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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명언35 -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 백영옥
게시물ID : lovestory_673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좋아헤
추천 : 1
조회수 : 106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7/04 20:29:03

출판일 12.07.16
읽은날 14.07.04

31p.
이들에게 사라진 건 태양이 직선으로 뻗어 있는 오전의 활기였다. 아침이 되었지만 이들의 눈은 밤처럼 닫혀 있었다. 자물쇠로 채워진 눈동자는 생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사강은 이들의 얼굴에서 보통 사람들 같으면 충분한 수면만으로 지워졌을 악몽의 그림자를 보았다.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베였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함으로써 누군가로부터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53p.
사강의 이별은 일 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자주 뜨거워졌다. 그녀는 밭은 재채기를 종종 내뱉었다. 가혹한 봄날이었다. 손수건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손수건마저 정수가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와 연결되지 않은 물건을 찾는 게 불가능해질 즈음, 사강은 실연이 어긋난 뼈를 다시 맞추듯 죽을힘을 다해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사물을 그와의 기억쪽으로 되돌리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이제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그녀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와 함께 걷던 길에 이런 나무가 서 있었어.
그와 함께 먹던 음식에 이런 토끼 귀 모양의 은빛 스푼이 놓여 있었지.
그는 김광석의 노래를 참 좋아했었어.
그와 함께 보던 영화에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이 흘러나왔어.

74p.
사강은 <500일의 섬머>를 세 번 봤다.
"다들 몰라서 그렇지, 사실 혼자라는 건 너무 평가 절하된 거야!"라는 주인공의 대사는 자신의 다이어리에 파란 색 플러스펜으로 적었다.

84p.
지훈과 현정은 <위기의 주부들>의 6시즌 7화를 보다가 비슷한 시간에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현정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지훈은 구부러진 소파의 모서리에 머리를 대고 자다가 깨어났다. 지훈은 현정의 입가에 하얗게 말라붙은 침 자국을 바라보았고, 현정은 왼쪽으로 칼잠을 자느라 쿠션의 격자무늬 자국이 잔뜩 찍힌 지훈의 왼쪽 뺨을 바라보았다. <위기의 주부들> 1, 2, 3, 4, 5 시즌을 함께 본 연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른 아침의 풍경이었다.

102p.
지훈은 시간이 오래된 가죽처럼 부드럽게 낡아가는 것이라고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158p.
"... 트루먼 커포티. 커포티의 소설을 인용하는 게 좋겠어요.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164p.
오늘날 대부분의 친구들은 결혼을 하면 딱 한 사람과 가정을 이룬다. 신랑은 친구가 하나 생기는데 그나마 여자다. 신부는 이야기 상대가 하나 생기는데 그나마 남자다!
- 커트 보네거트

196p.
마침내 사강은 '슬픔이여 안녕'이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처녀작이며 대표작이라는 사실까지 기억해냈다.
"아빠가 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었어. 태어나기도 전에 넌 사강이었지. 아들이었어도 네 이름은 윤사강이었을 거야."

217p.
"기장님이 건조한 걸 정말 싫어하시니까, 칵핏에서 콜 오기 전에 자주 차를 갖다 드리도록 해. 커피는 절대 안 돼.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온도를 아주 잘 맞춰야 해. 딱 한 마디만 해줄게. 무조건 뜨겁게 만들어야 돼! 최대한 뜨겁게! 기장님은 미지근한 걸 제일 싫어해. 물은 아주 차가워야 한다는 것도 알겠지? 차갑고 뜨겁게. 그것만 기억해둬."

326p.
그녀는 욕실에 가서 손을 씻었다. 천천히 손가락 사이에 비누 거품을 내고 흐르는 물에 손가락을 적셨다. 사강은 수건으로 손을 닦은 다음, 다시 한 번 하얀색 접시 위에 담긴 새 비누를 뜯어 손을 씻었다. 생각해보면 비누 하나를 온전히 쓸 만큼의 시간도 정수와 보내지 못했다. 사강은 손가락 사이 가득 낀 투명한 비누 거품을 바라보았다. 쓸쓸해 보였다.

363p.
"잃어버렸다는 말은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제하는 말이란 생각이 들어요. 잃어버린 지갑이나 휴대폰을 되찾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니까. 하지만 잃어버린 걸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그땐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게 돼요."

376p.
"하지만 전 연애를 우연히 이루어진 환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애는 질문이고, 누군가의 일상을 캐묻는 일이고, 취향과 가치관을 집요하게 나누는 일이에요. 전 한순간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믿지 않았어요. 대단한 영감으로 순식간에 걸작을 써내는 작가를 좋아하지도 않아요. 트루먼 커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를 쓰는 데 육 년이나 걸렸어요. 그런 거에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죽도록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 우연히 벌어지는 환상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철저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 그게 제가 알고 있는 연애에요."

417p.
'고마워'로 시작하는 사랑보단 '고마워'로 끝나는 사랑 쪽이 언제나 더 힘들다. 상대보다 힘들어지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은 이별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로 새겨질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지훈에게 그것은 운동장을 빠르게 뛰는 현정의 뒷모습으로 기억될 것이었다. '미안해'로 끝나는 사랑보다 '고마워'로 끝나는 사랑 쪽이 언제나 더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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