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달빛이 어스름하게 스며드는 밤이었다.
눈이 뜨여졌다. 시계는 3: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말그대로 '미드나잇'이었다. 요 며칠 자꾸만 잠에서 깨어났다. 이유를 모르겠다. 혹시 또 불면증이 도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덜컥 앞섰다. 며칠 간 약 덕분에 우울함은 한결 가신 것 같았는데.
아니야, 아니겠지. 그 일 이후 아직까지도 신경이 예민해져버린 탓이겠거니 생각하며, 나는 찌뿌듯한 몸을 일으켜 침대 맡에 걸터 앉았다. 방 안은 한산했다. 그 흔한 초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손으로 옆자리를 짚었다.
자리에 있어야 할 남편이 보이질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안방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다. 어둠만 자욱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담배라도 피러 나간걸까. 문을 열어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찬가지로 짙은 어둠뿐이다. 베란다 너머론 보다 짙은 밤빛이 한가로이 흩어져 있었다. 널찍하게 드리워진 그 위론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남편이었다. 베란다 밖의 그는 검은 봉지에 고개를 처박은 채 무언가를 먹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여……."
그를 부르려던 찰나, 알 수 없는 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무언가를 씹는듯, 또 뜯는 듯도 한 소리였다. 미간을 움츠려가며 그의 모습을 조심스레 살폈다. 허겁지겁 무언갈 뜯어 먹고 있었다. 별안간 섬뜩한 기분이 온 몸에 엄습했다.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그 게걸스러운 뒷모습에서 분명 기괴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숨을 주인 채 그의 모습을 훔쳐보다, 다시 잠이 밀려오는 듯도 했고, 혹시 그와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꽤나 곤란한 상황이 닥칠 것 같다는 본능적인 느낌에, 안방으로 돌아와 다시 몸을 뉘였다.
30분 쯤 지났을까. 슬슬 잠에 빠지려 할 때 쯤, 삐걱이는 문소리와 함께 남편이 돌아왔다. 순간적으로 온 몸에 한기가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은 방에 들어오는 순간까지도 쩝쩝대는 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실눈을 떠 슬그머니 남편을 훔쳐보았다. 그는 거울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어놓곤, 야기죽거리듯 불쾌한 웃음과 함께 이쪽저쪽으로 혀를 놀려가며 치아에 끼어있는 무언가를 열심히 제거하고 있었다. 아, 에, 이, 오, 우를 반복하며 꼼꼼히 확인하길 몇 번, 남편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지그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불을 파고드는 무언가 느껴졌다. 남편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몸을 뉘였다. 참을 수 없는 오싹함이 다시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차마 눈을 뜰 순 없었다. 왠지 어둠 속에서 남편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느껴지는 듯도 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몸을 웅크렸다. 그리곤 조그마한 숨소리조차 새어나가지 않게 질끈 입을 틀어막았다. 이내 남편의 코골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래서?"
"뭘 그래서야. 그냥 모르는 체 했지 뭐."
"훗, 너희 남편도 참 이상하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한밤중에 일어나서 그리도 게걸스럽게 뭘 드셨을라나."
지연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양미간을 잔뜩 모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몰라, 근데 너무 무서웠어. 그 사람,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구.."
"얘, 남자는 원래 다 비밀스러운 모습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는 거야. 너는 어쩌면 아직도 그렇게 남자를 모르니?"
"그래도……."
지연이 희고 긴 손가락으로 찻잔을 더듬으며 말했다. 애초부터 지연의 머릿속에 내 얘기따윈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오로지 지연의 시선은 커피숍을 분주히 헤집고 다니는 젊은 남자 종업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럴 법도 했다. 지연이나 나나, 지금이면 한창 많은 남자들을 만나고 다닐 나이였으니까. 나는 결혼을 서두른 편이었다. 어느 새 신혼 3년 차, 올해 스물다섯 이니, 무려 스물 두 살에 남편을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가끔은 이른 결혼이 후회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것저것 속박을 받는 게 많았기 때문이리라.
"선영아, 쟤 귀엽지 않니?" 지연이 손가락으로 종업원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귀엽네."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얘는 싱겁게."
고깝지 않은 지연의 태도에 내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지연은 그제서야 종업원에게로 꽂혀 있던 시선을 거두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진짜 심각 한 거야?"
"그래.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진 모르겠지만 그사람 요즘 정말 이상해."
"뭐가 어떤데?"
지연이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물었다.
"나도 몰라. 그냥 그 사람, 나한테 요즘 부쩍 무심해진 것 같기도 하고. 전처럼 살갑게 대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집에만 오면 밥 먹자, 씻자, 자자. 그게 끝이야. 나는 그이랑 대화도 하고 싶고.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싶고. 어쩔 땐 오붓하게 둘이서만 술 한 잔도 하고 싶고. 이것저것 다 하고 싶은 데 말야. 어쩌면 사랑이 식어버려서 그런건 아닌지."
"혹시, 너 산후 우울증 아니니?"
지연이 티슈로 입 주변을 닦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 모르겠어. 그럴수도 있겠지. 그이는 꼭두새벽같이 출근해서 해가 질 때쯤이나 되서야 들어오고. 나는 그 동안 하루 종일 좀스런 상념에만 젖어 살아. 독서도 해보고, 컴퓨터도 해보고, 집안일도 해보고. 종종 근처 공원에 나가서 산책도 해보는데. 이상한 건 늘 혼자라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는 거야. 결혼을 하고나니 오히려 더 외로워지는 것 같아. 내가 너무 서둘렀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야."
"으이그, 그러니까 그 때 이 언니의 말을 들었어야지."
지연은 혀를 끌끌거렸다.
연애시절 나는, 한 번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하기에 그는 너무나도 로맨틱한 사람이었다. 알다시피 결혼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한사코 그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은 바라지 않았기에, 나는 그가 청혼을 할 때마다 번번이 죄스러운 마음을 무릅쓰고 거절하기 일쑤였다. 결혼은 현실과 권태의 늪 속으로 온 몸을 내던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꿈꾸던 결혼 생활의 환상따윈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이 산산조각 나버려, 결국에 돌아오는 것은 위자료 독촉장과 감당할 수도 없을 마음의 빚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곳저곳에서 주어들은 귀동냥쯤으로 충분히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런 내가 보기 좋게 실수를 해버렸다. 뱃속에 아이가 들어선 것이다. 남편은 나의 선택을 존중하겠노라 말했다. 처음엔 지우려고 했다. 며칠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내 몸 속에선 생명의 약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점점 메워갈수록 굳건했던 결심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며칠 뒤, 나는 아이의 첫 심장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고, 동시에 나의 심장도 녀석과 같이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출산을 결심 한 이후, 우리는 양가 부모님께 이 사실을 고백하기로 했다. 물론 집안의 반대는 예상보다 더욱 거셌다. 특히 시댁의 반대가 심했다. 남편의 집에선 나처럼 어린 여자가 아닌, 경제적으로도 능력이 있고 보다 성숙한 여자를 며느리로 맞길 원했다. 심지어 이 일이 있기 전까지 남편의 집에선 나와의 교제 사실 조차 모르고 있던 상태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손에 이끌려 간 시댁에서, '이 여자가 나랑 결혼할 여자입니다. 제 애도 가졌습니다. 저는 이 아이를 나을 작정입니다.' 라며 온 집 안에 못을 박아 놓곤 홀연히 뛰쳐나와 버렸으니, 생각해보면 완강한 반대가 없는 것도 이상할 일이었다.
한 때는 시댁에서 낙태할 때 쓰라며 돈을 쥐어주고는 아이를 지우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 사건은 지금까지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양가의 생각만큼이나 굳건했다. 그 의지가 명확하게 피력되고, 결국엔 누구도 그것을 쉽게 꺾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남편의 집안에선 울며 겨자 먹기에 가까운 결혼 승낙이 떨어졌다. 승낙 이후 남편과 나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명을 지켜냈다는 마음에 며칠을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서둘러 혼례를 마쳤으면 좋겠다는 시댁의 아니꼬운 눈초리에, 쫓기듯 결혼식을 치르고 난 후 우리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발리로 향했다. 하지만 그 때였다. 장거리 여행으로 인한 여독이 미처 풀리기도 전에, 공항에서 나는 극심을 진통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삽시간에 양수가 터졌고, 많은 양의 하혈이 시작됐다. 남편은 서둘러 구급차를 불렀다. 일각을 다투는 상황인지라 그의 표정엔 수심이 잔뜩이었지만, 나는 그 고통 속에서도 자그마치 피어나는 희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 곧. 이제 곧 우리의 아이를 만나게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병원에서 우리에게 들려온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예정일보다 8주나 빠르게 아이는 자궁을 비집고 나오려 하고 있었다. 2달 남짓 정도의 조산이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문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이였다. 아이는 사산아였다. 뱃속에서 죽어버린 것이다. 망치로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참아 낼 수 없었던 기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의사는 한시라도 서둘러 사산아를 적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그대로 방치한다면 자칫 내 목숨까지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진통은 더욱 극심하게 밀려오고 있었다. 남편은 이미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얼마 뒤, 수술은 긴급하게 진행됐다. 차가운 바에 누워, 주삿바늘이 팔등 언저리로 무자비하게 꽂혀지고, 무영등의 눈부신 조명빛이 동공을 집어삼키는 듯한 느낌이 들던 찰나, 흐릿한 의식으로 눈을 떠 보니, 온 몸에 는 또 다른 주삿바늘들이 정신없게 꽂힌 채 덜컹거리는 병상위에 실려 회복실로 향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지연과 별 소득 없는 얘기가 몇 번 더 오고 갔다. 더 이상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한 나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둘러대며 서둘러 카페를 빠져나와 차에 몸을 실었다. 답답한 마음에 연거푸 들이킨 아메리카노 몇 잔 탓인지, 입 안을 맴도는 텁텁한 느낌이 도무지 운전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껌이라도 씹으면 좀 나아지려나. 마침 근처 골목에 편의점 하나가 들어서 있었다.
"얼마죠?"
"천원입니다."
아무거나 집어 들었다지만, 몇 년 사이에 껌 가격이 꽤 많이 올랐다. 그저 평범한 츄잉껌 일뿐인데. 포도맛. 어렸을 때 부터 포도를 좋아했다. 포도는 장점이 많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선 포도주를 심장병, 천식, 피부병, 그리고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쓰기도 했었다고 한다. 어쩌면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는 말에 더욱 더 포도를 좋아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그 일이 있은 이후로 포도를 먹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여하튼 포도는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였다.
편의점을 빠져나와 다시 차에 몸을 실었다. 은박지를 벗겨 껌 하나를 집어들었다. 밀가루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입 안으로 쏙 넣어 몇 번을 오물거리니, 점차 껌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텁텁함은 확실히 가시는 듯 했다. 문득 백미러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부지런히 껌을 질겅대는 모습이 괜시리 생경하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쩝쩝. 쩝쩝. 쩝쩝.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쩝쩝대는 소리가 차 안에서 가득 울려 퍼졌다. 물론 차 안엔 나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별안간 어제 보았던 남편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몸서리가 쳐졌다. 남편의 얼굴이 머릿 속에서 떠올랐다. 소름이 돋았다. 어디선가 남편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결국 껌을 뱉어버렸다.
*
"왔어요?"
나는 도어락 소리에 반사적으로 외쳤다. 남편이다. 그는 나를 보곤 미소를 지었다. 어딘지 모를 퀭한 웃음이었다. 부쩍 수척해진 그의 얼굴에서 광대까지 내려온 그늘은 그 웃음을 더욱 께름칙하게 보였다. 어제의 기억이 파도처럼 덮쳐왔다.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자기야."
인기척도 느끼지 못할 만큼 순식간에 내 뒤로 남편이 다가와있었다. 갑자기 그가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짐짓 옅은 미소를 지으며 뒤척이듯 몸을 빼냈다. 하지만 그는 그럴수록 더욱 더 세게 가슴을 움켜쥐었다. 엉덩이에서 빳빳하게 서 있는 무언가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그것을 내 둔부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몇 분이나 그것을 문지르다 나를 덜컥 돌려세워서는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손을 자신의 그곳으로 가져갔다. 나는 습관적으로 남편의 그곳을 아래위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옅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 아이 다시 가질래?"
"네?"
그 말에 화들짝 놀란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밀쳐버리고 말았다. 3년 전의 일 이후로, 나는 성관계에 대한 중증 이상의 공포가 생겨나 버렸다. 초반 1년 간은 죽은 아이의 얼굴이 머릿속에 아른거려 수면제가 없인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에게 섹스란, 마음 속 깊은 곳에 멍울져 버린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헤집어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남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애써 그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미안해요! 그게 아니라……."
"뭐야, 이렇게까지 밀칠 필요는 없잖아."
"아니, 나도 모르게……."
"대체 언제까지 이럴꺼야?"
"여보……."
"이젠 제발 좀 그만하면 안 돼? 무려 3년 전 일이야. 3년이라구."
"………고의가 아니었어요."
"됐어. 지겹다, 이제."
남편은 차가운 말투와 함께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고압적인 태도의 남편이 낯설었다. 물론 그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런 모습은 영 익숙하지가 않았다. 나는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알 수 없는 소리에 다시 눈이 뜨여진 건 그 날 새벽이었다. 짙은 어둠사이로 희멀건 형체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인영이 확실했다. 남편이겠지. 실눈을 떠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서랍 속에서 꺼내든 무언가를 바스락거리며 뒤지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그는 꽤나 거슬릴 정도의 소리가 들리고 있는데도, 오로지 그것들을 세 맞추는데 열중이었다. 남편은 그것들을 다 세고 난 뒤 속삭이는 듯, 또 야기죽거리는듯 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이곤 안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숨소리를 죽인 채 그의 발자국 소리를 더듬어 들었다. 끼익, 쿵. 새시가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고, 다시금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쩝쩝'
그 날도 역시 남편은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쩝쩝대고 있었다. 나는 멀찍어 떨어져 그 모습을 훔쳐보다, 이윽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그의 뒤에 다가섰다.
허여멀건 달빛이 베란다 맡으로 짙게 쏟아졌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뚜렷이 그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워낙 주변이 어두웠던 탓에 정확히 뭘 먹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형태와 감질만을 아스라이 알아챌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분명 조그맣고 미끌한 표면을 지닌 무엇이였다. 더구나 그가 완벽하게 거실 쪽으로 등을 지고 있던 탓에, 그 이상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드르륵'
그 때였다. 느닷없이 남편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뒷걸음질을 치다 그만 바닥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정색 봉지를 허겁지겁 챙기기 시작했다. 그의 눈 속엔 당황스러움과 난감함이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입가엔 진홍색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얼룩덜룩했다. 그는 나의 시선이 그의 입가로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듯, 재빨리 손등으로 입술을 훔쳐냈다.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있었다. 곧 남편의 눈이 번뜩였다. 그의 동공은 불안한 듯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와 나 사이에 한 동안 적막함이 흘렀다. 얼마 쯤 지났을까. 나는 소파위로 간신히 몸을 앉혔다. 그러나 남편은 미동도 없이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초점을 잃어버린 그의 눈에선 알 수 없는 이채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경직된 자세로 한 동안을 그렇게 꿈쩍없이 앉아있었다.
그 날 아침, 그가 출근을 할 때 까지, 나는 꼼짝없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남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니, 마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씻고, 밥을 먹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심지어 다녀올게, 라며 자상한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하고 출근길에 나섰다.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온 몸을 휘감고 돌기 시작했다. 나는 소파위로 힘 없이 쓰러져 버렸다.
*
저녁.
우리는 식탁에 앉아 한 마디의 대화도 없이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식사라기보다 단순히 꾸역꾸역 밥을 집어삼키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그는 내게 눈길조차 건네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어젯밤 일에 대해 무슨 해명이라도 해야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 번이고 입을 들썩이다 어렵게 입을 뗐다.
"여보."
"응." 남편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일 말이에요."
"응."
"나한테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응."
너무나도 태연하게, 또 당당하게 튀어나오는 그의 대답. 순간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챙, 소리가 날 정도로 요란스럽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왜요?"
"왜냐구?" 남편의 광대가 씰룩씰룩거렸다.
"그건………."
그는 말끝을 흐리며 식탁 밑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검은 봉투였다. 거기선 엄청난 악취가 퍼져나오고 있었다. 그걸 왜 어제는 못 맡았었는지가 스스로 놀라울 정도였다. 양 손으로 코를 틀어 막았지만 소용 없었다. 그 냄새는 고등어가 썩어가는 냄새 같기도 했고, 죽은 동물의 시체가 썩는 냄새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확실한 건, 그 검정색 봉투 안에 무엇이 들어있던 간에 어서 그것을 치워버리는게 최선이라는 것이었다. 욕지기가 넘어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가며 남편에게 물었다.
"그게 뭐죠?"
"음, 이건 내가 정말로 아끼는 건데………."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야기죽거리는 미소로 그것을 살랑살랑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검정색 비닐 봉투의 매끄러운 표면에는 오톨도톨하게 튀어나온 곳도, 삐죽이 튀어나온 곳도 있었다. 꽤나 많은 양의 무언가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봉투가 흔들릴 때 마다 참을 수 없는 악취가 점점 더 심해져갔다.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당장 치워요!"
"왜, 당신도 먹어봐. 아주 맛있는 거거든."
"뭐라구요?"
일순 남편의 눈이 희번득해졌다. 그는 검정봉투 안의 무언가를 식탁위에 차근차근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곧 비명을 지르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남편의 손에서 하나, 둘씩 딸려나오는 것은 죽은 태아의 것으로 보이는 팔, 다리들이었다. 군데군데가 흉물스럽게 문드러져 뼈가 드러나와 있었고, 시뻘건 피가 소스처럼 곁들여져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남편은 그것을 먹음직스럽게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나는 또 다시 뛰쳐나오는 비명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자, 맛있겠지?"
그는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질러대는 내 비명이 즐겁기라도 한 듯, 더욱 바삐 손을 움직여 태아의 간, 콩팥, 지라 따위의 내장들을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가 물컹거리는 간을 집어 들어 게걸스럽게 그것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분수와 같은 핏줄기가 그의 이빨 자국 사이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것을 껌처럼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베어 문 간 사이로 담관과 혈관이 흉물스럽게 뒤엉켜 있는 것이 보였다. 남편은 행여 한 방울의 피라도 흐를 새라 부지런히 그것을 핥아먹고 있었다.
나는 현관을 향해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남편이 용수철처럼 식탁에서 튕겨 나와 후들거리는 내 뒷덜미를 낚아챘다. 우레 같은 비명이 다시 한 번 뛰쳐나왔지만,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두툼한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쳐보아도 모두 헛수고였다. 남편이 한 손으론 입을, 한 손으론 뒷덜미를 잡은 채, 나를 개처럼 끌고가 억지로 식탁의자에 앉혔다.
"자, 당신도 먹어봐."
"그만해!"
"먹어보라니까. 우리의 아이야. 맛있다구. 아마 당신도 한 입 먹어보면 좋아 하게 될거야."
새된 비명들은 계속해서 목구멍에서 꺼져갔다. 남편이 또 검정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태아의 머리였다. 하도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댄 탓에, 안구의 모세혈관들이 터지며 핏물에 가까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태아의 머리는 진홍색 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천정의 백열등 빛에 반사된 핏빛은 괴괴하게 반짝거렸다. 그는 태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망치로 내리 찍었다. 보기 좋게 으스러진 태아의 두개골 속에서 희멀건 뇌수가 흘러나왔다. 남편이 다시 한 번 입맛을 다시며 그것들을 핥기 시작했다. 구역질이 나왔다.
"자, 아."
그는 회백색의 뇌수를 몇 번이고 핥다가, 이제는 내 입에 강제로 쑤셔 넣으려 했다. 나는 입을 벌리지 않으려 끝까지 안간힘을 썼지만, 남편의 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찔끔찔끔 벌어지는 입술 틈 사이로, 기어이 태아의 뇌 조각을 쑤셔 들어왔다. 그것은 반사적으로 식도로 넘어가 위장으로 흘러들어갔다. 토악질이 나왔지만 남편은 그것마저도 억지로 삼키도록 벌어진 입 속으로 왈칵왈칵 물을 들이부었다.
"어때. 맛있지?"
남편이 광소를 내뿜었다. 이제는 온 몸이 기진맥진하여 팔다리가 축 늘어지진 상태였다. 더 이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입 안에선 태아의 그 감촉이 도무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샛노란 액체가 입 안에서 쏟아진다. 그 사이로 매끈한 무언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뇌 조각이다. 찐득한 담즙들 사이에 역겹게 버무려진 그 모습을 보니, 또 다시 무언가가 역류한다. 정신이 아찔해진다. 눈이 감긴다.
타는 듯한 갈증에 눈을 떴다. 꿈이었구나. 온 몸은 식은땀 범벅이었다. 시계는 3: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야말로 '미드나잇'이었다. 나는 가쁜 숨을 계속해서 몰아쉬었다. 후우-, 후우-.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 이건 정말 너무나도 끔찍한 악몽이었어. 다시 이런 꿈을 꾸게 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꼴깍, 침이 넘어간다.
무심코 침대 옆을 더듬으니 남편이 없었다. 온 몸이 움찔거렸다. 꿈은 반대라는 말도 있잖아, 라고 애써 생각하며, 최대한 의연하게 안방 불을 밝혔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단지 새벽녘의 적막함만이 낮게 몸을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거실에 나가보니 베란다 밖에 우두커니 남편이 서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처박고 있다거나, 혹은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진 않았다. 그는 그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었다. 늘상 있던 일이다. 남편은 애연가니까. 뿌연 담배연기가 허공에서 유유히 흩어진다.
"어, 여보, 깼어?"
바깥 날씨는 꽤나 추웠는지, 양팔을 비비적거리며 거실로 들어온 그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슬쩍 열린 베란다 문틈 사이로 들어온 서늘한 밤바람이 나와 그를 휘감는다. 꿈속의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냥. 그냥, 내 남편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이 새어나왔다. 그가 다시 미소를 짓는다.
"미안, 나 때문에 깼구나."
"아니에요."
"여보."
별안간 남편이 내 손을 부여잡았다. 거칠고 두툼한 두 손이 내 두 손을 부둥켜안 듯 감싼다. 그의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덩달아 내 마음도 진정이 되는 듯 했다.
"네?"
"요즘 많이 힘들었지. 일한다고 만날 늦게 들어오는 나 때문에, 요즘 당신한테 제대로 신경도 못 쓴 것 같아 미안해."
"아니에요."
남편의 표저이 자못 진지하다. 나는 쑥쓰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남편이 공연히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다, 곧 서류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반지케이스다. 열어보니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다이아몬드 반지쌍이 들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조그마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우리 얼마 안 있으면 결혼 3주년이잖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그럼. 일찍 챙겨주고 싶었어."
"고마워요."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좋은 티를 감출 수 없었다. 남편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고맙긴, 이렇게 오밤중에 갑자기 당신한테 반지를 주게 될 줄이야. 사실 아침에 몰래 식탁에 두고 나가려 했거든. 근데 갑자기, 당신이 내일 아침 이 반지를 받아들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너무나도 궁금해지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생뚱맞게 주게 됐네. 미안해. 내가 너무 로맨틱 하지 못한가?"
남편은 머쓱했는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는 무언가를 또 꺼내들었다.
"아ㅡ, 그리고 이건, 우리 '3주년' 기념으로 당신에게만 주는 선물! 짜잔!"
금박지로 고이 포장된 적당한 크기의 상자. 나는 들뜬 마음에 서둘러 그것을 풀어헤쳤다. 조그마한 반지 케이스 사이즈의 선물상자가 담겨 있었다. 상자를 열자마자 그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선물이야. 당신도 한 입 먹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