박을 낳을 테지만, 이 논쟁은 생산적일 것이다. 1차 목표 : 쇠고기 수입 재협상 : 2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 광우병 유발 의심 부위는 수입 금지. 문제 발생 시 즉각 해당 도축장 및 업체 도축 쇠고기는 수입 중단. 2차 목표 : 내각 총사퇴 : 강부자, 고소영 내각을 탈피할, 인적 쇄신의 기회를 주라. 3차 목표 : 한반도 대운하 계획 폐기 및 각종 민영화 정책 폐지 : 그렇게 건설경기를 살리고 싶으면, 중국 대지진 복구에 나서거나, 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철도 건설 추천. 4차 목표 : 18대 국회 견제 : 여대야소 정국에서 이번에 크게 덴 한나라당의 주도로 집회 및 시위법 개악 및 인터넷 여론에 재갈을 물리는 입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각종 민영화 정책과 한반도 대운하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때 전국적인 시위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위 장소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혹은 한나라당 의원 지역구 사무실 앞이나 자택이 되어야 한다. 5차 목표 : 2012년 대선에서 우파(박근혜, 정몽준, 홍준표, 이재오, 이회창 계열)의 재집권 저지. 대신 내세울 수 있는 국민후보를 5년 동안 찾아야 한다. 누가 한국의 버락 오바마가 될 것인가? 최소한 누가 한국의 토니 블레어가 될 것인가?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통합민주당이 지금 상황에서 골몰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위의 다섯 단계 목표에서 다루지 않은 최악의 목표는 이명박의 하야다. 위에서 밝혔듯 지금 이명박을 대신할 수 있을, 범국민적 지지를 받을만한 중도 혹은 좌파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이회창에 의탁한 문국현은 이미 정치적 자살행위를 했다.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이 스타가 됐지만, 민주노동당의 대북노선이나, 경제정책을 지지할 중도 유권자는 얼마나 될까? 대선과 총선을 통해 사망선고를 받은 통합민주당에서 손학규가 나온다고 유권자들이 좋아할까? 차기 당대표를 노리는 사람들이 이번 시위에서 국민들에게 어필한 게 뭐 있는가? FTA갖고 당내 분열만 드러내다 민주노동당 뒷북만 치지 않았나. 그리고 노회찬, 심상정의 진보신당은 아직 정권을 잡을 만큼 인적 자원이나 국민 인지도 수준이 좋지 못하다. 제도정치권에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촛불시위 세력이 죄다 분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편-골수 우파-은 다르다. 미국산 쇠고기야 촛불시위야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할 세력, 다시 말해 동아-중앙-조선을 비롯한 보수 언론과 광신적 한국 보수 기독교 집단, 그리고 경제계의 사용자 집단들은 우파의 대안후보를 내세우고, 그를 위해 똘똘 뭉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명박이 하야하면 박근혜가 뒤를 이을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는 경북권의 굳건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나라당을 재건하는 데에서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고, 이명박에 팽(烹)당하면서 중도를 아우른 많은 국민들의 동정을 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까? 정치적 역량은 입증 됐지만, 국정운영에 대한 역량은 아직 미지수다. 그다지 무리는 없을 가벼운 우파정책을 조용히 추진할 것 같은데, 지난 10년 동안에 그랬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데다, 인류 정치-경제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들어선 지금 과연 시대적으로 적절한 후보인지는 모르겠다. 첨언하면, ‘독재자의 딸’이라는 원죄 혹은 오명은 이미 많이 벗었다고 본다. 2012년 대선에서 이걸 부각시키는 세력은 오히려 네거티브 전략으로 찍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자, 그러하니 촛불을 든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의 목을 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 5년 동안 행정부에서,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손과 발을 치는 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청와대까지 나가지 말라. 어차피 세종로에서 시위하면 청와대에서 다 보인다. 청계광장 앞 동아일보-조선일보사부터 정부종합청사 앞이랑 미국 대사관 앞까지만 나가면 충분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의료보험-상수도-공기업 민영화,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의 ‘강행 실시’때 까지는 이 정도만 하면 된다. 어차피 정부가 내놓은 고시안은 앞뒤가 안 맞는데다 주권침해 요소가 강해서 행정처분소송 및 헌법소원 상 중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 갓 출범한 18대 국회가 막나갈 것을 막는 게 급하다. 안타깝게도 국회의원 국민소환제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종 시대착오적-개악 입법을 해도 그 국회의원을 끌어내릴 방법이 없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사는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한나라당 소속이면 청계광장에 모이는 것 보다, 그 의원에게 편지를 쓰고, 의원 사무실 앞, 혹은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 뽑혔지만, 다음 번에는 어림없을 것이라고 협박을 해라. 그리고 이제는 저 시대의 끝물을 붙잡고 있는 ‘신자유주의’세력(뉴라이트, 조용기 목사를 비롯한 보수-종미 기독교계)에 맞설 국민후보를 찾는 일을 해야 한다. 이회창 씨와 손잡은 문국현 씨가 과연 진정성이 있는 사람인지 검증해보자. 강기갑 의원이 청와대의 주인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민주노동당이 종북-교조주의 노선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지켜보자. 진보신당이 노회찬-심상정 체제를 벗어나 영국의 ‘노동당’에 버금갈 진보정당이 될 수 있을지 기대해보자. 그리고 통합민주당에서 과연 미국의 ‘버락 오바마’에 버금갈 인물을 옹립할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자. 진작 대통령 및 국회의원 소환제를 입법화시키지 못한 탓으로, 우리는 ‘국개’들의 잘못을 고스란히 뒤집어 쓴 채, 괴로운 5년을 보내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촛불시위를 통한 ‘이명박 하야’는 실패다.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실패일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촛불을 밝힌 국민들의 실패와 환멸로 이어질 수 있단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좀 냉정해져야겠다.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하면 촛불을 거두고 집과 일터로 돌아갈지를 분명히 하자. 그리고 언제든지 다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자. 그리고 앞으로 5년간 다시 촛불을 밝히고 피 흘리는 일이 없도록 청와대와 행정부와 국회에 강력한 압박을 가하자. 그리고 5년 뒤, 2012년에 어떤 세력을, 그리고 누구를 국회와 청와대로 보낼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ps. 뭐, 이명박 대통령께서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로 각종 정책들을 ‘밀어 붙여!’라 하신다면, 피 흘린 국민들이 죽창과 화염병을 들고 청와대 앞까지 가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만... 뭐 그 날이 대한민국 우파-한나라당-의 제삿날(앞으로 50년은 정권 못 잡을 것)이자, 국제적인 대망신의 날일 것임은 잘 알고 계시겠지요. 버마 사태에서 보셨듯 타국 주권 침해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미국이 뭐 도와줄 것 같은가요? 뭐 그 땐 정치적 망명이나 받아 달라 하세요. 테라포밍의 이글루 enterre.egloos.com -------- 좀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길 바라며 유머글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