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게에 올렸던 글인데 공게에 더 어울릴 것 같아서 좀 다듬어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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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는 별별 괴담들이 다 있습니다.
겁은 많지만 괴담은 좋아하던 저는 군대에 가서 괴담을 알아봤지만, 아쉽게도(?) 제가 있던 부대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는 곳이었습니다.
소원수리로 일개 분대를 영창 보낸 이야기라든가, 백일휴가 미복귀로 중대장 진급길을 막아버린 이등병 이야기가 차라리 괴담이었지요.
그런데 상병 달 즈음해서 철책선에 올라 가니 괴담들이 많더라구요.
철책선에서는 철책을 따라 초소들이 쭉 늘어서 있는데, 인원이 부족하여 모든 초소에서 근무를 서지는 않습니다.
근무자가 들어가지 않는 공초소가 있고 일부 공초소에는 허수아비를 세워놓기도 하지요.
그 허수아비가 지나가는 사람을 빤히 쳐다본다는 이야기는 꽤 여러 사람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운전병은 안개낀 새벽에 운전을 하다가 구식 군복을 입은 일개 분대를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곳이 6.25 당시의 격전지였던 탓에 구식 민무늬 군복을 입은 귀신에 대한 목격담은 종종 들리는 편이었지요.
그 외에도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대부분 제가 있던 소초가 아닌 다른 소초 이야기여서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상병 꺾이고 철책선 생활에도 익숙해질 무렵, 제가 있던 섹터에서도 귀신 목격담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있던 소초 섹터 가장 끝에 대공초소가 있었는데요, 위치가 높은 데다가 다른 초소로부터의 거리도 꽤 먼 고립된 곳이었지요.
근무를 설 때도 가장 멀고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해서 참 짜증도 많이 냈습니다.
철책선에서는 밤에도 꾸준히 경계를 서야 합니다.
그런데 그곳은 그렇잖아도 다른 초소들로부터 거리도 먼 데다가 경사가 심해서 경계등 불빛도 띄엄띄엄 있는 곳이었습니다.
산 속의 적막함과 어둠에 감싸인 와중에 샛노란 나트륨 등의 불빛이 만드는 그림자가 기괴하게 보였던 게 아직 기억에 선명하네요.
그 대공초소로 가는 투입로? 순찰로? 단어가 잘 기억 안나는데 거기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현역, 예비역 분들은 잘 아시다시피 야간 경계근무 중에는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 수하를 합니다.
상대방과 마주쳤을 때 미리 정해진 문어를 말하고 상대편이 올바른 답어를 말하면 아군으로 판별하는 것이지요.
귀신을 봤다는 후임이 말하길, 대공초소로 올라가는 중에 분명히 인기척이 나서 문어를 던져 보니 제대로 된 답어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수하를 하면서도 분명 그 시간에 근무자가 있을 곳이 아닌데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가끔 순찰자가 근무자 경계상태를 확인한다고 몰래 접근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FM으로 수하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하를 마치고 그 쪽으로 접근했는데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같이 있던 부사수에게 확인해 보니 그 부사수도 분명히 답어를 들었다고 하더랍니다.
그 이후에도 이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이 소초에는 여러 명이 나오면서 '수하하는 귀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딱히 해를 끼치는 종류의 귀신이 아닌 탓인지 서서히 잊혀져 갔으며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어제 수하하는 귀신 봤지 말입니다' '또냐? 걔는 대체 거기서 뭐한대냐...' 라는 대화가 오고 가기도 했지요.
그리고 전역한 후 그 일은 한참 잊고 있었는데, 한 번은 제가 근무했던 곳에서 저보다 2년인가 먼저 근무했던 사람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창 신나게 군대 추억 얘기를 하다가 그 사람이 말하더라구요.
"그러고보니 우리 때는 그 대공초소 근처에서 수하하는 귀신 나오기도 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