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오늘은 왠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조금 바빠서 그랬을까? 아니면 멸치대가리만 삼일동안 먹어서 힘이 없었던걸까..? 너무 배고파서 할머니하고 같이 할머니표 국수를 버무려 먹었다.
배가 딴딴하니 너무 많이 먹어서 마루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뉴스에서는 북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한국의 PSI 전면 참가, 북한은 전면전 정도로 군사 대응 하겠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걸 보면서..
"전쟁나면 얄짤없이 끌려 가겠네" 라고 이야기 했더니 할머니께서
"전쟁 무서워서, 나면 안되지. 우리 강아지 장가도 못갔는데.." 하셨다.
"에이~ 전쟁 그렇게 쉽게 않나죠~" 대답했고, 다시 TV를 보던중에 할머니가 이야기를 꺼내셨다.
"9살 때인가? 6.25가 터졌던게.."
그 때 부터 시작되었다. 나도 몰랐던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가...
때는 1950년 초여름
할머니는 그 때 당시 9살에 인민학교 학생이었고 할머니의 언니 .. 즉 내가 이모할머니라고 불렀던 분은 12살 차이에 21살 꽃다운 고등부학생이셨단다.
당시 할머니가 다니던 인민학교는 일주일에 서너번 정도를 강당에 모여서 수업을 들었다는데 그 때를 회상하시면서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일주일에 한 서너번될까? 강당에 빼곡히 모여서 남조선 쳐부수자. 이승만 목을 따자. 노래를 부르면서 인민 애국가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조용해지더라구. 그러면서
'북조선 인민노동당 여성 노동부위원장님께서 오십니다.' 하는거야. 그런면서 박수소리가 나는데.. 단상위로 우리 어머니가 올라오시더라구. 그땐 몰랐지.. 근데 알고보니까 빨갱이 두목이었었어. 우리 어머니가.."
그랬다.. 우리 증조할머니께서는 노동당소속 여성 노동부 위원장이셨던다. 거기다 증조할아버지는 잘나가는 은행에 간부셨다고..
평양에서 사시다가 일을 배정받고 지금의 강원도 화천으로 내려오셨단다. 옛날에는 화천까지는 북한땅이었다고..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북한은 국민 모두가 전쟁에 미쳐 사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할머니가 어렸을 때 살았던 화천은 그러지 않았단다. 물론 하루가 멀다가하고 남조선 쳐부수자 머리따오자 노래를 불렀지만 그 때는 그냥 당연한거라고 생각하셨다고 하신다. 그 때 당시 노동위원장이셨던 어머니 덕분에.. 'ㄷ'자로 된 대 저택에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 유리로 된 큰 창문들로 지어진 자동 전기 난방시스템이 갖추어졌던 그야말로 초 호화저택에서 사셨단다. 그 때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건줄 아셨다고..ㅋㅋ
뭐, 너무 어리셨으니까.
그렇게 지내던 어느 더운 여름날이 막 다 가고 있는데..
갑자기 마을에 싸이렌이 울리면서 주위에 그 많던 북한군이 점점 북으로 사라지더란다. 증조할머니 내외는 얼른 짐을 싸느라 분주하셨고 주위에 살던 약 50호 가량..(옛날에는 50호면 엄청 큰 마을이었다는데..) 되는 마을 주민들은 하나 둘 씩 떠나고 있었단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음날 증조할머니와 이모할머니(할머니 언니)께서 장티푸스에 걸려 몸져 누으셨고 결국 증조할아버지께서는 그냥 마을에 남자고 결정하셨단다.
"그날 저녁이었을꺼야. 비행기 소리가 쌩~하고 울리고 그 때부터 폭격이 시작되더라구. 밤을 꼬박 새면서 폭탄이 떨어지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말도 못했지. 새벽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어머니가 아픈 몸을 이끌고 방공호로 대피하자고 하셔서 짐을 싸고 도망갔지. 그래서 뒷산 방공호로 도망갔는데 그날 저녁부터 폭탄이 떨어지더라구. 떙쿠가 막 오더니 저 앞산에서 불이 번쩍하면 마을 담하나가 터지고 그랬다니까. 그렇게 만 하루를 포만 쏘더라구.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포는 떨어지고 하니까 얼마나 무섭던지."
"그렇죠, 처음엔 일단 포가 떨어지니까요."
"그렇지.. 그런데 그 와중에도 우리 앞 집에 화생이라고 있었는데. 나보다 한살이 많았어. 그 놈이 그냥 포가 잠깐 그치니까. 주민들이 미쳐 못가져간 숟가락으로 미숫가루나 주워먹고 오자는거야. 배가 너무고프니가 그러자고 했지. 그래서 폐허가 된 마을에 틈새로 들어가서 막 먹고 숟가락은 바지에 꼽고 일어서는데.. 바로 옆에서 펑 하는거야"
"그래서요? 다치셨어요?"
"아니 다치진 않았어. 얼른 땅속으로 숨었지. 근데 그 위로 흑벽이 무너지고 이러더라구. 한 반나절동안 포가 떨어지는데 내내 울기만해서
나중엔 지쳐서 울음도 안나오더라구. 닷새동안 오는 비는 계속 오고 있지. 너무 힘들지.. 옆에 있는 화생이란 놈은 미운짓만 골라서하지 힘들었는데 어머니가 내려오셨어. 방공호에서 또 금강굴로 피신가셨다가 내가 없으니까 내려오신거지.. 결국 반나절만에 다시 돌아가서 겨우겨우 살았지"
"그래서요? 폭탄 떨어졌으면 군인들 왔을텐데.."
"아 그게 내말 들어보라니까. 그 다음날부터는 대포소리가 안들리더라구. 그래서 마을로 내려가보니까 우리집하고 한 두어집은 좀 살만하더라구. 그래서 내려가 살려고 했지. 일단 물부터 떠오라고 해서 여기서..한 북광장쯤 되나? 그정도 거리에 우물로 갔는데. 바로 그 옆에가 뚝방이거든. 그래서 등 뒤에 우리 강아지 들쳐메고 바가지들고 가서 물을 푸고 머리에 인다음에 일어서는데.. 한 저 옆집 정도거리에 뚝방 아래에 흰둥이고 깜둥이하고 총을 요렇게 얼굴 가까이에 쳐들고 날 보고있는거야. 그래서 그걸 보고 너무 놀라서 뒷걸음치는데 옆에서 하나둘 서서히 깜둥이들하고 외국놈들이 오는데 생전 처음 보는 놈들로 둘러 쌓였더라구. 결국 나자빠져서 우물물 다 엎질러지고 난 무서워서 도망갔지. 얼른 냅다 뛰어서 집에 들어가서 아버지 한테 '우리 도망가야해요. 얼른 피난가요' 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멍 하니 밖을 보시더라구. 그래서 나도 밖을 봤더니.. 이건 무슨 사람바다야. 껌둥이 흰둥이 누구 할거 없이 바다를 이뤄서 집을 포위하고 있더라고"
"그래서요? 막 시비 걸지 않았어요? 헤코지 안하구요?"
"흰둥이하고 깜둥이 한놈이 대문을 넘어서더니, 총을 요래 들치고 천천히 오더라구. 그러더니 한놈 두놈 대문을 넘어서더니 앞마당을 가득체운거야. 우린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아버지가 배우신분이라 앞으로 나가시면서 말씀하시더라구. '수고가 많아요. 잘 왔어요. ' 막 주위 어른이 죽는다고 죽는다고 하면서 말리려는데 점점 더 앞으로 나가시면서 말씀하시더라구. 막 깜둥이가 총을 아버지한테 들이밀면서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저 뒤에서 한국말이 들리더라니까. '가만히 있으세요, 아저씨. 오지마시구 가만히 있으시라구요'. 알고보니까 통역병이었던거야. 외국놈이 한발만 더오면 쏜다고 움직이지말라고 한거였다는데 뭐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 결국은 그놈들이 총을 내려놓고 우물물 기어다 물 한잔씩 얻어 마시고 있는데 물어오더라구. 인민군 지원했냐.. 아들들은 다 어딨냐.. 하는데 아들이 어딨어 딸만 둘인데. 그래서 딸만 둘이요 했더니 통역관이 금새 뭐라뭐라 하더라구. 그러더니 그 미국놈들이 금새 풀어져서 농담도 주고받고 하다가 한..이십분 있었나 다 빠지더라구. 그러더니 바로 한국군이 정말 바다처럼 몰려오는거야. 그 흰둥이들은 정찰하는 사람들이었던거지. 본대가 와서는 얼마나 썡지랄을 떠는지. 외국놈들은 양반이야. 같은 한국 사람한테 있지도 않은 아들 잡아왔으니 곧 죽일거라고. 따른 아들 어디있냐고 고래고래 욕을하고 쳐 부시고 하는데 .. 폭탄보다 그 군인들이 더 무서웠다니까. 근데 없는 사실을 있다고 말하나? 딸만 둘이라고 계속 말했더니 결국은 다 나가고 폐허로 된 마을에 막사를 치더라구. 한 5일만에 다쳤어. 그러더니 거기서 한 열흘 있더라구."
"그런거보면 연합군이 북으로 밀칠땐가본데요"
"몰르지 아무것도 몰라. 그 땐 어린데다가.. 소식이 느려서.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미국놈들이 북으로 쳐들어갈 때 였어. 이미 북한놈들이 전쟁했다가 밀리는거지 뭐. 아무튼 그렇게 막사치고 사는데 내가 어린데 뭘 알아? 그저 막사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강아지랑 놀고 그랬지. 그런데 뭐 주민이 있어야지 그렇게 근처로 오는 사람들이 나 밖에 더있어? 그래서 이름이 뭐냐, 해서 월순이요 했더니 몇살이냐 해서 9살이요 했지. 배고프냐 해서, 배고파요 했더니 건빵에 초콜렛에 약에 뭐에 잔뜩 주는거야. 그거 먹고 일어서면 또 옆 부대에서 불러서 또 이만큼주고. 그럼 그걸 들고 집에가서 어머니한테 주고 나눠먹고 했지. 그 때 그 약으로 어머니랑 이모할머니가 장티푸스에서 나았던거야. 그렇게 열흘 있다가 한국군이 오더니..
'이제 좀 있으면 미군차가 오니까. 여기 떠나서 딴 곳에서 사세요. 아무것도 가져갈거 없고 가면 집도 주고 옷도 주고 먹여 주니까 그냥 몸만 가세요.' 하더라구. 뭘 알아야지. 그냥 이불 보나 싸들고 무작정 미군 트럭에 타고 지금의 어디야. 광나루 천오동 아래쪽으로 데려다주더라고. 거기 완전 허허벌판인데. 천막치고 북한 주민들을 모아두더라고 거기서 살라고. 뭐 빌어먹고 살게 있어야지 살지. 사람들만 많지 아무것도 없는데. 거기서 있다가 결국 원주로 내려가서 기반잡고 살기 시작한거지."
"정말 제대로 전재을 겪으셨네요 할머니 몰랐는데.."
"그럼, 광나루로 오는 도중에는 내가 춘천에서 장티푸스 걸려서 미군병원에서 한 닷새동안 치료받고 그랬어. 그 떈 장티푸스 걸렸다 하면 반은 죽었는데 뭐. 다행이 운이 좋아서 난 살았지. 아무튼 그 때 그 깜둥이 흰둥이가 총 겨누고 있는 모습하며 폭탄 소리하며 전쟁이 너무 무서워. 일어나면 절대 안되. 뭐 네 다음 다음대에서는 있던 말던 상관없는데 그전엔 안되지 안되.."
... 이렇게 긴 이야기가 끝이 났다. 사실상 더 길었는데 추리고 추렸다...
암튼 오늘..
정말이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버렸다. 신기하면서도 무서운 또 애틋한 할머니 어렸을 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