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전의 저는 당시 모종의 질병 때문에 자다가도 현기증이 일어나서 끔뻑거리며 일어나는 수준이었는데 나라에서 가라고 해서 갔어요.
한 달 동안 병신 취급 받아가며 구르고, 첫 배치받았던 날 들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XX씨는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아, 저는 그냥 눈이 좀 안좋아서 왔습니다."
"그래요? 그럼 저것 좀 들어서 따라와줄 수 있죠?"
그러고 첫날부터 존나게 굴렀어요. 저는 복지 시설(시각 장애 중증 시설)이었는데 점심 시간에 식사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12시 50분까지 밥을 먹고, 1시 30분까지인 쉬는 시간은 일주일도 안되어 1시까지가 되었죠. 한 달이 안되어 저는 반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어렸으니까. 공익이었으니까. 그게 당연했죠.
복지 시설 특유의 행사 때문에 주말에도 나오고.
재활 프로그램이라는 명목 아래 수영장 따라가서 수영 보조 강사 노릇. 목욕탕 가서 목욕 수발. 요가원 가서 요가 보조. 직업재활장 소속이라 평일 오전에는 20~40kg 짜리 황동 포대 100개씩 나르고. 매 주 금요일에는 1톤 탑차 세 개에 그것들을 싣고 나르고. 사회 적응 프로그램이라고 아침 저녁 그 눈 안보이는 애들 데리고 가서 시장을 돌아다니고, 머리에 토사물이 쏟아지고 똥 오줌 치우고 말 못하는 중증장애인에게 맞아 안경이 날아가고. 휴가는 프로그램 없는 날만 골라서 한 달에 한 번. 그나마도 눈치가 보이고.
필요할 땐 가족. 아닐 때는 너넨 군인 신분.
그래도 했어요, 나라에서 시켰으니까. 안 시키면 감옥 가니까. 나는 그래도 군인들보다는 나으니까.
나만 가는게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마지막까지 굴렀어요. 마지막 날, 소집해제 하고 가는 제 뒤로 후임 두 명이 바닥에 앉아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는 중증 장애우 한 명에게 달라붙어 낑낑대고 있었어요.
원장 수녀님은 제게 말했어요. 프로그램 맡았던 것은 마저 하고 가야하지 않냐고, 별로 안힘든건데 하고 가지 그러냐고.
담당 선생이 말했어요. 그래도 공익이라 힘들지는 않았을테니 다행이라고. 넌 여기서 사람 되어 나간다고.
저는 나오면서 진짜 울었어요. 시각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내가 안구진탕 눌 포인트 때문에 고개 옆으로 삐딱하게 한다고 싸가지 없다고 했던 말은 다 까먹었었나 봐요. 넌 대체 눈이 얼마나 안좋길래 저 글씨도 당겨 봐야 하냐고. 너도 여기 입소해야하는거 아니냐고.
나는 그냥 그들에게 있어 쉬운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너무 서러웠어요. 내 시간은 도구로서의 2년이었어요.
사람 취급을 바랬던 것이 아니에요. 나는 다만 고생했다, 다음에 웃으면서 보자.라는 그 말을 듣고 싶었어요.
군대 게시판의 글들을 보며 요즘 너무 슬퍼요. 나는 단지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있어 그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머리를 스쳐지나가요.
그냥, 그래요. 나는 한 마디가 듣고 싶었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