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창가 탈출 뒤 결혼한 20대, 포주 협박·폭로로 끝내 파경
[중앙일보 2004-09-21 06:32]
[중앙일보 서형식] "암울했던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남편과 함께 자동차 정비소를 차려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소매치기당한 지갑을 찾으러 경찰서로 가는 바람에 다방과 윤락가를 전전했던 과거가 드러나 한순간에 단란했던 가정을 잃은 박모(24.여.전남 여수시)씨.
박씨는 극진히도 자신을 아껴주던 남편과 두 아들과의 행복했던 시간이 오히려 괴로운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엿한 주부로 가정을 꾸려나가던 박씨에게 이런 악몽 같은 순간이 다시 찾아온 것은 '선불금'이라는 족쇄 때문이다.
18세 때인 1998년 3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수의 한 다방에서 선불금 220만원을 받고 일을 하면서 그의 '과거'는 시작된다. 차 배달 중 교통사고를 당해 한달여 동안 일을 하지 못하자 선불금은 520만원으로 불어났다.
업주는 그해 11월 박씨를 전남 보성군의 한 다방으로 팔아넘겼다. 아무리 돈을 갚아도 선불금은 줄어들 줄 몰랐다. 업주들이 화장품비.밥값.결근비 등의 명목으로 선불금에 갖다 얹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2년여 동안 다방 10여곳을 전전하다 결국 2000년 1월 여수의 한 직업소개소에 의해 전북 익산의 윤락가로 990만원에 팔렸다. 지옥 같은 생활을 견디지 못한 박씨는 한달여 만에 이곳을 탈출해 전북 정읍의 사찰에 숨어 살다 같은 해 경북 구미시의 한 화학공장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그는 성실한 동갑내기 남편(정비공)을 만나 2001년 12월 결혼했다. 물론 그는 과거를 숨겼다. 10평 남짓한 18만원짜리 월세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두 아들(세살.두살)을 낳고 오순도순 가정을 꾸려왔다.
박씨는 100만원을 받는 남편의 월급으론 생활이 빠듯해 세차장에서 둘째아들 분만 다섯시간 전까지 일할 정도로 악착스럽게 살아왔다.
박씨 가정이 산산조각난 것은 지난달 2일 경북 구미에 있는 시댁에 가다가 대구 터미널에서 지갑을 소매치기당하면서다. 지갑을 찾았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경찰서로 찾아가자 경찰은 기소중지자라며 그를 체포했다. 사창가 업주가 선불금 990만원을 갚지 않아 사기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박씨의 거주지를 알아낸 업주는 남편을 찾아가 박씨의 과거를 폭로하고 선불금을 갚으라고 협박했다. 결국 남편은 가출했다. 박씨는 충격으로 여수시 J병원에 입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큰아들은 대구 시댁에, 작은아들은 80세가 넘은 박씨의 친할머니에게 맡겨졌다.
박씨는 "선불금의 족쇄가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며 "나의 과거 때문에 고통받는 남편과 아들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박씨는 앞으로 성폭력 상담소와 함께 성매매 금지 전도사로 나설 계획이다.
여수=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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