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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필리버스터)와의 4박5일이 바꾼 것들
게시물ID : sisa_6719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닥호
추천 : 25
조회수 : 954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6/02/27 23:09:54
“진즉 이런 토론 문화가 제대로 있었다면…”


52년 만의 필리를 대하는 의원들의 자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의원들 스스로에게도 필리는 낯선 경험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모르고 우왕좌왕 했지만 토론자가 늘어날수록 나름의 요령을 터득하고 이를 서로 공유합니다. “발 아픈 걸 참기 힘들다”는 1번 타자 김광진 의원의 ‘팁’에 운동화를 신고 등장하는 의원들이 늘었습니다. 토론에 참여하기로 한 의원들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어떤 내용을 발언할 지 고민하고 자료를 모읍니다. 법안과 관련 없는 내용을 토론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 때문에 ‘감시자’ 역할을 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중간중간 이의제기를 하지만 각자가 알아서 이를 지키려 애를 씁니다. 특히나 테러방지법이 국가정보원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보니 의원들은 국정원 혹은 그 이전의 안전기획부와 인연을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안기부에 고문 받고 안기부 요원들에 미행 당하고 했던 경험이 이렇게 쓰일 줄은 미처 몰랐다”는 말과 함께 쓴웃음을 짓는 의원들도 있습니다.

필리를 접한 의원들이나 국회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국회에서는 소리 크고 밀어붙이는 거 잘하면 무조건 이기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본회의장이나 국회에서 차분함과 고즈넉함이 주는 힘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한 야당 의원은 “필리를 최대한 오래 하기 위해서는 마냥 목소리를 키우면 안 되고 차분함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며 “늘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삿대질하고 소리지르고 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라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지만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다”라고 전했습니다. 비록 상대 없이 혼자 말하는 ‘독백 토론’이지만 토론의 중요성이나 무게감을 새삼 느끼게 됐다는 이들도 많습니다. 한 때 ‘물리적 충돌’에 연루됐던 강기정 더민주 의원은 “진즉 이런 토론 문화가 제대로 있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텐데…”라며 아쉬워했습니다. 

또 다른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시간 경쟁밖에 모른다’ ‘총선 앞두고 선거 운동’ 한다고 자극하는데 예전 같으면 집단으로 흥분하고 맞설 테지만 처음에 잠깐 그랬던 것 빼고는 필리를 겪으면 의원들 사이에 ‘그러지 맙시다’ ‘그래서 뭐 해’ 하는 반응들이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의 마음도 조금씩 키우게 됐다는 이들도 많습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앞서 은수미 의원이 세웠던 최장 기록(10시간 18분)을 깰 수 있었지만 9시간 29분 만에 단상을 내려오면서 “은수미 의원은 국정원의 전신 안기부에서 고문 피해를 입은 분이다. 피해자의 기록으로 남았으면 했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평소 ‘친절한 석현씨’라 불리는 더민주 소속의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서기호 정의당 의원에게 “3분 안에 화장실을 다녀와도 된다”는 말로 본회의장의 의원들에게 잠깐의 미소를 선사했습니다. 더민주 당직자들은 속기사, 청경 등 필리 때문에 고생하는 국회 사무국 직원들과 기자들을 위해 감사 글과 함께 주전부리를 담은 ‘깜짝 선물 봉투’를 나눠주기도 했구요.

더민주 당직자들이 26일 국회 사무처 직원들에게 작은 주전부리 봉투와 함께 건넨 감사 글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0&sid2=265&oid=469&aid=0000129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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