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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2차 세계대전 독일전차 열전 (1) 1호 전차
게시물ID : humorbest_6764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22
조회수 : 3598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5/14 00:52:31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5/13 14:32:55




1장. 1호전차, 독일 기갑사단의 서막

 

 

 



1호전차의 탄생

 

1931년, 독일국방군의 Oswald Lutz 장군의 참모였던 하인츠 구데리안은 지상전의 주도권이 보병에서 전차로 바뀔 것이라 예측해, 강력한 전차의 개발과 함께 전차로 구성된 기갑대의 창설을 주장했습니다.




이 땅딸막하고 못생긴 아자씨가 독일 기갑사단의 아버지 하인츠 빌헬름 구데리안입니다 -ㅅ-

 
 이러한 구데리안의 주장을 루츠(?)장군과 국방군이 받아들이면서 1932년, 미래의 전차전을 대비한 훈련용 전차의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스웨덴의 Landsverk사의 전차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이 훈련용 전차의 설계도는 라인메탈, 크루프, 헨셸, MAN, 다임러 벤츠 사에서 각각 발행되었고, 전차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지만, 이러한 전차 개발계획에는 커다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연합군은 독일에게 전차를 포함한 각종 신무기의 개발을 금지하는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독일의 군사작 행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독일의 전차 개발계획은 '상업용 트랙터'라는 위장을 통해 감추어지면서 비밀리에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33년, 국방군 사령부는 이 '상업용 트랙터'- 4~7톤의 중량을 갖춘 장갑차량 - 의 개발을 명령했고, 이는 철저히 트랙터 개발로 위장되면서 베르사유 조약의 위협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몇몇 프로토타입은 주로 러시아의 동토에서 비밀리에 그 성능 시험을 진행했습니다.
 

빈약했던 성능
 
이렇게 해서 완성된 결과물인 1호전차는 사실 그 당시 기준으로도 전차라고 하기엔 다소 민망한 수준으로, 오히려 개발 중에 참고한 영국의 카덴 로이드 Mk-4 탱케트(tankette)와 더 유사한, 경전차와 콩전차의 중간 수준에 달하는 전차였습니다. 

무장으로는 MG-13 2정이 부착되었고(이후 후기형에는 MG-34가 부착되었습니다), 승무원으로는 조종사와 포수를 겸한 전차장. 총 2명이 배속되는데. 여기에 겨우 13mm 정도의 얇실한 장갑을 더하면 제대로 된 전차전을 수행하기엔 좀 모자란 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상대국들의 전차 수준도 몇몇 강대국을 제외하면 딱히 이렇다 할 고급 전차를 보유하지 않았기에, 베르사유 조약의 제한 아래서라는 조건을 추가하면 이 정도 수준의 전차 정도는 그다치 나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호전차의 첫 데뷔는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였습니다. 비록 무장은 빈약했지만,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장군이 이끌던 국민전선 측에서 콘돌 군단에 배속해서 활약한 1호전차는 소련이 인민전선에 제공했던 BT-5나 T-26보다 성능 면에서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1호전차의 부족한 화력 때문에 인민전선 측에서 노획한 1호전차에 프랑스제 호치키스 25mm 전차포를 장착해 사용하기도 했고, 독일 측에서도 시험적으로 이탈리아의 20mm 브레다 기관포를 부착해 보기도 했습니다.




1호전차 A형






1호전차 B형



브레다 기관포를 부착한 1호전차 B형
 
하지만 결국에는 1호전차의 성능은 보병 공격이나 정찰 정도에나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2차대전이 발발하자 폴란드, 프랑스, 노르웨이 등지에서 잠시 사용되다가 그 이후로는 A, B형은 전차 자체로서는 용도 폐기되어 점차 그 자취를 감추거나 포탑을 제거하고 훈련용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명맥은 아주 끊기지는 않아서 무전기를 장착하고 지휘전차로 이용하거나 차체에 47mm 대전차포를 얹은 대전차 자주포, 150mm 중박격포를 얹은 비존 자주포 등으로 43년 경까지 근근히 명맥을 이어나갔습니다.
 
이후 공수전차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시속 64km의 쾌속을 자랑하는 C형이나 장갑 면에서 전면장갑 80mm로 많이 향상된 F형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미 공수부대가 그 공수강습 능력을 상실하거나, 너무 등장시기가 늦었다는 이유로 정찰, 후방 감시 임무나 맡게 되었고, 결국은 늦게 나온 형제들이 위명을 떨치는 동안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게 되었습니다.



3호 전차의 포탑을 장착한 훈련용 1호전차



포탑을 제거한 훈련용 1호 전차








1호전차 C형, 최대시속 64km의 놀라운 속도와 20mm 기관포 1정 부착으로 전체적인 전투력의 증강을 꾀했지만, 원래의 생산 목적인 팔슈름야거 지원은 이미 무의미해진 시기에 개발되었습니다.






1호전차 F형, 장갑의 증가가 특징이며 ' 리틀 티거'라는 귀여운 애칭도 붙여졌지만, 실상은 말 그대로 종이 호랑이 신세였습니다.

 

비록 그 빈약한 전투력으로 인해 형제인 2호전차와 함께 빠르게 도태되어가기는 했지만, 1/2호 전차는 전차 생산경험이 전무했던 독일 중공업 회사들에게 전차의 설계와 생산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향후 계속되는 3호, 4호, 5호 판터, 그리고 대망의 6호 티이거 형제까지의 개발의 밑바탕이 되었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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