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꼰대같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수능 치른 고3들에게
게시물ID : gomin_8949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프링베어
추천 : 0
조회수 : 33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11/07 17:50:31
어제 제가 페북에 썼던 글입니다. 
고3들 생각하니까 괜히 짠해지고 옛날생각도 나고 ...
꼰대같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수능 치른 고3들이 그 중에 시험 망쳤다고 속상해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써봅니다. 

--------------------------------------

2000년. 

밀레니엄이라고 컴퓨터 대란이 온다고 떠들썩 하던 해에 나는 고3이 되었다. 
아침 일곱시에 등교하고 밤 열시가 넘어 학교를 나와 학원에 들러 집에 오면 밤 열두시.
모뎀으로 인터넷 한시간 정도 하고 (게임 이런것도 아니다 정말 오로지 인터넷) 
한 시쯤 잠이 들어 다시 새벽 여섯시에 기상해서 학교로 출발.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그렇게 살았나 싶다. 

입시때문에 고생했던 고3이지만 그래도 그때를 떠올리면 행복하다. 
학교에서 선생님 눈을 피해 부족한 잠을 자기도 했었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엔 나가서 축구하고 농구하고 
친구들이랑 시덥잖은 얘기하면서 낄낄대고 그랬다. 

축구 한일전을 하는 날엔 야자시간에 교실 TV를 켜서 화면만 보고 소리는 라디오로 들었다. 
한 명이 망을 본다고 자처하는데 사실 망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날 야자감독선생님이 복도를 돌아다니는 시간은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쉬는 시간 뿐이었으니까. 

당시까지만 해도 내가 살던 강화도엔 수능고사장이 없었다. 그땐 그냥 넘겼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너무 불공평한 처사였던 것 같다. 
우리는 아침 여섯시에 학교앞에 모여 관광버스를 타고 인천 서구로 나가야 했다. 
여섯시까지 학교에 와야 하는데 멀리 사는 애들은 첫 차도 다니지 않아서 전날 학교 근처에서 자거나 했다. 
어떤 전설적인 선배는 (남고에는 형들에 대한 전설이 많다) 혼자 경운기를 끌고 왔다고도 했다. 

수능 당일은 모든 교통이 수험생에게 맞춰지는 기이한 풍경이 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00고등학교 수험생이라고 써붙인 관광버스는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고 쭉쭉 달려나갔다. 
운전기사 아저씨도 신이 나셨을 것 같았다. 

그 버스안에서 교실에서 늘 하던대로 우리는 낄낄댔다. 
풍경을 보면서 쭉쭉 달리는 버스가 신나서 마치 소풍가는 것 처럼 그렇게 떠들어댔다. 
하지만 아직도 느껴지는 건. 시끄러운 소리 속에 숨어있던 긴장감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얼굴이 상기되어있었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열심히 했건 놀았건 그 날은 그 버스의 아이들에게는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는 날이었다. 

내일이 수능이다. 
2013년의 고3도 2000년의 고3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난 수능 d-1아니라 d-367야'라고 말하며 웃는 녀석이 한 반에 한 명은 있을 것이고,
 수능 끝나면 뭐하고 놀지 궁리하는 아이들도, 
'수능=인생'이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나 혼자 잘 되는 것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해야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사회이지만 
그리고 그것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사회이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옆친구와 살 부대끼며 잘 버텨왔다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수능=인생'이라는 건 어른들이 너희들을 겁주기 위해 만든 공식이니까 
그 공포에 발목잡히지 말라고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힘내라 고3.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