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남자의 뺨을 후려쳤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도심, 그것도 주말 오후.
때 아닌 난투극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때마침 그 근처를 지나는 길이었다. 우리가 탄 차가 신호에 걸려서 멈춰있었다. 채수는 아예 핸들을 놓고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나도 동참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근방의 수십, 수백 명의 눈이 한 곳에 집중되고 있었다. 싸움이 났다면 으레, 어느 한쪽이 고함을 치기 마련이겠지.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하는 상투적인 말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서로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붙잡아 흔드는데에 몰두해 있었다.
“저 사람들, 대체 뭐야? 정신병자들인가.”
싸움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눈을 빛내던 구경꾼 중 하나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횡단보도에 서있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마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픽 웃고 말았다.
남자대 남자, 여자 대 여자가 맞붙었더라면, 으레 한 사람을 두고 벌이는 치정싸움이겠거니 치부해버렸을 텐데 이건 남자 대 여자의 싸움이었다.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이 탄성을 토해냈다. 여자가 남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위에 올라타 주먹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 역시 감탄해마지 않았다. 여자는 체중이 50kg도 안될 것처럼 보였다. 44사이즈, 다이어트 열풍에 휩쓸린 젊은 여성들 중에 하나로 보였다. 3kg짜리 아령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할 것처럼 가녀린 팔로 남자, 그것도 불곰처럼 덩치가 큰 남자를 휘두르고 있는 거였다.
“격투기 선수끼리 싸움이 붙은 건가보다.”
옆에서 채수가 멍하니 중얼댔다.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추측이 터져 나왔지만 모두 ‘그런가보다, 그런 거 아닐까?’하는 가정에 그쳤다. 누구도 저들의 관계를 쉽게 정의내리지 못했다. 저들을 친구라기 보기엔 공통점이 없어보였고, 연인이라기 보기엔 잔인한 면이 많았다. 아무리 관계가 소원해졌다한들 ‘연인’인 사람들끼리 저렇게 살벌하게 싸울 수 있을까?
마침 남자가 자신의 몸에 올라탄 여자를 내동댕이쳤기 때문에, 나는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여자는 머리를 쓸어 올리고 있었다. 여자의 관자놀이에서 붉은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저 사람들 대체, 뭐지? 무슨 사이야? 궁금증은 극에 치달해 초조할 지경이었다. 단순한 머리로는 몇 가지 추측밖에 되지 않았다. 친구, 연인이 가망성이 없다면 이제 남은 건 하나밖에 없다. 부부싸움인가?
“설마.”
신성한 결혼이란 풍습으로 엮인 부부가 한낮, 시내 한복판에서 육탄전이라니. 저런 사람들이 사는 집의 풍경은 차마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았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나갔다간 등에 식칼을 맞고 질질 끌려가 강제로 음식을 입에 쑤셔 넣을 것 같지 않는가. 피칠갑을 한 남편을 앞에 두곤 ‘여보, 잘 다녀와요. 가는 길에 응급실에 들러서 꿰매고 가구요. 이따봐요~’……이게 말이 돼?
“야, 방금 봤어?”
“뭐가?”
“남자를 찔렀어. 저 여자……사람을 죽였다고.”
채수는 겁에 질려 있었다. 보조석에 앉은 나에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얼른 차에서 내렸다. 어느새 신호가 바뀌었지만 어서 출발하라고 경적을 울리는 차는 없었다. 모두, 정지버튼을 누른 듯 눈을 크게 뜨고 남자가 죽어가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급소를 찔린 모양인지, 남자는 목을 붙잡고 고꾸라진 다음 일어서지 못했다. 내가 본 것은 그의 짧게 경련하는 다리뿐이었다. 멈춰있던 사람들이 마법에 풀려난 것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우르르- 그에게 달려갔다. 맥박을 짚는 사람하며, 119에 전화를 거는 사람하며, 경찰에 전화를 거는 사람까지. 거리는 금세 시장통처럼 변해있었다.
나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여자때문이었다. 남자의 죽음보다도, 여자의 태연한 태도가 더욱 충격이었다.
여자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검은색 숄더백을 주워서 먼지를 털었다. 그리곤 주변에 떨어져 있는 지갑과 핸드폰 따위를 챙겨서 가방에 넣은 다음 거울을 꺼냈다. 관자놀이의 핏자국을 닦아내고 태연히 화장을 고쳤다. 립글로즈를 바른 입술을 붕어처럼 뻐끔거려 삐져나온 곳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머리를 정돈했다. 여자화장실에서나 일어날법한 풍경이었다.
여자는 가방을 고쳐 매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여자를 주시하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어어?”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녀를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차마 막지를 못한 것이다.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었다. 대낮에 사람을 죽여 놓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화장을 고치다니.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도조차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녀가 화장을 고친 자리엔, 사무용 펜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무기였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당연히 전국에 널리 퍼져나갔다. 당시의 상황을 촬영해서 유포시킨 자들도 있었다. 초등학생,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영상을 클릭하려고 달려들었다. 정부에선 과열되는 분위기를 막기 위해 해당 게시물마다 삭제조치를 내렸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업로드를 해대는 덕분에 소용없는 일이었다. 바퀴벌레처럼 잡고 잡아도 또다시 기어 나와 온라인 세상을 뒤덮었다. 영상이 빠르게 퍼진 덕분에 여자는 금세 붙잡혔다. 신고자는 그녀의 이웃이었다. 그 이웃은 여자가 살고 있는 원룸의 집주인이기도 했다. 6년이나 자취를 했다는 그녀는 성실한 세입자이자 이웃이었다고 했다. 올해 초에 입사한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심지어, 남자를 죽인 다음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회사로 갔다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의 접점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어떤 사이였는지, 어째서 싸움을 벌였는지, 어쩌다가 살인까지 저질렀는지, 온국민이 궁금해했지만 언론도 경찰도 이렇다할 원인을 파악하진 못했다. 그저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살인이었다고 떠들어댈 뿐이었다. 여자는 8시 뉴스 화면 가득 평온한 얼굴을 내비치며, “제가 그랬나요?”하고 했다. 텅 빈 눈에선 죄책감도 후회도 엿볼 수 없었다.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채수와 나는 한동안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풀어 주어야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충남의 어느 곳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다음은 강원도, 서울, 경기도, 제주도……. 전국적으로 살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용의자는 모두 이십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로, 싸움 끝에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피해자 역시 이십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라는 점이었다.
또래라고 불려도 좋을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었다. 살인자와 피해자의 공통점이라곤 그것뿐이었다. 부산에서 출장을 올라왔던 28세의 회사원이, 서울의 모 유치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25세의 여성을 목 졸라 살해했다. 그런 식이었다. 그들은 살면서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부지불식간의 사이였다.
누군가 의견을 냈다.
“온라인상에서라면 혹시 모르지. 채팅이나 게임 사이트 같은 것 말이야. 그런데서 만났을 수도 있잖아.”
그러나 수많은 조사 끝에 별다른 공통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용의자를 검거할 땐 반드시 살인무기, 살해동기, 그리고 시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사건들엔 살인자와 피해자, 살인무기, 그리고 시체까지 명확히 남아 있지만 동기는 없었다. 문제는, 경찰서가 마비될 정도로 잡아들이고 있는 젊은 살인범들이 이유 없이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평범한 이십대 젊은이들이었다. 그들 중엔 소모적인 삶을 산 덕분에 이미 전적이 화려한 이들도 있었지만, 늦깎이 대학생, 일찍 가계를 책임진 가장, 결혼을 앞둔 신부 등등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들도 있었다.
거리의 예술가가 벽에 글귀를 남겼다.
'가장 찬란하게 빛나야할 이십대, 살인귀로 돌변하다'
만 19세 이하가 술집에 드나드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이 이상한 살인열풍은 스물아홉과 서른의 사이에서 극명하게 갈렸다. 마치 29세 이하의 이십대는 살인계획의 부품으로 소모되는 것처럼.
며칠 전에 서른번째 생일을 맞이했다는 누군가는, 싸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생일날 자정이 되는 순간 충동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 말을 믿든 안 믿든, 그건 자유였지만 이 유형의 살인으로 검거된 살인자의 나이는 모두 서른 살을 넘지 않았다.
22세의 대학생이 캠퍼스 내에서 같은 과 여후배를 찔러 죽인 사건이 발생했고, 범인은 자신도 이 이상할 살인열풍에 휩쓸렸을 뿐이며 자의로 행한 일이 아니라고 무죄를 주장했다. 살인열풍에 휩쓸린 사람들은 싸움으로 시작해 살인으로 끝을 냈다. 22세의 범인의 행동도 이와 비슷하기는 했지만 여후배를 폭행하면서 심한 욕설을 내뱉은 점을 감안한다면, 모방범죄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 살인열풍에 희생된 사람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으니까. 죽어가는 사람조차도.
젊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사라기지 시작했다. 죽어가거나 체포되거나 했다. 막 스무 살을 넘어선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공포에 질려 바깥 출입을 삼갔다. 다음번 생일을 맞으면 살인귀로 돌변해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하고 싸우다가,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할 테니까.
무사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집안에만 머물렀고, 밖에 나갈 일이 있다면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써서 자신의 나이를 가린 채 숨어 다녔다.
몇몇 무모한 사람들이 당당하게 거리로 나갔다가 순식간에 싸움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나하고 채수 역시 스물아홉으로, 이 기괴한 사건의 끝자락에 걸쳐 있었으므로 각자의 자취방에 숨어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채수와 내 자취방은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웠다. 채수가 지난달에 서른번째 생일을 맞이하면서, 녀석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는 한결 홀가분해진 얼굴로 식재료를 잔뜩 사가지고 내 집으로 들어왔다.
29세 두 명이 한 공간에 있으면 위험하지만 30세와 29세가 한 공간에 있으면 위험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채수의 주장은 확인되었다. 우리는 사소한 다툼도 없이 숨죽이며 기묘한 동거를 시작했다. 이 동거는 내가 며칠 뒤 30번째 생일을 맞이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 상황이 믿기지도 않았고, 우습기만 했다.
밖에 나갈 일은 채수가 도맡았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베란다 문을 열고 쭈그려 앉아, 얼굴이 안보이도록 조심하며 바깥을 구경하는 것 밖에 없었다. 달력엔 생일까지 남은 날이 빨갛게 표시되어 있었다. 하루하루가 피가 말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세상이 멈춰버린다거나, 종말을 맞이한 건 아니었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흘러가고 있었다. 다만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연령대가 바뀌었을 뿐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내가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내가 살해당할 수 있다는 공포에서 자유로웠다. 특히 노인들은 기묘한 해방감마저 느꼈다.
젊은 교통경찰 대신 중년의 경찰이 교통을 단속했고, 텅 비어버린 군대 때문에 군사력에 위기감을 느낀 정부에선 비상대책을 세웠다. 대학마다 이십대가 떠나버린 빈 공간에 학생을 끌어들이기 위해 장학금제도를 도입해, 백발의 나이 지긋한 학생들이 캠퍼스를 누볐다. 결혼 대행사는 호황을 맞이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십대 초반, 이제 막 성인이 된 커플들이 결혼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대행사의 대표는 인터뷰에서,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갈 때의 세기말적 분위기와 비슷한 것 같다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 다음 순간 화면에 잡힌 거리의 모습은 투견장을 방불케했다. 모두 엉켜들어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뭐 보고 있어?”
채수가 물었다. 나는 우울한 목소리로 “그냥...”하고 대답했다. 내가 보고 있는 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였다. 여기서는 초등학교 건물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등굣길은 볼 수 있었고, 은둔생활을 하기 이전에도 아침이면 등교하는 초등학생들을 구경하고는 했었다.
젊은 교사들이 서있던 자리에는,
이제 야광봉을 든 칠십대 노인이 서서 교통지도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옆의 정류장에서 아침마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던 젊은 엄마가 있었다. 나이는 나와 같거나 한두살 아래일 터였다. 그녀가 모습을 보이지 않은지도 오래였다. 아이는 어느날부턴가 할머니 손을 잡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예쁘장했던 아이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채수는 복잡한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엔 초등학생 아이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걸어가고 있었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어둡고 우울했다. 책가방을 꽉 쥔 손은 언뜻 흰 나뭇가지 같았다. 그들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연신 사방을 살피면서 학교로 향했다. 그 표정만 본다면, 저곳은 등굣길이 아닌 교수대로 가는 길이다. 학교는 거대한 단두대를 준비해놓고 출석부를 부르며, 호명하는 아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사형에 처한다.
끔찍한 망상이었다.
나는 혀를 차며 담배를 끄고 창문을 닫았다. 채수가 지난달부로 삼십대의 출발선을 끊은 것처럼, 나 역시 며칠만 무사히 버틴다면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할 것이다. 이 기묘한 현상이 가져다주는 공포의, 면죄부를 부여받는 거나 다름없다.
우리는 오늘도 베란다 창문에 턱을 괴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구경한다.
크고 작은 머리들 사이로 누군가 울음을 터뜨렸다.
왜죠?
왜 우리죠?
하고 울부짖는 것만 같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제 안전했다. 죄책감과 함께, 죄책감보다 큰 해방감이 스물스물 밀려온다.
며칠만 넘기면 나 역시 채수처럼 거리를 활보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저 아이들이 자라나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아동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어느 후보의 쓸쓸한 슬로건이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