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문경 옛길」감상 / 박성준
문경 옛길
안도현(1961~ )
가파른 벼랑 위에 길이, 겨우 있다
나는 이 옛길을 걸으며 짚어보았던 것이다
당신의 없는 발소리 위에 내 발소리를 들여놓아보며 얼마나 오래 발소리가 쌓여야 발자국이 되고 얼마나 많은 발자국이 쌓여야 조붓한 길이 되는지
그해 겨울 당신이 북쪽으로 떠나고
해마다 눈발이 벼랑 끝에 서서 울었던 것은,
이 길이, 벼랑의 감지 못한 눈꺼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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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꼭 지금보다 아름다운 자리에서 열리는 것은 아니다. ‘미래’라는 말 속에 ‘진보’나 ‘진화’와 같은 의미가 숨어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을까. 그런 착각이 가능하려면 좀 더 나은 현실이 자꾸만 우리를 견인해가야 하는데, 지금 여기 2013년의 파국과 안부는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
아무래도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가파른 벼랑 위에 겨우 나 있는 길처럼, 아슬아슬한 길일 것이다. 어딘가로 닿으려는 발자국이 쌓이고 쌓여 만든 길, 그러나 겨우 벼랑 곁에 길 하나밖에 낼 수 없는 느리고 힘겨운 길. 우리는 그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길을 역사를 통해 만들었고 다가올 역사들에 다시 또 물려줘야 한다. 불길한 이곳의 광경을 끝끝내 지켜보고 말겠다는 벼랑의 눈꺼풀처럼, 그렇게 지독한 절벽 끝에 길을 내고 홀로 가는 시인의 정념처럼, 싸워야 할 것은 싸우고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아야 한다. 역사 속에서 늘 우리에게는 행사당한 억압이 있었고, 행동하는 예술가도 있었다. 지금 우리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제 자신의 언어를 포기함으로써 더 지독하게 시인이 된, 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저 들판은 초록인데, 나는 붉은 눈으로 운다.” (시집『북항』에서'시인의 말' 중 )
박성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