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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유대인 학살 관련해서
게시물ID : sisa_653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솔미르
추천 : 0
조회수 : 60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9/03/04 14:58:05
프리메이슨, 그리고 음모론 2-시온의정서의 허구성
http://cogitum.egloos.com/285654

시온의정서의 유래
http://blog.daum.net/snuec/6759595

일루미나티
http://blog.daum.net/_blog/ArticleCateList.do?blogid=06gda&CATEGORYID=195499&dispkind=B2201#ajax_history_home

시온의정서에 대한 언론과 명사들의 평가 
http://gall.dcinside.com/list.php?id=mystery&no=286834

댓글이 안달아져서 (무슨 이상한 문자가 포함 됐다고 글이 안써지네요) 글을 새로 씁니다. 홀로코스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 유럽과 러시아에 있었던 반유대주의를 이해해야하고 그 원인이 되었던 시온의정서에 대해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기한 자료에 따르면, 시온의정서의 기원은 Jagob Venedey가 쓰고, 1850년 Franz Dannicker가 베를린에서 발행하고, ‘마키아벨리 몽테스키외 그리고 루소’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1864년 프랑스 법률가 모리스 졸리가 모리스 졸리(Maurice Joly)의 "마키아벨리와 몽테스키외의 지옥에서의 대화"에서 나폴레옹 3세에 반대하는 위한 계획을 주장하였다. 이를 헤르만 괴드체가 존 레트클리프(Sir John Retcliffe)라는 가명을 사용한 소설((Biarritz, 1868)에서 유태인을 등장시켜서 유대인 비밀 결사가 세계를 정복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1897년 처음에는 사적으로 인쇄되었다가 1905년에 대중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 러시아 중심인물이 포트르 이바노비치 라츠코프스키와 일리야 치온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세르게이 닐스가 시온의정서를 러시아로 가져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시온의정서는 위서이고 러시아 비밀경찰에 의해 지어진 소설이라는게 정설이지만 위서임을 인정하면서도 위서가 오늘날에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 만큼 현재 드러나지 않은 원본에서 유래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추정과 ‘움베르토 에코 효과로 위서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었기에,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처럼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입니다. 즉, 시온의정서가 위서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이 가치가 있다고 보아 시온의정서대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조직이 태동했을 가능성이다. 시온의정서(Pro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가 최초로 작성된 시점은 대체로 1894년이나 1897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결정적으로 엄청나게 유명해진 것은 1903년 제정러시아의 수도 페쩨르스부르그에서 신문에 공포된 이후다. 그런데 300인위원회가 결성된 시점이 1897년입니다. 

러시아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심증을 들어보자면 시온의정서가 나온건 1905년 러시아 혁명 직전이었고 당시 러시아에 많이 영향을 끼치는 일본과 유대인간의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다는거겠죠. 
진실은 저너머에 ㅋㅋ

한국사회의 유대인 이미지 변천사 소고
http://fim.or.kr/board/view.php?id=board2&no=338

우리나라와의 상관 관계에 대해 써보자면 시온 의정서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건 박정희 대통령 때였고 그 동안 안보이다가 외환위기 이 후 이리유카바 최의 그림자정부 부터 입니다. 다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 전문 출판사인 해냄에서 나왔다는건 재밌는 부분입니다. 관심 있다면 그림자 정부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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