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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대장일지쓰고 소대장한테 구타당할뻔한 이야기.
게시물ID : military_346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165
조회수 : 17193회
댓글수 : 69개
등록시간 : 2013/11/22 18:19:58
 
입대할 때만해도 흐를것 같지 않던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나는 중대 최고참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무사전역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전부인 소대에서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어 남은 전역일 만을 세어나갈 뿐이었다.
평화로운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한가지 불만인 것은 내가 아직도 분대장이라는 사실이었다. 보통 집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말년이 되면 후임에게 분대장직을 넘겨주는 것이 의례적인 관례였지만 왜인지 나는 전역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분대장을 맡고 있었다. 소대장을 볼때마다 분대원들에 관심을 주고 책임감이 필요한 이 직책에 나처럼 노쇠하고
군생활에 대한 열정도 의지도 없는 병사에겐 어깨의 견장이 너무도 무거우며 나는 이제 관심을 줄 입장이 아니라 관심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며 분대장직에서 물러서게 해달라고 상소를 올렸지만 그때마다 소대장은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사실 분대장을 달고있다고 군생활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회의할때나 모이고 평소에는 일반병사들과 하는일이
크게 다를건 없었지만 내가 이토록 분대장직을 벗어나길 갈망하는 이유는 바로 분대장 일지 때문이었다. 우리 부대에서
분대장들은 하루에 한 번 씩 분대장 일지를 써야했다. 그날 하루 있었던 사건사고나 분대원들의 건강상태, 심리상태등을 체크해서
기록하는 일종의 관찰일기였다. 초등학교때 일기조차 쓰지 않던 나로써는 매일같이 분대장일지를 써야 한다는건 정말 귀찮은
일이었다. 물론 하루하루 분대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는 취지는 좋지만 별다른 일이 없을땐 도무지 쓸말이 없어
괜한 후임을 병자로 만들기도 하고 없는 고민도 만들어 내는게 현실이었다. 이렇게 없는말이라도 써놓고 나면 그 다음에는
도무지 쓸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분대원들 조차도 자꾸 뭘 물어보는게 귀찮은 눈치였다. 매일 뭐라도 적어보려 별일 없냐고
물어보면 별일 없다고 대답할 뿐이었고 가끔씩 존나 진지하게 '너 정말 군생활에 힘든일이나 애로사항 없어?' 라고 궁서체로 물어도
아무일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삼일에 한번씩 몰아서 작성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나마 나는 양반이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소대장이 분대장일지를 체크하는데 보통 다른 분대장들 대부분이 일주일씩 밀려있다가 검사받는 날짜가 다가오면
인터폰에 비친 구몬선생님을 발견한 초등학생 마냥 허겁지겁 일주일치를 몰아서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내용은 대부분이
 
200x년 x월 x일
 
특이사항 없음.
 
200x년  x월 x일
 
특이사항 없음.
...
...
..
 
이런식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일과가 끝나고 분대장 일지를 검사받는 날이었다. 다른 분대장들과 함께 소대장실로 향했는데 그날따라 소대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소대장 또한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아 평소에 말년인 나와 편하게 지내는 사이였는데 아무래도 중대장이 또 푸닥거리를 한번 했는지 몹시 기분이 좋지않아 보였고 그날따라 별거 아닌일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분대장일지를 보며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내용이 부실하다.
성의가 없다 개판이다. 이따위로 할거면 하지마라. 나도 모르게 '네!'라는 대답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대로 다시 삼켜야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선임분대장이 이따위로 쓰니까 후임들도 똑같은거 아니냐. 너는 글쓰는과 나왔다는 놈이 이따위로 밖에
못써가지고 오냐. 라며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소대장실을 나서며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수가 없었다. 그렇게 소대장은 말년의 반항심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 그 날 이후 다음 검사일까지 나는 하루에 한시간씩 앉아서 분대장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다음주가 돌아왔다.
 
다시 소대장실을 찾아가 일주일간 작성한 분대장 일지를 내밀었다. 소대장은 전보다 늘어난 양에 만족한듯 싶었다. 그렇게 분대장 일지를 읽어 내려
가던 소대장의 얼굴에 조금씩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200x년 x월 x일
 xxx일병과 ooo상병의 식습관에 대한 고찰과 분석
 
본 분대장 일지에서는 xxx일병과 ooo상병의 식사습관과 평소 생활습관에 따라 어떠한 변화가 이루어지고자 알아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연구 대상은 x소대 x분대에 서식하는 xxx일병과 ooo상병을 대상으로 한다.
.....중략......
금일 xxx일병은 조식 식사에서 나온 임연수어 일부를 남기는 모습을 보아 식욕저하가 의심되나 정오 이후 소변 3회와 대변 2회의 배변활동을 실시한 것을 통해 xxx일병의 소화기능이 원활하게 이루어 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ooo상병의 경우 금일 px를 2회 이용해 과자 및 초코렛을 섭취한 것으로 보아 식약청에서 권장하는 일일당류권장량을 초과 섭취한 것으로 보이며
이에따른 혈중 당농도 상승이 우려된다. 
 
   을유년 x월 x일 맑다.
 
아침을 일찍 먹었다.
위병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각 소대의 사수와 부사수 들이 인사하러 왔다.
부사수 하나가 바리케이트를 관리하지 않아 곤장을 쳤다. 사수 역시 점검하지 않아 이 지경에까지 된것이니 해괴하기 짝이없다.
공무를 어줍짢게 여기고 제몸만 살찌려 들며 이와같이 돌보지 않으니, 앞 날의 일을 알만하다.
공무를 보고 사격을 나가 k2 열발을 쏘았다.
 
   200x년 x월 x일
 
살어리 살어리랐다. 부대에 살어리랐다.
건빵이랑 맛스타 먹고 부대에 살어리랐다.
얄리얄리 얄랴셩 얄라리 얄라.
 
가던 차 본다. 가던 차 본다.
녹 뭍은 k2일랑 가지고 위병소 아래 가던차 본다.
얄리얄리 얄랴셩 알라리 얄라.
 
........ 후략......
 
 200x년 x월 x일
 
                   광야
                                       강xx
            까마득한 날에
         px가 처음 열리고 
    어데 이등병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장병들이
      px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다시 천고의 뒤에
   황금마차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px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200x년 x월 x일
 
xxx상병은 의무대에서 나오는 ooo일병과 마주쳤다. 
"너... 설마.... " xxx의 눈이 ooo의 손에 쥐어진 약봉지에 머물렀다.
"내성발톱 이라더니.... 나에게 거짓말 한거였어?"
"... 그래요 거짓말이었어요. 어떻게 말해요! 어떻게!"
"이런 바보... 왜 말을 못해! 그냥 무좀이면 무좀이라고 왜 말을 못하냐고!"
"미안해요.. 미안해.. "
xxx가 와락 ooo을 껴안았다. 은은한 달빛만이 두 사람을 감싸안았다.
 
이렇게 소대장이 만족할만한 다양한 장르의 분대장 일지를 작성해 제출하고 소대장의 반응을 살폈다. 소대장의 몸은 밀려드는 감동 때문인지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내 후임들은 내 목을 조르는 소대장을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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