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오래 기다린다고 해도
또 한 평생을 바쳐 노력한다 해도
내겐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사람이란 있는 거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이해한다 해도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 된다 해도
나로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사랑이 있는 거다.
언제나 아름다운 주인공을 꿈꾸는 우리.
그러나 때로는 누군가의 삶에 이토록 서글픈 조연일 수 있음에.
냉정과 열정사이 中
아카시아 향내처럼
5월 해거름의 실바람처럼
수은등 사이로 흩날리는 꽃보라처럼
일곱 빛깔 선연한 무지개처럼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휘파람새의 결 고운 음률처럼
서산마루에 번지는 감빛 노을처럼
은밀히 열리는 꽃송이처럼
바다 위에 내리는 은빛 달빛처럼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배연일,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
예고없이
그대와
마주치고 싶다.
그대가
처음
내 안에 들어왔을 때의
그 예고 없음처럼
구영주, 헛된 바람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을
차마 쓰기 어려워서
이은상, 개나리
생각은 언제나 빠르고
각성은 언제나 느려
그렇게 하루나 이틀
가슴에 핏물이 고여
흔들리는 마음 자주
너에게 들키고
너에게로 향하는 눈빛 자주
사람들한테도 들킨다
나태주, 개양귀비
공사 중인 골목길
접근금치 팻말이 놓여있다
시멘트 포장을 하고
빙 둘러 줄을 쳐 놓았다
굳어지기 직전,
누군가 그 선을 넘어와
한 발을 찍고
지나갔다
너였다
문숙, 첫사랑
철길에 앉아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철길에 앉아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 멀리 기차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기차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코스모스가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기차가 눈 안에 들어왔다
지평선을 뚫고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기차는 곧 나를 덮칠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낮달이 놀란 얼굴을 하고
해바라기가 고개를 흔들며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싶었다
정호승, 철길에 앉아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천상병, 갈대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 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 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류시화, 소금인형
찰랑이는 햇살처럼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버리고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문정희,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