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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수능 말아먹은 사람으로서 14학번이 될 여러분에게
게시물ID : gomin_8951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슬픈거북이
추천 : 5
조회수 : 39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11/07 20:11:06

저는 11년도에 수능을 친 사람이에요.
엉엉 울면서 시험장 나와서 합격 뜬 이후에도 집안 분위기가 나 때문에 아주 개판이었어요.
수학 빼면 딱히 잘 본 과목도 없고 사탐이 겁나 망했었거든요.
사탐 2개 과목만 철저하게 챙기는 전략으로 나갔다가 4과목이 다 망해서
1133 띄우다 채점을 해보니 결과가 3444였나?
심지어 제일 성적이 좋은 과목은 3년 내리 들이팠던 윤리도 아니었음. 내다 버린 국사였나 정치였나 그랬음. 3등급 하나 건진 것도 아슬아슬하게 끄트머리. 한두 문제만 더 틀렸으면 4444 제트코스터 찍었을 정도의 미친 급락.

영어는 말하기 쓰기는 자신없어도(영어 선생이 넌 쇄국형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라도 수능은 잘 봐야 한다고 했었음) 수능형 영어만은 자신있는 잉여였는데, 고2때 선배들 찾아와서 니들 나 망했다고 우습게 보면 안됨ㅋㅋㅋㅋ나도 코웃음치고 들어갔다가 영어 듣기문제 틀림ㅋㅋㅋㅋ이러고 썰 풀 때 속으로 겁나 비웃었는데 미친 듣기에서 삑사리가 나고. 평소 아슬아슬했던 문법에서 또 삑사리가 나고.

언어는 그날 새벽에 잠 못 자고 뒤척이다가 일어나서 토했어요. 전날 밤에 보고 잔 지문에서 2문제 나왔는데 시간 배분을 제대로 못해서 찍고 넘어갔거든요. 마킹하면서 속에서 천불이 터지는데 그 기분...어후 지금 생각해도 싫다.


그래서 언어는 등급만 간신히 유지했고 수학만 의외로 잘 나왔고 영어는 기어코 한 등급 떨어졌고 사탐은 추락. 9층 내 방 창문에서 주차장으로 뛰어내리는 수준으로 추락. 수시를 기대하기에는 난 논술이랑 원수사이인 문과생이었음. 답이 없죠.

새벽에 몰래 일어나서 옷을 다 입었어요. 제일 아끼는 오리털 파카에 목도리까지 다 두르고 창문을 여는 것까지는 성공했어요. 두 시간 동안 창가에서 못 떨어지고 갈팡질팡하다가 새벽 4시에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처박히면서 나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 등골 빨아먹는 유령채권이라고 울다가 잠에서 깼는데 하필이면 그날 아침에 비가 추적추적 오데요. 나 혼자 그 광대짓을 새벽에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


그러다가 결국 대학은...사실 나는 내 점수에 적당히 얻어걸린 수준으로 갔고, 부모님은 내가 이러려고 너 12년간 공부시켰냐고 말한 곳에 갔죠. 정시 가군이었나 나군이었나 한 군데 붙은 데 말고는 수시도 모조리 죽을 쒔거든요. 거기 안 갔으면 재수해야 했고 재수는 정말 하기 싫어서, 죽기보다 싫어서 이렇게 포기할 거냐고 실망스럽단 이야기 귀에 딱지 앉도록 들어가면서 거길 갔어요.


그렇게 3년 지났고, 다음 한 해는 휴학할 예정인데, 이 3년간 겪어본 바로는 수능 조금 삐끗했다고 인생이 크게 망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출발선이 아주 조금 밀렸다고 생각하세요. 노력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범위에요. 12년간 고개 처박고 들이마셨던 꿉꿉한 우물에서 벗어나서 큰 하늘을 보게 된 계기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지도 몰라요. 오히려 중요한 건 지금부터죠. 원하는 점수가 안 나왔다고 충동적으로 이상한 선택을 하는 게 오히려 수능 망친 것보다 인생을 더 나락으로 몰아넣는 지름길이에요.

지금 마음 굳게 먹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면 몇 년 지나서 그땐 참 하늘 무너진 것 같았지 수능이 뭐라고, 그땐 그랬지, 하면서 웃을 수 있을 거에요. 우리 심지 단디 굳히고!!!! 나중에 웃읍시다. 수능 끝난 고3들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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