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분들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군대 정신교육 시간에 이런 게 나옵니다.
"병자호란 때 남자들이 나라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청나라와 군신의 예를 맺었고, 매년 아녀자들을 공녀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 때 남자들이 나라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아내와 딸들을 위안부로 보내 고통받게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와 여동생 딸을 지키고, 국민을 지키고, 나라를 지킨다."
(세 번째는 확실히 기억이 안 나네요. 저런 비슷한 뉘앙스였는데 여자만 지킨다는건 아니었던거 같고)
어쨌든 저 지점에서부터 한국의 모든 남녀불평등 문제가 시작됩니다.
왜 남자가 여자를 지킵니까? 군대가 국민을 지키지.
여자가 뭐 약한 존잽니까? 아닙니다. 여자도 남자와 같은 권리를 가지는 엄연한 국민입니다.
제가 남자라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여성분들은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오시며 이 땅에 존재하는, 은은하고도 미묘한 차별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차별의 이유도 저겁니다. 남자가 여자를 지킨다.
여자를 수동적이고 보호받아야 마땅한 존재로 국한하는, 가부장적이고 해묵은 사고방식이죠.
한창 머리가 잘 돌아갈 20대 초반에 저런 걸 배웁니다. 그것도 사지 멀쩡하면 누구나 가는 군대에서.
그러니, 남자들이 여자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페미니즘은 바로 그 생각에 대해 죽창을 날리는 사상 아니었나요? 제가 알기엔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
여성과 남성 모두 법적으로 동등한 국민인데 남성에게만 국방의 의무를 지운다는 건, 국가권력에서 비롯한 여성의 평가절하입니다.
쉽게 말하면, 보호해줘야 하는 2등 시민으로 본다는 얘기죠. 열받지 않습니까? 제가 여자면 이 부분에서 야마가 돌 거 같은데.
이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남녀불평등은, 국가 권력의 수반으로부터 묵인되는 공공연한 관습입니다.
여성들은 남녀불평등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그런데 왜 이 거대한 권력에서 비롯되는, 버젓이 공인된 불평등에 대해서만은 어째서 입을 굳게 닫을까요?
정작 이 모든 불평등의 첫단추인 '여성은 남성이 지켜줘야 한다' 는 명제부터 깨뜨리면 그 밑으로는 일사천리로 해결될 문제를 가지고.
그러니 페미니즘이 기형적으로 변하고,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억울하고, 나라에서 개무시당한 여자들도 억울한 모양새가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답은 하납니다.
여자들이 증명하는 것.
그러기 위해 다같이 들고 일어나는 것.
이게 수반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지켜줘야 할 존재' 인 여자들이 외치는 구호는 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모두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으로 끝나겠죠.
안 그렇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