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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e [자작뻘글]
게시물ID : readers_99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eepViolet
추천 : 1
조회수 : 19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1/13 23:17:29

  기억을 더듬어 사진 속에 남아 있는 오래된 레코드 가게를 찾아갔다.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맸다. 익숙한 거리 속에서 계속 같은 곳을 맴돈 이유는 내가 길 찾는 데엔 젬병이기도 하지만 그 쓰러져가던 가게가 번듯한 화장품 가게로 변한 것이 우선이었다. 사진을 보니 레코드 가게 옆의 분식점도 카페로 바뀌어 있었다. 왠지 모를 씁쓸한 기분으로 나는 일단 분식점이 있던 자리에 차려진 카페에 들어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가지고 온 사진들을 김이 나는 커피 잔 옆에 펼쳐 놓았다. 사진들은 벌써 수 년 전에 인화한 것인데 조금도 빛이 바라지 않았다. mp3를 켜고 존 레논의 ‘imagine'을 틀었다.

  그녀는 종로에 오면 제일 먼저 그 레코드 가게에 들렀다. 가게 유리문에는 <애비 로드(Abbey road)>를 비롯한 비틀즈의 사진 수십 장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비틀즈의 팬이었다. 정확히는 존 레논을 좋아했다. 그녀는 비틀즈에는 관심조차 없는 내게 허구한 날 존 레논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녀로부터 존 레논과 요코가 신혼여행지에서 평화와 반전은 발가벗은 상태의 순수함으로만 주장된다.’며 거의 알몸으로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 평화 구호를 외쳤다는 일화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했다. 그것도 레코드 가게 바로 옆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으면서……. 한번은 내가 같은 얘기를 듣기가 지겨워 듣는 둥 마는 둥하며 건성으로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나를 그대로 근처 여관에 데려갔다. 결국 그날 나는 알몸에 하늘하늘한 가운만을 걸치고 피스 마크의 손 모양을 한 채로 그녀와 함께 카메라 속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그녀의 일방적인 수다가 멈춘 것은 우리가 만나지 않게 된 후부터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녀의 지겹던 존 레논 이야기가 때때로 그리워지곤 했다. 사진은 나에게 기억을 남겼다. 그리고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도 않았다. 사진 속의 그녀는 여전히 입으로 떡볶이 국물을 튀겨대며 존 레논을 말하고 있다.

  그녀는 언젠가 내게 신은 인간에게 세 가지 선물을 주었다고 말했다. 사랑, , 그리고 망각. 뜨겁게 사랑하고 이별 후에 차가운 술을 마시고 그대로 조용히 잊어가는 게 순리라고 했다. 나는 그게 싫었다. 모든 기억들을 추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결국엔 내 의도대로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사진 속 그녀를 떠올리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다. ‘imagine'을 부르는 건 존 레논이 아닌 그의 목소리를 따라 부르고 있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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