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에...
1994년 8월 쯤 국군 동해병원(현 강릉병원)에 입원한 후
국군 원주병원을 거쳐 해를 넘겨 국군 부산병원까지 가서야 수술을 하고 퇴원을 했다.
거의 6개월을 병원에서 보낸 것이다.
1. 원주병원에서...
같은 병실에 육군 상사 한 분과 원사 한 분이 계셨는데,
자고 일어나면 당연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하고 인사를 했다.
식사 때가 되면 또 당연히 "식사하십시오" 하면서 그 분들을 먼저 챙겼다.
그 분들이 식사를 하고 오시면 또 당연히 "식사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했다.
혹시나 병세가 악화되어 식사를 못 하시게 되면 식당에서 밥을 챙겨다 드리기도 했다.
처음엔 우리의 인사법에 당황하시던 그 분들도
시간이 지나자 친근하게 느껴지고 좋다며 우리와 가깝게 지내셨다.
어느날 육군 중사와 하사 너댓명이 우리 해군하사 네명을 불러 모았다.
"야! 니네 졸라 싸가지 없다"
"뭐가요?"
"뭐가요??? 니네는 '식사하십시오', '식사하셨습니까?'가 경례 구호냐?"
"아닌데요"
"어쭈 이새끼 봐라"
"아 왜요?"
"아 나 이새끼가... 말끝마다 요요"
"왜 그러시는데요?"
"해군 니네들... 앞으로 경례 똑바로 해!"
"도대체 뭐가 문젭니까?"
"식사하십시오, 식사하셨습니까 그런말 쓰지 말라고!!!"
"해군에서는 원래 이렇게 하는데요"
"요도 쓰지마 이새꺄!!!"
"도대체 왜 그러시냐구요"
"어디 감히 상사, 원사들한테 싸가지 없게..."
"나 참... 그렇게 예의를 차리시면서 상사, 원사님들 식사는 챙겨 봤습니까?"
"뭐 임마?"
"밥 때 되면 자기들끼리 밥 먹으러 가기 바쁘지 그 분들 식사하시라고 챙겨 봤냐구요"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그렇게 못마땅하면 앞으로 저분들은 육군들이 알아서 챙기세요. 우리 해군이 나서기 전에..."
"........"
그날 이후로 육군 중사와 하사들은 더 이상 우리 해군 하사들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고
육군 상사와 원사 두 분은 당신들을 살뜰히 챙기는 해군 하사들을 더욱더 예뻐하셨다.
2. 부산병원에서...
병원에서는 보통 경례구호를 "충성"이라고 하는데,
유독 해군과 해병만 자체 경례구호인 "필승"을 시전하고 다녔다.
어느날 병원 복도에서 병원장(중령)과 마주쳤다.
우리는 당연히 기합이 바짝 든 자세로 병원장께 예의를 다 했다.
"필!!승!!"
"어??? 뭐야?"
"네?"
"니네 경례구호가 왜 그러냐고"
"아 네... 그건..."
"이것들 봐라. 여기서는 경례구호가 '충성'인 거 몰라?"
"아버버... 어버버..."
그 때, 해군 동근무복을 입은 간호부장(소령)이 나섰다.
"너희들 해군이니?"
"네"
"아... 병원장님 해군들 경례구호가 '필승'입니다"
"그래도 여긴 병원이잖아! 여기선 여기 법을 따라야지!"
"그게 해군들 자존심이고 전통이니까 이해 좀 해 주십시오"
"에잇!!! 어라? 대가리는 또 왜 이래? 대가리 안 깎을래?"
"아... 해군들은 원래 머리카락을 좀 기르게 돼 있습니다"
"머리카락 기르는 군대가 어딨어?"
"그게... 물에 빠지면 머리카락을 잡고 건지기 때문에 규정상 좀 기르게 돼 있습니다"
"에잇!!! 뭐 그런 군대가 다 있어?"
우리는 간호부장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병원장은 역정을 내며 우리를 지나 모퉁이로 돌아갔다.
그리고 모퉁이에서 병원장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이것들은 또 뭐야!!!!!?????"
그곳에는 해병 4명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