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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놀이 두번째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35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간장팔아요
추천 : 28
조회수 : 547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09/03/13 14:26:26
일주일동안 나눠썼던 역할놀이 첫 번째와는 다르게

밤부터 지금까지 역할놀이 두 번째를 써내느라 좀 힘드네요.

첫 번째보다는 별로일지 모르지만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역할놀이를 먼저 보고 보세요.

역할놀이에 대해서 훨씬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고, 스토리상 꼭 보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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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사고를 조사하시는 박상원 형사님. 저는 얼마 전 누군가에게 납치가 된 적이 있습니다. 

신분을 노출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메시지를 남깁니다. 밑에는 제 연락처입니다. 사건에 대해서 보다 깊게 

알고 싶다면 꼭 연락을 주십시오. ***-****-****



박 형사는 자신의 자동차 앞 유리에 볼품없게 꽂혀 있는 메모지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생각하던 

박 형사는 최근 발생한 실종사고에 대해서 전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던 차에, 밑져야 본전이겠다 

싶어 당장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락처를 남기고 간 사람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후, 계속해서 

그 연락처로 걸었지만 전화통화를 할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박 형사는 그 전화번호의 

주인을 추적해냈다.


-최재희, 서울대생.


하지만 박 형사가 최재희의 신원소재를 파악하고 그를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그가 사라진 후였다. 

박 형사가 최재희의 측근들을 조사해서 얻은 정보라고는, 그가 잠시 여행을 갔다가 알게 된 우상민이라는 

사람과 자주 같이 다녔다는 사실뿐이었다. 박 형사는 그 후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최재희와 우상민을 

찾아다녔지만 그들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일어나!!”


박 형사는 시끄럽게 조잘대는 자명종소리에 못 이겨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웠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피곤이 쌓였는지, 아니면 사건이 안 풀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가슴과 머리가 너무나 

답답했다. 피곤함을 억지로 견뎌내면서 박 형사는 나갈 준비를 했다. 밖에 나가서 주차해 둔 차를 타려는 

순간 박 형사의 눈에 익숙한 무언가가 보였다. 

앞 유리에는 그 때처럼 쪽지가 놓여있었다.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져, 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난 원진은 주위를 둘러봤다. 확실히 주변은 

원진이 알던 자신의 방이 아니었다. 원진은 자신의 두 손가락을 들어 볼을 있는 힘껏 꼬집었다. 

살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아오!! 아프다!! 뭐야, 꿈이 아니잖아”


원진은 붉어진 자신의 볼을 손바닥으로 비벼대며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다 떨어져가는 벽지와 

자잘하게 균열이 가있는 천장을 보니, 친구들이랑 강촌에 놀러갔을 때 묵었던 낡은 숙박시설이 떠올랐다. 

원진은 자신이 누워있던 허름한 침대에서 껑충 뛰어내렸다. 그러자 오래된 나무 바닥에서 우지끈 소리가 

났다. 원진은 방안을 둘러보면서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문득 방 문 앞에 도달했을 때, 문에 붙어 있는 종이를 봤다.



역할놀이 규칙


-주머니 속의 쪽지를 보면 자신의 역할이 들어있습니다.

-제한시간은 4일, 역할놀이에 필요한 인원은 총 8명

-자신의 역할은 다른 사람들한테는 되도록이면 비밀입니다.

(비밀로 하는 게 본인의 목숨을 위해 좋을 겁니다.)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것. 제대로 안하면 가슴에 달린 폭탄이 펑!

-멋대로 폭탄을 뜯어내려 해도 펑!

-본인의 역할수행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습니다.

-4일 동안 역할을 멋지게 수행하시면 살려드립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아까 위에서 언급했듯이 가장 역할놀이를 못하신 분은 역할놀이를 다시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시작!




원진은 문 앞에 붙어있는 종이를 읽고, 자신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손끝에 뭔가 올록볼록 튀어나온 게 

느껴진 원진은 자신의 윗옷을 벗어냈다. 벗어낸 가슴팍에는 이상한 기계가 붙어있었다. 

무심코 떼어내려고 손을 가져가는데 문 앞에 붙어있는 문구가 보였다. 


-멋대로 폭탄을 뜯어내려 해도 펑!


‘이게 폭탄이가?’


원진은 긴가민가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에 기계 쪽으로 다가가던 손을 황급히 빼냈다. 그리고는 윗옷을 

다시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문구에 적힌 대로 주머니에는 종이쪼가리가 들어있었다. 원진은 

접혀있는 종이를 쫙 펴서 읽었다.



역할놀이

당신의 역할은 ???입니다.

???????? 주세요.

(가장 어려운 역할이군요. 절대 성공 못할 겁니다.)



역할이 적힌 쪽지를 본 원진은 이런 장난을 치고 있는 녀석을 꼭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진은 방에 있던 화장실에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문을 열고 나섰다. 문을 나서자 좁은 복도가 보였다. 

복도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 8개의 방이 늘어져있었다. 원진은 밖에 나가기위해 복도를 따라서 걸어갔다. 

복도 중앙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어? 새로 깨어난 사람인가?”


복도 중앙에 있는 탁자에 둘러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원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복도 중앙에는 원진이 

나이또래의 젊은 남자와 안경을 쓴 중년의 아저씨 그리고 교복을 입은 여고생 하나가 있었다.


“여기가 어디죠?”


너무나 답답했던 원진은 다짜고짜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우리도 잘 몰라, 다만 상황이 아주 위험하다는 것만 알아둬.”


“위험한 상황이요?”


“그래, 난 여기서 제일 처음 깨어난 사람이야. 아까부터 쭉 돌아다녔지만 도망칠 곳이라고는 없어. 저 두꺼운 철문이 열리지 않는 한 우리는 나갈 수 없어”


복도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가 복도 끝의 철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원진과 나이가 

비슷해 보였지만 그 젊은 남자는 서슴없이 원진에게 반말을 해댔다. 원진은 다시금 되물었다.


“혹시 몰래카메라 같은 이벤트 아닌가요?”


“저기 끝에 있는 방에 가서 문을 열어봐”


젊은 남자는 저 멀리 떨어져있는 방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원진은 약간 뜸을 들이다가 남자가 

말한 방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문 앞에 다다를 쯤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났지만 원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힘껏 열었다. 방 안에는 두 구의 시체가 뒤엉켜 있었고, 

그 두 시체에서는 피비린내와 썩은 내가 풍겨왔다.


“우웩”


난생처음 보는 시체에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원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구토를 해댔다. 

복도 중앙에 있던 여고생과 아저씨가 걱정이 되는지,

원진에게 다가와 몸을 못 가누는 원진을 부축해주었다. 


“너도 문 앞의 문구를 봤을 거라고 생각해. 이거는 장난이 아니야. 우리는 엄청난 위험에 처해있는 거라
고. 그리고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가는 저 시체들처럼 폭탄이 터져 죽어버릴 거야”


젊은 남자는 아직도 헛구역질을 하는 원진에게 쏘아댔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원진에게 아저씨가 물었다.


“그나저나 젊은이는 이름이 뭔가? 사실 젊은이가 오기 전에 우리들끼리는 벌써 통성명을 했거든. 서로 이름을 알아두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예? 이름이요?”


원진이 당황스러워하자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 이런 나부터 소개를 하지, 내 이름은 최승대라고 하네.”


“제 이름은 윤지은이요.”


승대 아저씨가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여고생이 끼어들며 말했다. 


“예, 저는 이원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역할은”


“잠깐, 자신의 역할도 말하려고?”


젊은 남자가 원진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순간 자신의 역할을 되도록 비밀로 하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아, 아니요. 휴,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네요.”


“난 문성훈이야. 네 역할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목숨이 걸려있을 만큼 중요한 거야. 명심해둬”


“네”


원진은 성훈의 카리스마에 눌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흠”


순간 천장에서 누군가의 헛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복도 중앙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천장을 응시했다. 

그들이 바라본 천장에는 스피커가 달려있었다.


“뭐지? 우리를 여기에 가둔 사람인가?”


“저는 여러분들을 이곳에 가두고 앞으로의 역할을 평가하고, 관리할 사람입니다. 당신들이 살기위해서는 쪽지에 적힌 당신들의 역할을 목숨 걸고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스피커에서는 듣기 거북한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야? 당신 뭐야?”


원진이 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 4일. 열심히 역할놀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에서는 더 이상 소리가 나질 않았다.


“죽여 버리고 싶군.”


상훈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중얼거렸다.


“흠, 아마도 우리를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로 지켜보는 것 같군”


승대 아저씨가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승대 아저씨의 말대로 주변에는 빨간 빛을 뿜어내는 카메라들이 

보호막에 가려진채 천장 이곳저곳에 매달려 있었다.


“일단 나머지 사람들을 찾아보죠.”


상훈이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나머지사람이라니요?”


지은은 갑자기 일어난 상훈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8명이라고 적혀있었잖아. 그리고 여기에는 4명, 죽은 사람 2명. 남은 두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성훈이 조곤조곤 설명했다. 성훈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중앙 복도에서 나와 방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런 거 물어봐도 될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죽은 거죠?”


복도를 가다가 원진이 물었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무언가를 캐내려는 물음이었다. 

원진의 물음에 다른 세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 말을 못했다.


“몰라, 내가 처음에 일어났을 때부터 이미 죽어있었어”


원진이 본인을 의심한다고 느낀 상훈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흠, 일단 죽은 두 사람의 방은 건너뛰고, 다른 방에 누가 있는지 확인해요.” 


원진은 나름 용기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앞에 있는 방문의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 철컥”


하지만 문이 안에서 잠겼는지 열리지 않았다. 


“잠겨있는데요?”


원진이 다른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누구시죠?”


순간 문이 열리면서 어떤 아저씨가 얼굴을 내밀었다. 원진의 얼굴을 본 아저씨는 놀랐는지 

‘쿵’ 소리를 내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원진은 아저씨를 부축했다.


“나를 죽이려는 건 아니지?”


원진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아저씨는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원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원진은 아저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역할에 따라서 목숨이 위험해질 수가 있다고 적혀있어. 내 가슴에 달린 폭탄도 봤고! 옆방에서 시체들도 봤다고!! 여기서 누가 나를 죽일지 어떻게 알아?”


아저씨는 막무가내로 방안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했다.


“아니에요, 위험하지 않아요. 제 역할도 위험한 역할이 아닌걸요?”


“뭔데?”


아저씨가 물었다. 원진은 순간 망설였다. 

하지만 원진은 이내 솔직해지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역할을 털어놨다.


“제 역할은 우리를 이곳에 가둔 녀석을 죽이는 겁니다.”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 말을 들은 성훈이 원진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사실이야?”


“네”


원진은 조용히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쪽지를 꺼내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원진이 꺼내 놓은 쪽지를 쳐다봤다.



당신의 역할은 해결사입니다.

사람들을 가두어 놓고 역할놀이를 시키는 저를 죽여주세요.

(가장 어려운 역할이군요. 절대 성공 못할 겁니다.)




“이렇게 역할을 공개해도 괜찮으세요?”


지은이 안쓰러운 표정을 하며 원진에게 물었다.


“솔직히 괜찮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께 제가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박 형사는 서둘러 자동차 앞 유리에 붙어있던 쪽지, 그 쪽지에 쓰여 있는 그곳으로 향했다. 

박 형사는 속도를 높였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 분 일 초가 급한 상황이었다. 

다른 동료들과 같이 행동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박 형사는 더욱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차를 

몰았다.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요동쳤다.




















불안해하던 아저씨는 사람들의 소개와 원진의 행동에 감동했는지 선뜻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제 이름은 임범진이라고 합니다. 아까 젊은이의 말대로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이곳을 빠져 나갑시다, 그리고 우리를 이 꼴로 만든 녀석을 잡읍시다.”


“흠,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성훈은 그런 것이 못마땅한지 비아냥거렸다. 그렇게 범진 아저씨를 설득한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의 방문을 두들겼다.


“똑, 똑”


“누구냐?” 


방안에 있던 마지막 사람은 노크소리에 즉각 반응을 했다.


“죄송하지만 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들인데”


원진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관심 끄고 꺼져”


방 안에 있는 사람이 신경질을 부리며 말했다. 


“쿵!”


“뭐야? 당신!”


성훈이 문을 발로 차며 말했다. 문은 성훈의 발길질 한 방에 조금 찌그러졌다.


“씨발!! 미친 새끼들아!! 무슨 짓이야!! 꺼져버려!!”


방 안에서 욕이 나오자 상훈은 화가 나서 더욱 세게 발로 문을 걷어찼다.


“그만두세요.”


원진과 승대 아저씨는 상훈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왜 막는 거야?”


“으윽!”


성훈이 자신을 막아서는 원진과 승대 아저씨를 뿌리치며 소리쳤다. 성훈이 강하게 뿌리치는 바람에 

원진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지고, 승대 아저씨는 뒷걸음질을 쳤다.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저 방안에서 욕을 쏴대는 녀석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먼저 죽은 두 사람도 혹시 저 사람한테 당했을지도 모르잖아!”


성훈이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듣고 보니 그렇군, 만약을 대비해서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범진 아저씨가 성훈의 말에 동조했고 그 둘은 문을 두드렸다.


“이봐요, 말로 해결합시다. 우리도 당신처럼 끌려왔는데 서로 힘을 합칩시다.”


범진 아저씨는 노크를 연신 해대면서 방 안에 있는 사람에게 평화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웃기지 말고 꺼져”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혹시 말이야”


가만히 뒤에 서있던 승대 아저씨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혹시 뭐요?”


“저 방안에 있는 사람이 우리를 가둬놓은 사람이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잖아?”


그 말을 들은 범진 아저씨는 문고리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꺼져, 그냥 놔둬!!”


안에 있는 사람은 계속해서 그만두라고 소리쳤다.


“그러니까 문 좀 열어봐요”


“그냥 놔두라니까!!”


어느덧 문고리가 박살났고 성훈과 범진 아저씨는 문을 억지로 뜯어냈다. 건물이 낡아서 그런지 

남자들이 달려들자 문은 쉽게 뜯겼다. 방 안에는 남자 하나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씨발!! 미친 새끼들 저리 꺼져!!”


남자는 미친 듯이 날뛰다가 가장 앞에 있던 성훈을 향해 달려들었다. 성훈은 재빨리 달려드는 남자를 발로 

밀어내고, 양손으로 남자의 멱살을 잡더니, 이내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리고는 발로 차서 복도로 밀어냈다.


“당신! 똑바로 대답해!!”


성훈은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그 남자를 향해 말했다.


“펑!!”


뭔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있던 남자의 몸뚱이가 터졌다. 폭발음과 동시에 피와 살점과 

내장 따위가 사방으로 튀었다. 너무나 놀란 지은은 비명도 못 지르고 주저앉았다. 그 남자와 가장 가까이 

있던 성훈 역시 피와 신체의 찌꺼기들을 뒤집어 쓴 채 아무런 행동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모두가 놀란 순간 스피커에서 녀석의 말이 들려왔다.


“흠, 타인들에 의해 역할 수행을 제대로 못했군요. 거기 시체에 가장 가까이 있는 분? 비위가 상하겠지만 시체의 바지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서 확인해줄래요?”


성훈은 심리적 압박감에 못 이겨 스피커의 지시대로 시체의 바지주머니를 더듬어 쪽지를 찾아냈다. 

쪽지에는 핏방울이 동그랗게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 성훈은 떨리는 두 손으로 쪽지를 폈다.



당신의 역할은 히키코모리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말고 방에만 계세요.

(참고로 히키코모리는 평소의 허현우씨, 바로 당신의 모습입니다.)



“방금 전 당신들이 죽인 사람의 역할은 히키코모리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4일 동안 방에만 박혀 있는 게 그 사람의 역할이었지요. 참 안타까운 희생자군요, 본의 아니게 역할 수행을 못해서 죽다니. 이게 모두 여러분 때문입니다.”


스피커에서는 모든 잘못을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떠넘기며 말했다. 얼이 빠진 성훈은 쪽지를 보고, 

떨리는 몸을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원진은 다시 한 번 피비린내 나는 시체를 보고는 

또 주저앉아 바닥을 보며 토악질을 해댔고, 지은은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이내 기절을 

해버렸다. 그런 지은을 범진 아저씨가 들어다 지은의 방으로 옮겼다. 승대 아저씨 역시 멍한 표정으로 

안경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는,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에 죄의식을 

느꼈는지 서로 아무 말도 않고 조용히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첫째 날이 지나갔다.









“네가 죽였어!!”


폭탄이 폭발해서 죽었던 시체가 일어나서 원진에게 꾸물꾸물 다가왔다. 원진은 도망칠 수 없었다. 

가슴팍에 구멍이 뻥 뚫린 시체는 서서히 원진에게 다가갔다. 


“아니야!!!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으악!!”


원진은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온몸이 흘러내리는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헉, 헉 후우”


원진은 아직도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는지, 숨을 헐떡거렸다. 원진은 땀으로 젖은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워서 방안에 있는 화장실로 힘겹게 걸어갔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원진은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더러운 땀과 피로 물들어진 얼룩을 모두 씻어냈다. 자신이 저지른 죄와 함께 

씻겨가길 간절히 바라면서. 원진은 대충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무엇보다 혼자 있는 게 너무나 무서운 원진이었다.

복도통로에는 붉은색으로 굵게 선이 생겨있었다. 물론 그 붉은 선은 피였다. 원진은 그 피를 따라서 

복도중앙까지 갔다. 그곳에는 성훈이 칼을 들고, 어제 죽은 남자의 시체를 토막 내고 있었다. 

원진은 그 끔직한 광경을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으아!!! 무슨 짓이에요!!”


“잠깐, 오해야! 내 말 들어봐”


갑작스런 원진의 등장에 당황한 성훈이 말했다. 하지만 원진은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무슨 일이야?”


승대 아저씨와 범진 아저씨는 원진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 나왔다.


“뭐야? 당신 뭐하는 거야?”


승대 아저씨는 온몸에 피를 묻힌 채, 칼을 쥐고 있는 성훈을 보며 말했다.


“오해라고, 자, 칼을 내려놓을게 안심하라고!”


성훈은 일단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칼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피가 묻은 손을 바지에 슥슥 닦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꽤나 긴장을 했다. 


“이거 내 역할이 적혀있는 종이에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낸 성훈은 그것을 원진이 있는 바닥에 집어던졌다. 원진은 눈치를 보며 종이를 

집어 들었다. 



당신의 역할은 시체처리반입니다.

시체가 생기면 칼로 썰어서 중앙복도의 구석에 있는 수거함에 넣어주세요.

(칼은 침대 밑에 있습니다.)



원진을 그것을 보고 아저씨들에게 건넸다. 아저씨들은 그것을 보고, 

성훈에 대한 경계를 어느 정도 풀고는 말했다. 


“흠, 끔찍한 역할이군.”


“성훈씨는 비위가 좋으시네요.”


원진이 피범벅이 된 성훈을 보며 말했다. 


“쳇, 얼떨결에 역할이 공개되었지만, 난 위험한 역할이 아니니까 걱정하지들마요. 누구는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요? 이렇게 안하면 죽으니까 이러는 거지.”


성훈이 바닥에 있던 칼을 집어 들며 말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시체를 썰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썰었다. 칼로 죽은 시체를 자르는 모습을 본 원진은 또 속이 뒤집히는지 이내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상훈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구경할 거 없으니까 신경 끄고 저리가요,”


“알, 알았어요.”


범진 아저씨와 승대 아저씨는 상훈의 살기담긴 말을 듣고 즉각 자리를 피했다. 원진이 속을 게워내고 

나왔을 때, 문 앞에 지은이 겁을 먹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아까 무슨 일이었죠? 비명소리가 들리던데”


원진은 지은에게 방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쳇, 나갈 수 있는 문이라고는 저 두꺼운 문밖에 없잖아”


범진 아저씨가 원진과 지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고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뒤따라 승대 아저씨도 왔다. 


“창문도 없어, 온통 단단한 벽뿐이야, 저 문이 열리지 않는 한, 우리는 도망칠 수 없어.”


승대 아저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문 위에 달려있던 시계 봤죠? 그 시간이 다 되서 이 역할극이 끝나면 우리는 풀려날 겁니다. 우리는 그 전까지 살아있기만 하면 되요”


범진 아저씨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우리를 가둬놓은 녀석은 끔찍한 살인마라고요! 분명히 우리 모두를 죽일 거예요!”


원진이 살짝 열을 내며 말했다.


“희망도 못 가집니까? 그렇게 죽는다고 생각하면 왜 지금 살려고 발버둥치는 겁니까? 차라리 남의 손에 죽을 바에 자살을 해버리지!”


범진 아저씨의 호통에 원진은 아무 말도 못했다. 


“정말 역할을 수행하고, 끝까지 살아남으면 4일 후에 우리를 풀어줄까요?”


지은이 울먹이며 말했다. 가장 나이도 어리고 유일한 여자였던 지은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범진 아저씨는 자신의 딸, 정도의 또래인 지은을 다독였다. 


“그래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우리는 살아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모두 힘을 합쳐야 돼요, 반드시 살아나가서 우리를 가둬둔 녀석에게 복수를 해야겠어요!!”


원진이 힘을 내며 말했다.


“흠, 오바이트나 하지 말라고,”


시체처리를 모두 끝내고 복도통로로 걸어 나온 성훈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씻으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쩌다가 이 꼴이 된 거지?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승대 아저씨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말했다.


"여기에 어떻게 잡혀왔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네요."


“그런가?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모두가 그런 거였군. 우릴 가둬놓은 녀석은 치밀한 지능범이군.”


범진 아저씨가 턱을 만지며 말했다.


“그 지능을 이상한데다가 쓰는 사이코라는 게 문제겠죠?”


승대 아저씨가 일어나며 말했다. 


“배가 고프니 뭐라도 먹어야겠어, 독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는 상관없어, 그냥 냉장고의 음식을 먹어야겠어.”


“음식도 있었어요?”


원진이 방으로 들어가는 승대 아저씨의 뒤를 보며 물었다.


“흠, 방안의 냉장고에 음식이 있어. 빵하고 물 같은 것들이. 내가 봤을 때 음식은 안전해,”


범진 아저씨가 대신 설명했다. 


“안전하다니요?”


“내가 어제 먹었거든”


음식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원진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났다. 민망한 원진은 식사를 하겠다며 

일어서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들의 말대로 방안의 작은 냉장고에는 간소한 먹을거리가 있었다. 

그동안 게워냈던 것도 있고 해서, 더욱 허기가 졌던 원진은 급한 대로 빵과 물을 꺼내 허겁지겁 먹었다. 

앞으로 먹을 여분의 빵과 물을 남긴 원진은 간만에 느낀 포만감에 침대에 털썩 누웠다. 

오래 되서 낡은 침대라서 그런지 침대에서는 삐걱 소리가 났다.

나름 폭신한 침대에 그동안 잔뜩 움츠렸던 근육이 서서히 풀리며, 그렇게 원진은 잠이 들어버렸다.





“으악!!!!!!”





“꺄!!!!”



귀를 찢는 것 같은 비명소리에 원진은 잠이 깼다. 남자와 여자의 비명소리. 여자의 비명소리는 분명히 

지은의 비명소리였다. 원진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원진 말고도 범진 아저씨와 승대 아저씨가 

나와 있었다. 그들은 비명소리가 흘러나온 지은의 방 문 앞에 서있었다. 승대 아저씨와 범진 아저씨는 

지레 겁을 먹었는지 원진의 뒤로 물러섰다. 하는 수 없이 원진이 문 앞으로 바짝 다가가 귀를 가져다댔다. 

문에서는 지은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진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말했다.


“무슨 일이죠?”


순간 열린 문틈으로 지은이 달려와 원진에게 와락 안겼다. 원진은 놀라서 뒤로 주춤했다. 

사실, 지은이 달려와서 안긴 것보다 지은의 옷가지와 손에 묻은 피 때문에 놀랐었다. 

원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저씨, 방 안 좀 둘러봐주세요.”


승대 아저씨는 원진의 말을 듣고, 문을 열고 들어가 안을 살폈다.


“이게 뭐야? 성훈씨가 죽었어!”


원진이 생각한 대로였다. 지은의 몸에 상처하나 나지 않은 걸로 봤을 때, 그 피는 다른 사람의 피일게 

분명했다. 원진은 자신의 몸에 들러붙은 지은을 간신히 떨어뜨리며 물었다.


“무슨 일인 거죠? 자세히 설명해요!”


지은은 원진의 다그침에 어느 정도 울음을 그쳤다.


“저, 저를”


“괜찮아요, 말해 봐요”


“저 남자가! 저를 강간하려고 했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지은이 소리쳤다. 원진과 승대 아저씨 그리고 범진 아저씨, 이렇게 모두는 지은의 말에 어리둥절해 했다. 

승대 아저씨는 지은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강간이요? 그게 말이 됩니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승대 아저씨의 추궁에 지은은 다시금 원진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


“흑흑, 정말이에요, 정말 내 옷을 벗기려고”


“이제 됐으니까 그만하세요. 일단 나중에 지은씨가 진정되면 이야기하자고요,”


원진은 지은을 자신의 방에 데려다놓고, 자신은 밖으로 나왔다. 

물론 혹시나 있을 상황에 대비해서 문을 안에서 잠근 채로 문을 닫았다. 


“그 여학생은 아직도 울어요?”


범진 아저씨가 복도 벽에 기대서, 팔짱을 낀 채, 원진에게 물었다. 무언가 불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 진정됐을 거예요. 그냥 놔두세요.”


“이봐요, 원진씨. 왜 이렇게 감싸는 겁니까? 당신은 위험하지 않은 역할이라고 쳐도 저 여학생은 무슨 역할일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우리들 앞에서 버젓이 살인을 저질렀다고요. 당신은 괜찮다고 해도, 우리는 불안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


범진 아저씨가 원진을 몰아세우며 물었다. 순간 천장의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두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군요. 안타깝습니다.”


“뭐라고? 안타깝다고? 이게 누구 짓인데!!”


승대 아저씨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흠, 어쨌든 유감입니다. 역할놀이를 하다보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저에게 화내신 안경 쓴 아저씨? 방에 들어가서 시체의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있는 쪽지 좀 꺼내주시겠습니까?”


그 녀석이 승대 아저씨를 꼭 집어 말했다.


“내가 네놈의 부탁 따위를 들어줄 것 같으냐?”


승대 아저씨가 강하게 소리쳤다. 아저씨의 두 주먹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유감스럽지만 부탁이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명령’이라는 두 단어에는 은근한 협박이 들어있었다. 승대 아저씨는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를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이내 그 녀석의 지시대로 방에 들어갔다. 방 안에는 성훈의 시체가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는데 흉부 쪽이 심각하게 난도질 되어 있었다. 승대 아저씨는 눈을 질끈 감고, 시체로 다가가 

바지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냈다. 쪽지를 꺼낸 승대 아저씨는 황급히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문을 ‘쿵’

하고 닫았다.


“볼 필요 없을 텐데요? 우리는 성훈씨의 역할을 알잖아요. 그의 역할은 시체처리라고요.”


범진 아저씨가 쪽지를 가로채서 펴고는 말했다. 그의 말대로 쪽지에는 성훈의 역할이 시체처리라고 

적혀있었다.


“크흠, 그래도 절차는 지켜야합니다.”


변조된 목소리를 헛기침을 한 차례 하며, 그 녀석이 중얼거렸다. 


“절차? 네 녀석한테는 사람 목숨보다 절차가 더 중요하지?”


승대 아저씨가 참지 못하고, 그 녀석을 비꼬았다. 


“잊지 마세요. 제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끝입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흉한 목소리의 협박에 승대 아저씨는 움찔했다. 


“쳇”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저를 위해서라도 버튼은 자신의 역할을 못했거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에만 누릅니다. 전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요,”


원진은 참으로 양심도 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덧 어수선했던 둘째 날이 지나가고 

셋째 날의 아침이 밝아왔다. 원진도 그렇고, 승대 아저씨도 그렇고, 범진 아저씨, 모두 불안한 마음과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편히 잠들지 못하고, 복도 통로에서 날을 샜다. 


“쳇, 뜬눈으로 날을 새버렸군. 얼마 안 남았는데 말이야”


승대 아저씨가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원진씨는 방안에 있는 여자가 무슨 역할인지 걱정되지 않아요?”


범진 아저씨의 느닷없는 물음에 원진은 잠깐 졸다가 확 깨서 일어났다.


“네, 뭐라고요?”


“저 방안에 있는 여자가 무슨 역할인지 걱정 안 되냐고요?”


범진 아저씨는 다시금 되물었다.


“어차피 여자 하나입니다. 저희 셋이 같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젯밤에 지은씨가 강간을 당할 뻔 했다고 했잖아요. 그건 정당방위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원진은 조목조목 따져가며 범진 아저씨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범진 아저씨의 표정은 점차 굳어졌고, 

이에 옆에 있던 승대 아저씨가 말했다.


“강간이라고요? 성훈씨가 강간 같은 걸 할 사람으로 보였습니까? 물론 그가 우리에게 보여줬던 행동거지가 좀 난폭하고, 거친 면이 없잖아있지만 우리에게 자신의 역할을 공개한 걸 보면 나름 인간적인 사람이었다고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당신은 어제 방에 처박힌 채, 안 나와서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어제 성훈씨와 그 여자는 꽤나 친했었다고요”


승대 아저씨의 말에 원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저씨들의 말을 귀담아 들은 원진은 일어나서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며 지은을 불렀다.


“지은씨, 지은씨! 문 좀 열어봐요!”


하지만 안쪽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앉아서 원진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범진 아저씨가 일어서서 

기지개를 하며 말했다. 


“역할은 어찌될지 모르지만 오늘로 셋째 날이군요. 내일이면 이곳도 끝입니다.”


“만약에 우리를 가둬둔 녀석이 살려주지 않는 다면요?”


승대 아저씨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흠, 그런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군요.”


범진 아저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동차 앞 유리에 붙어있던 쪽지에 적힌 장소는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라 박 형사가 

찾아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루를 꼴딱 새운 끝에야 박 형사는 그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오전 11시 50분. 먹은 것도 없이, 장소를 찾아 헤매느라 힘들었지만 사람들의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박 형사는 더욱 힘을 내며 차에서 내렸다. 풀숲이 꽤나 많이 자라서 걷기가 힘들었지만, 쪽지에 적힌 대로 

그곳엔 오래된 건물하나가 있었다. 박 형사는 문을 열고 들어가, 쪽지에 적힌 대로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몇 계단을 내려가자 두꺼운 철문 하나가 보였다. 박 형사는 쪽지에 적힌 대로, 철문 옆에 있는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자 ‘덜커덩’ 소리와 함께 육중한 철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셋째 날 내내 지은씨는 방에 박혀서 꿈쩍도 안했고, 원진과 승대, 범진 아저씨는 서로를 경계하기 바빴다. 

그러다가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너머 네 번째 날 아침을 향하고 있었다.


“내일 12시면 이 역할놀이도 끝나는 군.” 


하지만 원진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꽤나 많았다. 다른 사람들의 역할이나, 처음부터 죽어있었던 

두 사람 그리고 방에서 나오지를 않는 지은씨. 문을 부수려고 생각도 했지만 첫 번째 희생자가 떠올라 

차마 문을 부술 수는 없었다. 


“원진씨, 이거 먹지 그래?”


범진 아저씨가 자신의 방에서 꺼내온 빵과 물을 건네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원진은 그것을 넙죽 받고는 이내 입에 쑤셔 넣었다. 자신의 방에 있던 음식을, 지은씨 때문에 꺼내서 

먹을 수가 없어서 굶고 있는 와중에 먹는 음식이라 원진은 범진 아저씨가 고마웠다. 빵과 물을 허겁지겁 

먹는 원진에게 범진 아저씨가 물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 원진씨는 죽을 거야?” 


원진씨는 놀라서 물을 뿜으며 대답했다.


“무, 무슨 말이죠?”


“아니, 자네 역할은 우리를 가둔 녀석을 죽이는 역할이잖아, 근데 이대로 12시가 되어버리면 원진씨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서 죽을 거 아니야?”


범진 아저씨의 말을 들은 원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실, 다른 사람들의 일에 급급해 정작 자신의 

역할은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야겠죠.”


원진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 있던 빵을 내려놓았다.


“왜 더 안 먹어?”


“입맛이 없네요.”


원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12시가 되면 죽는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원진은 

애써 참아냈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원진의 방에서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진씨, 원진씨”


“어? 지은씨?”


“원진씨, 지금 시간이 몇 시죠?”


지은은 문에 바짝 기댄 채, 원진에게 시간을 물어봤다.


“시간이요? 지금 11시 40분이네요. 앞으로 20분 남았네요. 하하.”


왠지 모를 허탈감에 원진은 웃음이 났다. 


순간 원진의 앞을 승대 아저씨가 가로 막았다. 


“더는 못 참아!! 나도 살고 싶다고!!”


승대 아저씨는 그렇게 외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방에 있던 침대 아래에서 날이 선 

식칼을 꺼냈다. 그리고는 원진과 범진 아저씨를 협박했다.


“갑자기 왜 이러세요! 진정하세요!”


원진과 범진 아저씨는 칼을 쥐고 서서히 다가오는 승대 아저씨를 향해 소리쳤다. 


“나도 살아야 한다고!! 제발 죽어줘!! 난 살고 싶어!!”


승대 아저씨는 소리쳤다. 순간, 범진 아저씨는 잽싸게 옆에 있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승대 아저씨는 잠깐 놀라더니 곧 원진을 목표로 삼은 듯, 원진에게 다가갔다. 원진은 순간 용기를 내어, 

어차피 죽는다는 심정으로 승대 아저씨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양쪽의 방문이 동시에 열리면서 지은과 범진 

아저씨가 나타났다. 범진 아저씨는 승대 아저씨의 뒤에서 양팔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서 죽여!” 


그러자 지은은 품에 있던 칼로 승대 아저씨의 머리를 목을 찔렀다. 그렇게 승대 아저씨는 비명 한마디 

못 지르고 목에서 피를 뿜으며 즉사했다. 원진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너무 놀라 뒤로 넘어졌다. 

순간 천장의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렸다.


“지은씨, 당신이 칼로 찔러 죽인 그의 방, 냉장고를 보면 쪽지가 있을 겁니다. 그것을 꺼내 보세요.” 


지은은 범진 아저씨와 원진의 눈치를 살피다가 방에 들어가서 냉장고를 열어 쪽지를 꺼내서 가져왔다. 

그리고는 꼬깃꼬깃 구겨져 있던 쪽지를 펴냈다.



당신의 역할은 칼잡이입니다.

칼로 아무나 한 명만 죽이세요. 한 명만

(칼은 침대 밑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조심하세요.) 



“그의 역할은 한 사람만 죽이면 되는 칼잡이였습니다. 양심이 있었던 터라,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역할은 잊고 있다가, 결국 살고자 하는 마음에 역할을 수행하려다 역으로 죽어버렸네요. 역시나 당신들이 죽였습니다.”


스피커에서 변조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럴 수가, 그렇다면 여태까지 참고 있었다는 건가?”


범진 아저씨는 쓰러져있던 원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진은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순간, 원진의 눈에 

승대 아저씨의 목에서 칼을 뽑아내는 지은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원진은 

범진 아저씨를 손을 잡고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위험해요!”


지은이 쥐고 있던 칼이 허공을 갈랐다. 원진과 범진 아저씨는 가까스로 칼을 피하고는 복도 끝의 문으로 

도망쳤다. 시간은 11시 50분을 약간 넘어가고 있었다. 막다른 문에 들어선 범진 아저씨와 원진은 

뒤를 돌아봤다. 지은이 칼을 들고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원진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지은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도 살아야 해요,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당신들 때문이에요”


지은은 냉담하게 대답했다. 


‘덜커덩’


순간 원진과 범진 아저씨가 등지고 있던 두꺼운 철문이 스르르 열리기 시작했다.


“설마 기적인가?”


원진이 중얼거렸다. 문이 열리고, 그곳에는 박 형사가 총을 들고 서있었다. 

그리고 박 형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앞에 칼을 쥐고 서있는 지은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복도 전체에 울려 퍼지는 총성과 함께 지은은 맥없이 쓰러졌다.


“생존자들인가요? 어서 여기를 나갑시다.” 


박 형사는 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자하에서 계단을 오르는데 갑자기 원진이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이에요?”


“저기 형사님 이 건물 안에는 아직 우리를 가둬놓은 그 녀석이 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박 형사가 물었다.


“네 맞아요, 아직 건물 안에 있어요. 확실합니다.”


“전 제 역할을 수행해야겠어요. 가시려면 가세요.”


“저도 돕겠습니다.”


“그럼 같이 가죠.”


그렇게 셋은 계단을 계속해서 올라갔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 -출입금지- 라는 팻말이 붙은 실험실의 

문이 보였다. 박 형사는 총을 양손에 꼭 쥐고, 그 문을 발로 찼다. 그러자 문이 활짝 열리면서, 

수 십대의 모니터와 이상한 기계장치들 사이에 앉아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 하나가 보였다. 

그 남성은 그들을 보고 재빨리 어떤 버튼을 누르려했다. 원진은 그게 폭탄을 터뜨리는 장치라고 확신했고, 

박 형사에게 그를 쏘라고 말했다.


“탕!!”


“펑!!”


총소리와 폭발하는 소리가 동시에 퍼졌다.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원진은 눈을 서서히 떴다. 

의자에는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수염 난 사내가 보였다. 그리고 옆에는 박 형사가 가슴이 폭발한 채, 

죽어 있었다. 원진은 알 수 없는 상황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시간은 12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 

패닉상태에 빠져있는 원진에게 범진 아저씨가 땅에 떨어진 총을 주워 총구를 들이밀고는 말했다.


“이번 역할놀이는 참 인재가 없네요. 하하하”


“네?”


“그나마 지은씨가 정의의 사도라는 역할로써 살인자들을 처단했지만, 뭐 처음에 히키코모리 역할을 맡았던 현우씨를 단체로 죽이는 바람에 곤란하게 됐지만”


원진은 어리둥절했다.


“그나저나 박만도씨는 불쌍해서 어떡하나? 역할놀이를 두 번이나 했는데 결국에는 죽어버렸네요, 아, 원진씨는 박만도씨를 모르죠? 저기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이 박만도씨에요. 일부러 위험하지 않게 ‘역할놀이 관리자’라는 역할을 맡겨줬는데”


범진 아저씨는 박만도라는 사람이 죽어있는 곳에 가서 책상에 놓여있던 쪽지를 꺼내 원진에게 던졌다. 



*중요역할

당신의 역할은 역할놀이 관리자입니다.

저를 대신해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그에 따른 설명을 해주세요.

아무나 죽여서는 안 됩니다. 제가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경험자인 당신이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이번엔 꼭 나가시기를)






원진은 황당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원진씨, 경찰의 주머니를 뒤져보세요.”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원진은 미친 듯이 경찰의 주머니를 뒤졌다. 그곳 역시 쪽지가 들어 있었다. 






당신의 역할은 경찰입니다. 

***시 ***동 ****로 찾아가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구하세요.

내일 12시까지 꼭.

좀 멀기 때문에 지금 출발해야 할 겁니다.

꼭 혼자 오셔야합니다. 

참고로 그곳에는 당신이 찾는 최재희씨와 우상민씨도 있습니다. 

(참고로 당신의 가슴에 달려있는 건 폭탄입니다. 행동하지 않을 시에 터질 겁니다.)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원진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아, 최재희씨와 우상민씨요? 그들은 여기 있습니다. 당신도 봤잖아요? 어떤 방에 있던 시체 두 구, 못 보셨나요? 규칙에 있죠? 역할놀이는 8명이서 한다. 나와 당신 그리고 처음에 죽은 히키코모리씨, 지은씨, 승대씨 성훈씨, 박만도씨, 그리고 저기 경찰, 무대는 점점 넓어진답니다.”


범진 아저씨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물론, 저 혼자서는 이런 일을 못 꾸미죠? 동료도 있답니다. 하하하”


“이럴수가”


“5,4,3,2,1”


범진이 중얼거렸다.


“뭐죠?”


“카운트다운이요, 12시가 됐네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셨네요.”


범진은 원진의 머리를 향해 총을 쐈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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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면서 쓰느라 이거 제가 다시 읽지도 못했네요.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되는데 ㅠㅜ

어쨌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웃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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