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은 이미 최악이었다.
모든 외곽타워는 허물어진채 그 잔해만 을씨년스럽게 남아있을 뿐이었고, 우리 정글은 한번 들어가면 헤어나올수없는 늪과도 같았다.
62년전 6.25일 새벽 소리없이 밀고들어온 북한군에 의해 모든 영토를 내어준채 후퇴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던 국군의 심정이 이랬을까? 모든 팀원들은 말없이 억제기타워 앞까지 들어온 미니언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찌하여 아직 서렌을 치지 않는 겁니까? 우리 킬수의 세제곱을 해도 적보다 모자라는데."
이리저리 굴러가며 스타일리시하게 미니언을 정리하던 베인이 말했다. 그의 kda는 이미 눈뜨고는 볼수없을정도의 참극. 중앙집권이 거의 독재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 그의 물음에도 나머지 팀원들은 묵묵히 라인정리만을 할뿐. 이렇다 말 한마디 없었다.
이들도 나름대로 소환서의 협곡에서 잔뼈가 굵은 만렙들. 지금 그들이 이렇게 평화롭게 미니언을 정리할수 있는건 적팀이 내셔남작을 공략하고 있기때문이라걸 알고 있겠지만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베인만이 이리저리 구르며 한숨을 내쉴뿐.
그러기도 잠시, 한동안 미니맵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적군들이 한꺼번에 미드라인으로 나타났다.
"역시 바론이었군.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베인이 잠시 구르기를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무 반응없는 주위. 베인은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석궁을 고쳐메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을 감고 명상을 하던 마이가 조용히 일어섰다.
"베인이여, 그대는 우리가 이 한타를 이길것이라 생각하는가?"
베인은 Tap키를 눌러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마이는 그런 그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던 건지 막힘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왜라니? 나의 망할 친구 마이여, 자네의 그 수많은 겹눈은 무엇에 쓰이는 것인가? 눈이 있다면 보일텐데."
마이는 베인의 공격적인 말투에도 아무런 변화없이 묵묵히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걸."
"그게 무슨....."
베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찰랑 하는 돈소리와 함께 마스터이를 평범한 정글러로 위장하게끔 도와주었던 랜턴은 골드가 되어 유령무희의 밑거름이 되었고 남아있는 아이템창을 와드로 채우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하이머딩거가 들릴듯 말듯, 마치 혼잣말인양 물었다.
"결국 떠나는 것인가?"
".... 그렇습니다."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충자리를 차지한 두 고인들답게 더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으리라.
"자, 그렇게 결론이 났으면 우리도 우리대로 움직여야 하지 않겠어?"
마스터이의 유령무희가 촉매제가 된것일까? 트린다미어가 당장이라도 같이 백도어를 갈것처럼 나섰다.
모두가 한타준비에 바쁜 이때, 마이는 다시한번 백도어 루트를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의 검에 이 지루한 싸움의 결과가 달려있다는것을 그도 아는터,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최소한 적의 억제기까지는 밀어야 할것이다.
'한두번 하는것도 아닌데... 어지간히 떨리는군.'
이윽고 적의 모습이 아군의 미드라인 억제기 포탑앞에 나타났을때. 그는 기척없이 혼자만의 싸움을 향해 출발했다.
마이가 떠난 빈자리는 빨강,노랑,파랑 등의 미니포탑이 채웠고 더블백도어를 가려다 팀원의 만류로 마지못해 눌러앉은 트린다미어는 불굴의 영약을 구매하며 앞으로의 한타를 준비했다.
적군이 막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을때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시스템 가동, 준비완료."
베인을 혼자 봇라인에 남겨둔채 큰걸 만들러 가겠다며 바람난 남편처럼 떠나버린 블츠가 제철맞은 가을전어 냄새라도 맡았는지 돌아온것이다.
"짜잔, 내가 돌아왔다."
노란 뚱땡이주제 손가락 세개인 그분의 흉내를 내며 멋쩍게 웃는 블츠를 보던 베인은 감격에 말을 잇지못하며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저리가. 똥냄새나."
3:5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4:5가 되어, 조금은 덜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지만 적과의 차이는 이미 태평양과 비오는날 개밥그릇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베인보다 적 서포터 알리의 킬수가 더 높으니 더 말해 무엇하리.
"괜찮아, 우리에겐 든든한 포탑이 있다. 블리츠가 돌아왔으니 적군을 하나 물어와 타워와 함께 순삭한다면 억제기는 지킬수 있을거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모두들 의심쩍은 눈빛으로 표정변화 하나 없는 블리츠를 응시했다.그런 팀원들을 안심시키려는 것인지 블리츠가 앞으로 한걸음 나오며 말했다.
"나만믿어. 이 게임에서 쌀 똥은 이미 화장실에서 모두 처리하고 왔으니."
신빙성이라고는 대통령 선거공약만큼이나 없는 말이없지만 어찌할쏘냐. 알고도 속아주는 것이지.
미니언을 앞세운채 빨리뽑기 쿨마다 들어와서는 타워에 짤짤이를 넣는 그브를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못하는 이유는 그의 뒤에 알리스타와 말파이트가 교통사고를 내기위해 연신 눈치를 보고 있는 까닭일까, 아군 블리츠의 로켓손은 고속도로 하이패스라도 되는지 허공을 가르기 때문일까.
"허허, 이게 참 대물을 보아선지 손이 좀 떨리는군."
라며 마치 혼잣말인양 변명하는 블리츠. 그러나 그의 팀원들은 이제 막 포탑철거에 나선 마이를 보고있는 까닭인지 아무 반응 없었다.
마이의 포탑철거를 보고 있는사람은 이쪽만이 아닐것이고 그런 그의 생각이 맞다는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듯 적들은 더욱 세차게 푸시를 해왔다.
그브의 짤짤이에 이윽고 억제기 포탑의 체력이 3분의 1정도 남았을때, 실수라도 한것일까? 블리츠의 로켓손이 미니언을 피해 기계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던 그브의 멱살을 잡아 끌고왔고
그렇게 한타는 시작됬다.
2차타워를 순식간에 밀어버리고 억제기 타워까지 도달한 마이의 화면에 이질적인 소음과함께 몇가지 문자가 새겨졌다.
'아군이 쓰려졌습니다.'
'적군을 처치했습니다.'
'더블킬!'
매경기마다 들려오던 익숙한 소리다. 마스터이는 애써 모니터속 글자의 색을 확인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억제기포탑. 그 하나만을 노려보았다. 어느순간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않았다. 아니다. 억제기 포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아군의 포탑이 날라가는 소리인가 지금까지 자신이 치고있던 포탑이 깨지는 소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