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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책속의 명언50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게시물ID : lovestory_6765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좋아헤
추천 : 1
조회수 : 131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7/20 18:18:44

출판일 10.05.18
읽은날 14.07.19

속표지.
거기서 누가 우느냐
아니라, 그냥 바람소리냐
눈부신 금강석으로 빛나는 외로운 이때를
거기서 누가 우느냐
내가 울려는 이때를
바로 거기서 누가 우느냐
- 폴 발레리, '젊은 파르크'

11p.
시간은 언제나 밀려오지만 똑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젊은 날에 인식하고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누군가는 작별하지 않고 누군가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또다른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20p.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섞여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억이나 나의 기억을 실제 있었던 일로 기필코 믿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고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면 나는 그 사람의 희망이 뒤섞여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그렇게 불완전한 게 기억이라 할지라도 어떤 기억 앞에서는 가만히 얼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 무엇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의식들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기억일수록.

38p.
아버지는 아픈 엄마의 손톱에 열므밤이면 봉숭아꽃을 짓이겨 얹고 비닐로 감싸 실로 동여매주었다. 엄마가 원해서였다. 아버지는 엄마가 수술을 할 때 마취가 잘 되지 않았던 게 그 봉숭아꽃물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밥상을 치우고 내 손톱 위에 봉숭아꽃 짓이긴 걸 얹어놓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톱에 꽃물을 들이면 진짜 마취가 잘 안 되는 거에요, 아버지? 힘없이 물었다. 나도 사실은 잘 모른다, 아버지도 기운 없이 대답했다.

41p.
거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단이는 거칠 것 없이 얘기를 이어나갔다. 고생대 캄브리아기의 삼엽충이 진화하여 거미가 되었다는 것. 옛날에는 거미가 땅속에서만 살았는데 중생대 신생대를 거치면서 땅 위로 진출하였다고도 했다. 그 종수도 셀 수 없이 많아져 이제는 파악하기조차 힘들다고도. 두려움과 사랑은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일까? 단이가 거미를 두려워하는 게 맞는가 싶었다. 사랑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대상인 것처럼 단이는 거미에 대해서 무한하게 해박했다.

50p.
우연히 롤랑 바르트의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새싹을 하나씩 나누어주는 것이다, 라는 문장이 씌어 있었다. 창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51p.
어느 날, 사진반 선생이 인물사진 찍는 법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몸이 뒤틀려 잠시도 견딜 수가 없었다. 선생 몰래 교실을 빠져나오려는데 선생이 이명서! 하고 불러세웠다. 어디 가냐고 물었다.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선생이 어디가 아픈데? 다시 물었다. 몸이 아팠던 것도 병원에 가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서클에서 빠져나가고 싶었을 뿐이다. 어디가 아프냐고! 선생이 다시 물었다. 대답이 궁했다. 우물쭈물하다가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내 치기 어린 답변에 나조차도 어이가 없었다. 이건 완전 웃음거리가 되겠군, 생각했다. 운동장 열 바퀴나 스무 바퀴 감이군. 사진반을 담당하던 선생은 과학선생이었다. 수업시간에 거슬리는 학생이 있으면 포복을 시키는 건 보통이고 엉덩이를 내리치거나 뙤약볕 내리쬐는 시간을 골라 운동장을 지칠 때까지 돌게 했다. 체념하고 불호령을 각오하고 있는데 선생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마음이 아프다구? 선생이 안경 너머로 물끄러미 나를 건너다보았다. 어서 다녀오너라. 다음 시간에 늦지 말구.

62p.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험난한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며 강 저편으로 건너가는 와중에 있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종교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야.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너갈 수는 없어. 우리는 무엇엔가에 의지해서 이 강물을 건너야 해. 그 무엇이 바로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이기도 할 테지. 지금 여러분은 당장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배나 뗏목이 되어줄 것으로 생각할 거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 실어나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여러분이 그것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이 역설을 잘 음미하는 학생만이 무사히 저쪽 언덕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 여러분에게 문학이나 예술은 여러분을 태워 강 저편으로 건네주는 것만이 아니네. 여러분이 신명을 바쳐 짊어지고 나가야 할 필생의 일이기도 한 것이네.

64p. 작가 신경숙의 아름다운 문장
나는 멈춰 서서 초가을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방금 내가 지나온 푸른 아름드리 느티나무 밑을 걸어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71p.
그가 일어서며 윤미루의 손을 슬몃 쥐었다. 윤미루의 쪼글쪼글한 손이 그의 크고 강인한 손에 잡혔다. 그의 손안이 세상에서 가장 알맞은 장소인 듯 윤미루의 화상 입은 손은 그의 손에 쥐여진 채 보이지 않게 되었다.

83p.
언젠가 앞서 걷는 정윤의 모습을 보며 학교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채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묘한 여운을 느끼게 한다.

101p.
나는 그들 속에 섞여 다른 사람의 것들은 밀쳐내며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보려 했다.
-운동화지?
-응.
-하얀색이지.
-그래.
-가방은 긴 끈 달린 갈색.
-어떻게 알아?
-네 거니까 알지.
네.거.니.까.알.지. 그가 방금 했던 말이 소나기처럼 귓가에 남았다. 

130p.
상이 차려지자 윤미루는 내 책상에서 백지와 연필을 들고 와 날짜를 적고 식탁 위의 반찬들을 하나하나 적었다. 아욱국, 밥, 깻잎찜……
-뭐해?
-내 노트에 옮겨적어놓으려고.
-응?
-미루는 자신이 먹는 것은 모두 기록해놓곤 해.
그가 윤미루 대신 말했다. 먹는 것을 모두 기록해놓는다구? 내가 빤히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 없이 윤미루는 식탁 위의 음식들을 종이에 빼놓지 않고 하나하나 적었다.
-왜 그렇게 적어?
-그래야 실감이 나.
-뭐가?
-오늘을 살았다는 거.

133p.
-밥을 맛잇게 먹네.
-나?
-응.
윤미루는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엄마가 널 봤으면 좋아하셨을 거야. 엄마는 사람은 밥을 맛있게 먹을 줄 알아야 된다고 했어. 그래야 어디 가든 제 몫이 있는 거라고. 밥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밥 귀한 줄도 안다구.

144p.
성곽을 걸으며 윤과 제노비스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귀기울여 듣던 윤은 제노비스의 비명소리를 서른여덟 명이 아니고 한 사람이 들었다면 그녀는 살았을지도 몰라, 라고 말했다. 네 생각이야? 라고 물으니 윤은 심리학! 이라고 대답했다. 사람의 심리 속에 그런 게 있대. 위험에 처한 대상을 혼자 보게 되었을 땐 바로 행동하게 되지만 다른 사람들과 동시에 공유하면 무의식이 행동을 지연시킨대. 상대방에게 미루는 건가? 내가 말하자 윤은 떠맡긴다기보다는 분산되는 거겠지. 누군가 희생당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적어지는 것으로 봐. ... 불이 꺼질 때마다 제노비스는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숨을 거둘 때까지 칼에 찔린 고통보다 그 공포가 더 컸을 거야.

160p.
그 노트의 다른 장에 우리 중 한 사람이 첫 문장을 쓰면 그 뒤를 다른 사람이 쓰고 또 다음 사람이 이어썼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시작했다가 곧 우리는 진지하게 문장 이어쓰기 놀이에 빠져들곤 했다. 윤미루가 나는 사람이 가진 것 중에서 손이 가장 좋다, 라고 첫 문장을 쓴 적이 있었다. 내가 뒤를 이어 한시도 휴식이 없는 가엾고 고마운 손, 이라고 썼다. 그가 내가 쓴 문장에 이어서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일생을 알 수 있다, 고 썼다.

165p.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노트와 나를 번갈아 응시하던 윤이 갑자기 내 입술에 키스를 했다.

171p.
어린 시절 부엌 뒤쪽에 물을 끓여 큰 통에 붓고 찬물을 섞은 후에 팔꿈치를 넣어 물의 온도를 재던 엄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떠오르는 엄마의 모습은 아주 젊었다. 팔꿈치로 물의 온도를 재고 있는 젊은 엄마를 따라 내 팔꿈치를 물속에 넣어보는 어린 나도 떠오를 듯했다. 엄마는 복숭아꽃이 필 때는 그 꽃을 따다가 목욕통 안의 물에 띄어놓았다. 우리 윤이 얼굴이 뽀얘져라, 하면서. 큰 대문을 열고 나가면 골목이 끝날 때까지 양편으로 피어 있던 붓꽃을 잘라와 큰 솥에 넣어 삶은 물로 목욕물을 만들어 나를 씻기기도 했다. 부드럽고 은은한 향이 코끝에 맡아져 엄마가 내 등이며 뺨을 문지를 때에 나는 물속에서 그만 꾸벅꾸벅 졸았던 기억.

183p.
윤에게 그 시집을 사다주려고 어제 그 서점엘 찾아갔다. 서점 주인은 팔지 않는 시집이라고 했다. 삼십 년 전에 첫사랑이 선물로 준 자신의 소장본이라고. 매우 아쉬워하며 나오는데 서점 주인이 학생! 하고 나를 부르더니 첫사랑에게 받았다는 시집을 내주었다. 시집 값을 치르려고 하니 주인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얼마를 주려고? 삼백오십원? 그럼 얼마를? 학생에게 주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나중에 학생만 지니고 있는 책을 원하는 사람이 있거든 학생도 그 사람에게 주도록! 다시 서점 안으로 발길을 돌리는 서점 주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윤교수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은 모두 다 자기 방식의 가치기준이 있다는.

197p.
누군가의 방에 가서 함께 밤을 보내는 일은 그 사람이 곁에 없을 때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게 되는 일이기도 한 모양이었다. 오늘 밤을 지내고 나면 나는 윤미루가 이 도시에서 어떤 밤을 보내고 있을지 떠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241p.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가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에밀리 디킨슨,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것

291p.
...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내가 여러분에게 종종 들려주었던 물을 건너는 인물 크리스토프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 깊고 어두운 강을 건너는 중입니다. 엄청난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강물이 목 위로 차올라 가라앉아버리고 싶을 때마다 생각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짊어진 무게만큼 그만한 무게의 세계를 우리가 발로 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산다는 것은 무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332p.
우리가 청량리에서 버스를 내려 다시 덕소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맨 뒤에 앉았을 때 눈발이 희끗희끗 비치기 시작했다. 그가 공허한 목소리로 어서 세월이 많이 흘러갔으면 좋겠다. 정윤, 하고 말했다.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 아주 힘센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

354p.
윤교수가 우리의 손바닥에 남긴 말을 모아보니 
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께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 말게.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가 되었다.

358p.
어떤 시간을 두고 오래전, 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이라고 쓸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375p. 작가의 말
언어는 상실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내가 글을 쓰는 과정의 한 부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나는 쓰고 누군가는 읽으며 치유되고 회복하기를 바라고 그리 되어도 지나간 시간이 되돌아오는 법은 없지요. 물 위에 떨어진 꽃잎이 물살을 타고 떠내려가듯 붙잡지 않고 보내줄 수 있는 마음이 치유인지도 모르겠어요.

378p. 작가의 말
이 소설에서 어쩌든 슬픔을 딛고 사랑 가까이 가보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이 읽히기를, 비관보다는 낙관 쪽에 한쪽 손가락이 가 닿게 되기를, 그리하여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언젠가'라는 말에 실려 있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꿈이 읽는 당신의 마음속에 새벽빛으로 번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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