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움직인다. 인터넷은 특히 역동적이다. ‘2030세대의 인터넷 혁명’이란 평가 속에 집권한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에는 인터넷에 단단히 한방 먹었다. 노 대통령이 17대 대선 직전인 2002년 12월 14일 밤 10시30분 KBS 1TV에서 한 TV연설을 담은 동영상이 16일 오후부터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면서 ‘공언(公言)의 번복’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이 동영상은 동요 ‘올챙이와 개구리’를 배경 음악으로 깔고, 노 대통령의 “당선 후 1년 이내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서 국민투표로 최종 결정하겠습니다”란 발언을 편집해 담았다.
반노(反盧) 네티즌들이 운영하는 짱노닷컴(www.zzangno.com)에 처음 올라온 이 동영상은 이후 정치 패러디 사이트들에 급속히 퍼져 나가며 네티즌들 사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 당시 노 대통령을 도왔던 인터넷의 신속함과 발랄함이 그대로 반노 진영 도구가 된 듯싶다. 청와대측으로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형국이다.
얼마 전에도 인터넷의 청와대 습격사건(?)이 있었다. 창간한 지 두 달여 된 신생매체 ‘데일리안’(www.dailian.co.kr)은 지난 5일 “청와대 비서관 ‘하찮은 인터넷 신문…’ 본보에 막말”이란 제목의 기사를 톱 뉴스로 올렸다. 데일리안이 앞서 ‘청와대 홈페이지 서프에 점령당하다’란 기사를 내보낸 뒤 한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항의를 들었다며 청와대를 비판한 내용이었다.
데일리안이 앞서 보도한 내용은 “(청와대 홈페이지의) ‘네티즌 칼럼’ 목록 10개 중 9개는 서프라이즈(친노·親盧 인터넷 웹진) 논객의 글”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비서관은 “그것은 다른 신문(국민일보)이 옛날에 조사한 자료이고, 지금 서프라이즈의 글은 7개 정도밖에 없다”고 반박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네티즌 칼럼 10개 가운데 9개든 7개든, ‘서프라이즈’가 도배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서프라이즈는 현 정권에 비판적인 정치인·언론 등에 대해 광기어린 공격을 해온 곳으로 평가받고 있지 않은가. 청와대의 네티즌 칼럼은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광장이어야지, ‘노빠 부대’ 놀이터로 전락해선 안 된다. 청와대는 왜 인터넷상에서 좀더 다양한 견해를 수렴하지 못할까.
인터넷이란 매체는 흔히 말하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정보격차)’로 인해 상대적으로 젊은층의 지지가 많은 친노 성향으로 평가돼 왔다. 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연령별 인터넷 이용률은 20대가 94.3%나 되는 반면, 50대는 23.2%, 60대 이상은 5.1%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그 인터넷이 변심한 것일까. 인터넷은 노마드(유목민)의 동네다. 네티즌 여론은 물처럼 흐른다. 청와대는 ‘인터넷은 우군’이라는 막연한 환상부터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노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주한 외교단 리셉션에서 “고국에 한국 소식을 보낼 때 신문 제목만 보고 그대로 보내지 말고 저나 공무원, 자신만만한 국민들에게 한번 더 물어보고 보내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문에 대한 대통령의 주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인터넷도 믿지 말고 청와대에 확인하라”고 말해야 할 참인가?
인터넷이건 신문이건 마찬가지다. 청와대가 좋은 정치를 할 때만 미디어는 박수를 쳐준다.
(진성호 편집국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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