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1949년의 서울
게시물ID : humorbest_6720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블소홀릭
추천 : 31
조회수 : 2181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5/06 15:28:06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5/04 22:01:44



1949년은 미 군정이 끝난 직후였다.

해방이 그들 손에 의해 주어진 것이기에 사회 곳곳에 미국의 영향이 컸고, 그 영향을 받은 아이들의 복장을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이 레인저 복장을 하고 있다.



이사라도 가는지 잔뜩 임을 지고 요령 좋게 걸어가는 아낙들.



어느 공공 기관 앞에서 경찰관이 가마니에 기관총을 거치하고 경계를 서고 있다.

손에 든 총은 일제의 잔재로서 99식 단발 소총에 창을 꽂은 일본식 무기다.



나무를 둘러친 마차의 모습이 특이하다.

당시의 택시 역할을 대신하던 운송 수단



흰 두건을 쓰고 겨울 복장으로 잡화를 파는 노점상의 모습.

나무 상자 위에 물건을 올려놓고 파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흰 수염을 한 노인이 가판을 펴고 잡화를 팔고 있다.

노인의 뒤로 삼평 여관과 한원 여관의 손글씨 간판이 보인다.



을지로 입구 광통관의 모습.

지금은 이 건물 중 한채만 남아 있다.



5사단 본부라는 팻말



현 우리은행의 전신인 조선상호은행 종로 지점의 모습



시계를 파는 시계포 모습.

당시는 손목 시계보다 팬던트형 줄 시계가 유행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줄 시계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리에서 담배를 파는 노점상.

당시는 우리 나라에 담배 제조 기술이 없는 탓에 양담배만 팔았다.



이 사진이 찍히고부터 1년 뒤, 1950년의 6.25 전쟁 중 파괴되어 사라지게 되는 옛 중앙 우체국 모습.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 우체국이라고 불렸다. 

붉은 벽돌의 청동 지붕이 있는 19세기 풍의 르네상스식 건물로, 건축사에 그 미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었으나, 6.25 중 애석하게도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 화신 백화점.

일제 강점기 화신 그룹의 박흥식 씨에 의해 세워진 이 백화점은 장안의 명소였고

광복과 전쟁, 혁명과 경제 발전을 고스란히 지켜본 역사의 증인과도 같은 백화점이었다.

지금은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헐려져 이 곳에는 밀레니엄 빌딩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역 앞에 있던 대동 예식장과 사진관의 모습.



건물을 등지고 상인들이 물건을 수리하고 있다.

신발을 고쳐주는 갖파치와 엿을 파는 엿장수의 수레도 보인다.



분수대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

이들에게 불과 1년 후 6.25의 참화가 닥칠 줄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당시는 많은 지게꾼이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물건의 양으로 추측하건대,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옮기는 중으로 생각된다.



제일연합본부라고 쓰인 간판 앞에서 교통 정리를 하는 경찰관의 모습.

드럼 통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뒤로 보이는 산이 바로 남산이다.



한겨울의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목도리로 머리 끝까지 감싸고 물건을 파는 상인과 행인의 모습.



서울역 앞에서 남대문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

당시 명소였던 대동 예식장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당시 간판은 대부분 한문 위주로 쓰여 졌다.

이발소와 양복점의 간판도 한문으로 쓰여 있다.



용산의 어느 공공 기관 지점.


당시 상점의 모습.

대부분 나무 재질로 매대를 제작해 놓았다.



당시 서울 시가지를 누비던 109호 전차의 모습.

당시는 노면 전차가 서민의 발이었다.






당시의 노상주점 모습.

지금의 포장마차 격. 주머니 가벼운 서민의 애환을 녹여주던 저렴한 주점이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