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8일,
대학로에 자리잡은 딴지일보 벙커원 지하 스튜디오에서
한 중년 백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 목소리를 듣고자 모여든 이백 명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유리창 밖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잘나가던 시사평론가를 그만두고,
2002년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트 앞에 서는 심정”으로 정계에 투신했던
정치인 유시민이 십 년이 넘는 직업정치인의 생활을 갑작스레 그만두고 나서
자신의 심정을 털어 놓는 인터뷰에 응했던 것이고,
나는 백수 유시민을 맞이하여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보는 진행자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 인터뷰 방송은 이 기사가 담긴 <더딴지> 통권 6호 발매와 동시에
'딴지 라디오'에 공개될 예정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던 내 심정은 그랬다.
어떤 사람이 십 년 넘게 하던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죽음이다. 물론 그는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자신의 역할을 찾아 옮기겠지만, 최소한 직업정치인 유시민은 죽은 것이다. 물론 그가 다시 정치를 재개할 수도 있다. 그러면 부활한 거고.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두어 차례 이상 정계를 은퇴했다. 박정희의 강압에 못 이겨 망명한 것도 어떤 면에선 강제 은퇴일 수도 있었고. 물론 그러고 나서 다시 부활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최소한 그 분야에서 죽는 것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바닥을 떠나는 그에게 작지만 따스한 선물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들어주고, 그 내용을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돌이켜봐야 쓰디 쓴 기억밖에 나지 않을 만한 정치판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은 굳이 까발리고 싶지도 않았다.
최근에 새로 낸 책 광고도 좀 해 주고 싶었던 측면이 있다. 지금 그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바로 생계를 감당할 돈이라는 것이 뻔하니 말이다. 실제로 인터뷰 중에 그는 당장 곤란한 문제가 무엇이냐는 관객의 질문에,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동그라미”라고 답을 했었다.
유시민은 요즘 수입을 위해서만은 아니겠지만, 전국을 돌며 바쁜 강연일정을 소화하고 있기도 하다. 지상파 방송에 못 나갈 것이고, 언론사 인터뷰를 해 봐야 좋은 소리 안 나올 테니, 그저 자신을 찾아주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밖에 없기도 하겠다. 그 강연비와 새로 출판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이 팔리면서 나올 인세가 그의 수입 전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수준은 아니라고 했지만, 품위유지에 급급한 수준의 수입일 것이다.
나 혼자만의 감정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그의 모습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뭔가 알 수 없는 서글픔 이었다. 그래서 그랬다. 전통적인 딴지이너뷰와는 사뭇 궤를 달리하는 물렁한 인터뷰를 하고 말았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랬더니 바로 지적이 나오더라.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딴지스럽지 않은 인터뷰였다는 반응 말이다.
그러나 정치인 유시민이 걸어왔던 십년의 과정을 제대로 복기하는 일은 또 다른 의미에서 필요하다. 그는 2002년에 시작된, 뭔가 기존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진행하는 주역의 위치에 서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의 새로운 정치는 실패로 돌아갔다.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졌다”는 것이다.
그의 정치가 실패였다면, 왜 실패한 건지 무엇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인지를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비록 실패했어도 뭔가 남겨 놓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도 있다. 만약 그의 정치실험 이 실패한 수준이 아니라 해악을 끼쳤고, 남긴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치워 버려야 할 병폐를 남겼다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글이 그 모든 것을 다 담은 글이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그저 쓸데없이 물렁한 인터뷰를 남긴 책임을 지기 위해 내가 아는 그의 모든 것에 대해 나름대로 비판적 시각에서 정리를 해 보고자 하는 것뿐이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서로 힘들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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