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으로까지 무장하려는 민주주의 파괴 세력에 맞서 민주주의 독립선언을 해도 모자랄 3.1절에 처음 접한 뉴스가 백기투항이라니.
알릴만큼 알렸다고 생각했을까? 그럼 필리버스터를 향한 지지 이유를 단지 '테러방지법의 해악을 알게 되어서'였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버틸 때까지 버텨서 얻을 것은 없고 역풍만 불 것이라 생각했을까? 그럼 필리버스터를 향한 지지가 '끝장 보면 테러방지법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에 기인했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버티기 때문에 순풍이 일고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못하겠더란 말인가?
나는 몰랐던 것이 있었다. 야당 의원들이 이렇게 치열하고, 똑똑하고, 감성적인 줄 몰랐다. 필리버스터는 그런 면에서 나의 무지를 일깨우는 저항이었다. 나는 기대했던 것이 있었다. 이번 총선 결과가 어떻든, 비록 참패를 하더라도, 정권 교체의 기대를 걸어도 되겠구나. 필리버스터는 그런 면에서 나의 기대를 증폭시키는 저항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마음이 들떴고, 그래서 혹시 하며 마음 졸였다.
하지만 이제 허사인가? 번복이 없다면 허사다. 연단에 섰던 이들의 멋진 발언들이야 기록으로 남겠지만, 그 발언의 울림은 기억에만 머물다 흐려질 것이다. 연단을 지켰던 놀라운 시간들이야 역시 기록으로 남겠지만, 그 시간의 놀라움은 쇼타임이었다는 조롱에 직면할 것이다.
여론조사가 부담이었을까? 여론조사 수치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이미 드러난 지지의 현상들이 허상인 것은 아니다. 드러난 현상은 지지층이 견고해지는 징후였고, 지지층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징후였다. 이것이 당장 지지층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이 소중한 징후들을 내찬 꼴이 아니겠는가.
새누리 지지층의 결집을 두려워 했을까? 어차피 선거는 지지층 결집의 싸움이다. 적군의 결집은 두렵고 아군의 이탈은 두렵지 않다는 것인가.
그럼 묻겠지. 3월 10일까지 버텼지만 테러방지법이 통과되고, 총선 일정까지 차질이 생기는 상황을 어찌 감당할 거냐고. 감당은 왜 한쪽만 해야 하지? 누가 시작한 싸움인가 말이다. 그래서 얻는 게 무엇이냐고도 묻겠지. 지지층의 신뢰, 감동, 혹은 미안함 어쩌면 지지층의 확대. 확실한 건, 번복이 없을 경우,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을 대부분 얻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고, 그동안 얻었던 것도 사라져 버리게 된다는 것. 남는 것이라곤 마지 못한 지지 또는 체념 또는 무관심.
도대체가 새누리와 수구 언론이 짜놓은 협박 시나리오의 1막도 통과하지 못하는 DNA는 어디서 온 것인가. 이건 배고픈 아이에게 꿀이 듬뿍 담긴 호떡을 줬다가 먹으려는 순간 빼앗은 겪이다. 그래놓고 '이념론'이라는 호떡 대신 '경제론'이라는 건빵을 주겠다고 한다. 테러방지법 이슈를 '이념론'으로 치부하는 것도 상상력 부재요 전략 부재의 자인으로 들리지만, 이미 달콤한 호떡을 빼앗긴 분노는 어찌할 것인가. '경제론'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호떡이 없었다면 모를까, 호떡 빼앗긴 분노를 달래고 새롭게 식욕을 돋궈야 하는 마당에 몇번 먹어본 건빵이 쉽게 먹히겠는가.
2014년 여름, 세월호 졸속 합의가 떠오른다. 그때도 참 어이없고 허탈했지만 진통 끝에 뒤집었다. 필리버스터로 저력을 보여준 더민주가 2014년 그때처럼 결정을 뒤집어주기 바란다. 아직 더민주의 최종 결정이 나온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믿고 싶다. 뒤집는 과정의 잡음이 두려울 수 있겠지만 그 두려움보다 이대로 끝나는 상황을 더 두려워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