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저 여자의 목숨은 내가 쥐고 있는가? 정안의 언니라는 사람이 또 소릴 쳤다.
“도와줘요!”
망할. 그렇게 다급하게 소리 좀 치지 마. 넙치가 상황을 똑바로 이해해 버리잖아. 잠자코 그냥 내 손에 죽을 거라고 생각해. 그냥 체념하면 살 수 있어. 미련한 여자야.
“느들 뭔데 그러고 꼬오옥~ 붙었냐? 정분났냐?” 넙치가 물었다. 넙치에게서 알 수 없는 비린내가 났다. 비 맞은 개새끼들 털에서 나는 것 같은 비린내. 수연이 쌩긋 웃었다. 소름끼칠 만큼 환하고 자연스러웠다.
“우리 사귄지 얼마나 오래 됐는데? 그지? 자기. 말해봐. 자기 입으로.”
수연의 얼굴을 돌아봤다. 뭐가 그리 흐뭇하다고 입꼬리를 귀걸이 대신 귓불에 걸었다. 수연의 왼손은 설설 내 손에 깍지를 끼어왔다. 수연이 컬렉션 앨범을 펼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 이름에 빨간 줄을 그으며 “수집 완료.” 혼잣말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 우리 사귄지 오래야.”
내가 말하자 넙치가 의외란 눈으로 되물었다.
“너 저번에 얘보고 쓰레기 같은 여자라며.”
넙치가 괜한 소리를 했다. 넙치는 그런 놈이다. 원래부터. 남들을 이간질 하는 것이 능숙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건 넙치의 장기다. 섬사람들이 넙치의 지독한 말장난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다만 넙치의 농간은 참 그럴 듯하다.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수연이 잡고 있던 깍지 손에 손톱을 세웠다. 손등에 깊은 손톱자국이 패였다. 쓰라린 것이 일부는 찢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철민이, 니가 전에 그랬잖어? 수연이 같은 걸레 같은 년은 처다 보기도 싫다고. 안 그랬냐?”
“광오 오빠가 오해가 있었겠죠. 우리 자기가 그럴 리 없어요.”
수연이는 지금 자기 얼굴이 무슨 표정을 짓는 줄 모른다. 분명하다. 웃음을 지으려고 하는 입술 끝이 어물쩍 거렸다. 어색했다. 참으로 어색했다. 넙치는 수연의 얼굴을 읽고 웃음 지었다.
“공갈 놓지 마라. 엉아한테…. 늬들 서로 얼굴 안 보고 사는 거 섬사람들 다 알아. 누굴 병신으로 아나…… 무슨 개수작이 부리고 싶어? 저기 편의점 안에 있는 정신 나간 년은 또 뭐야?”
“우리 진짜 사귀거든!”
수연이 넙치에게 대들었다. 멈춰야했다. 넙치 놈의 참을성은 한계점이 낮다. 여자에게라도 금방 손을 올릴 것이다. 넙치를 흥분시키면 피곤해지는 건 나다. 얻어맞게 될 수연도 아니다. 죽음 당할지 모를 정안의 언니인 사람도 아니다. 바로 나다. 넙치를 막아서야 하는 바로 나다.
“우리 손님이야. 지금 미쳐서 발광해.”
내가 말하자 넙치가 편의점 안을 눈으로 훑었다. 정안의 언니를 위아래로 째리던 넙치가 물었다.
“왜 저래 또?”
또? 또 라고 했다. 다행인 일이었다. 넙치가 ‘또’라고 했다는 것은 희소식이다. 또 마을에서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났다. 또 가족의 자살한 시체를 본 여자가 미쳐 날뛴다. 또, 그저 오늘도 또한 또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말하면 된다.
“오늘 시체 인계받으러 왔거든.”
“근데 왜 편의점 안에서 저래?”
“내가 무리하게 붙잡으려다 놓쳤어.”
“철민이 너도, 참~나. 야, 다리 뗘버려라. 미친? 여자도 하나 못 잡어 그래?”
넙치가 편의점 문으로 슬슬 걸었다. 신발 밑창이 석석 아스팔트를 갈았다. 그 모습이 마치 지진이라도 일으킬 듯 기세가 당당했다.
“봐둬, 내가 어떻게 처리하는가. 니미 남자새끼가 이런 것 한 처리를 못해가지고.”
“문 깨면 안 돼!”
수연이 소리쳤다. 수연의 말에 넙치는 멈칫하고 자리에 섰다. 넙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반만 돌아간 넙치의 얼굴로 잔뜩 찌푸려진 표정이 배겨있었다. 살벌하게 생긴 칼자국이 움찔하고 경련했다. 넙치는 목소리를 내리 깔았다.
“수리비 주면 되잖아….”
수연도 그런 넙치의 인상 앞에선 요지부동이었다. 수연이 대답도 못하고 침만 삼켰다. 다시 편의점 앞으로 걷던 넙치가 주변을 살폈다. 넙치는 무덤덤하게 편의점 앞에 있던 파라솔을 집어 들었다.
“나 담배 사야 돼 어차피.”
말을 마친 넙치가 파라솔을 든 팔을 휘둘렀다. 파라솔은 뭉툭한 머리를 앞으로 하고 날았다. 투창을 하듯 맹렬하게 던진 넙치의 팔에서 바람소리가 일었다. 파라소리 퍼드득! 하고 일순 날갯짓을 했다. 그리고 모두가 숨을 죽었다. 설마 싶던 파라솔의 코의 일부분이 편의점 유리문을 꿰고 들어갔다. 강화유리를 한 방에 깬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보통 사람의 완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안의 언니는 편의점으로 침투한 파라솔을 응시했다. 온몸이 굳어 뻣뻣해 진 것이 너무도 명확히 느껴졌다. 이내 그녀는 주저 앉아버렸다. 나였어도 다리가 풀렸을 것이다. 넙치는 읊조리며 말을 시작했다.
“문 열어 이 씨발년아. 미친년이 발광을 하려면 길거리에서 할 것이지. 넌 문 열리면 아가릴 찢어버릴 줄 알어. 문! 열어! 이씨!”
넙치가 파라솔을 뽑아 다시 세차게 문을 내리 찍었다. 유리 파편이 그녀의 얼굴을 향해 뿌려졌다. 그녀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말려야했다. 말리지 않으면 어떤 결말을 맺을지 모른다.
“야! 넙치야. 씨, 적당히 해. 놀라서 그런 건데. 그렇게 까지 하면 쓰냐! 내가 타이를게.”
넙치는 나를 힐끔 돌아보더니 문을 내려치는 것을 그만 뒀다. 넙치에게도 파편이 튀었는지 손등으로 피가 흐른다.
“야, 이제 문 열어. 장난치지 말고.”
넙치가 편의점 구멍 안으로 말을 걸었다. 정안의 언니는 한참 넙치를 올려다봤다. 넙치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수연이 내 팔을 쥐고 흔들었다. 속상하다는 듯 얼굴이 울상이다. 어차피 수리비야 몇 푼 안 된다. 이제 그만 편의점 문을 열길 바랬다. 순응해. 그럼 괜찮아. 뺨정도 한 대 대주면 살 수 있어. 제발 헛소리는 하지 말고 문을 열어.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경찰.”
“뭐?”
그 말이 아니지! 미친.
“경찰. 경찰! 경찰! 경찰!”
정안의 언니는 잠바 주머니를 급하게 뒤졌다. 그리곤 핸드폰을 꺼내들어 급하게 번호를 찍는 모습이 보였다. 넙치가 우리에게 물었다. 우릴 돌아 본 넙치의 얼굴에 빨갛게 피가 쏠려있다. 금방이라도 터질 시한폭탄처럼. 이제 넙치를 말리는 건 불가능 할지도 몰랐다.
“야, 저 씨발년, 지금 쟤 뭐하냐? 경찰이라고 했냐? 쟤 지금 신고하냐?”
넙치가 파라솔을 땅으로 팽개쳤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