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6&aid=0002155786

나치범죄 부정한 영국작가, 오스트리아서 징역 … 독일, 좌우극단 동시 규제

#지난 1998년, 영국의 유명 역사작가 어빙(D.Irving)은 나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책을 펴낸 작가와 출판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했다. 나치범죄에 대한 증거를 왜곡했다는 이유였다. 역사학자가 동참한 2년여의 조사 끝에 어빙은 패소했다. 정작 그는 2006년 오스트리아에서 형사소송에 휘말렸다. 1989년 그곳에서 학살을 부정하는 연설을 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입국했던 것. 그는 법정에서 나치가 수백만의 유대인을 살해했음을 인정하고 종래 입장을 바꿨다고 진술했지만 결국 '나치금지법'에 의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1월 15일, 대법원은 5·18민주화운동을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사자명예훼손)로 기소된 수구논객 지만원씨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지씨는 2008년 1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한다"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돼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됐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대법원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고 5·18에 대한 법적 평가는 지씨의 주장으로 전복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지씨는 얼마 후 같은 행위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상고했다.

#이달 초 전두환 전 대통령 모교인 대구공업고등학교는 홈페이지 동문마당에 전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으로 소개했다. 대구공고는 홈페이지 '동문'란에 전 전 대통령 인적사항과 치적을 나열하면서 12·12 군사반란이나 계엄군 진압으로 7000여명의 희생자를 낳은 5·18 등 과오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임제 도입을 들며 '한국 정치 민주화에 불멸의 초석'이라고 소개했다. 논란이 일자 학교 측은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대구공고는 지난해에도 전두환 자료실을 만들었다가 논란 끝에 개관하지 못했다.

◆5·18 왜곡, 갈수록 기승 = 5·18민주화운동 33주년을 맞아 역사왜곡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5·18에 대한 법적·역사적 판단이 이미 내려졌음에도 이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주장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나치의 만행을 두둔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유럽국가들의 사례를 제시하며 좌우익 극단을 규제하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15일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역사 왜곡 시도와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는 5·18 부정이 심화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오승용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문민·민주정부의 등장으로 위기감이 고조된 보수세력이 결집을 위해 '보수판 역사 바로세우기'를 시도했고 그 핵심이 5·18항쟁에 대한 보수주의적 재평가였다"며 "초기엔 일부 관변단체, 극우언론인 등이 주도했으나 시민사회 분화, 정보통신기술 발달 등으로 극단화가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5·18을 왜곡하는 콘텐츠를 가장 많이 내놓은 곳은 2009년 당시 지만원씨가 운영하는 '시스템 클럽(2009년 기준)'으로 전체의 86%를 차지했고 그 외에 올인코리아(5.1%), 뉴라이트 폴리젠(2.6%), 뉴라이트연합(1.8%) 등의 순이었다. 이중 일부 사이트는 폐쇄되거나 활동이 중단됐지만 최근에는 젊은층이 많은 우익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을 통해 이들의 논리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일베에서는 '민주화'라는 용어 자체가 '산업화'에 대응되는 비하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호남비하 표현을 비롯해 "5·18은 폭동"이라는 주장이 일상화돼 있다.

오 교수는 "5·18 왜곡담론을 생산하는 이들은 소수에 한정돼 있지만 인터넷 기술의 특성상 이를 공유하고 유포하는 이들은 헤아리기 힘든 상황"이라며 "이미 일정한 파급력을 갖춘 정치담론으로 성장한 이상 어떤 방법으로 생산, 유통되는지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명예훼손보다 선동죄가 합당" = 토론회에서는 나치 범죄 부인행위, 차별과 증오를 부추기는 언동을 규제하는 유럽 사례도 소개됐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씨와 같은 언동이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에 적용될 경우 유럽에서는 '선동죄'에 해당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 교수는 유럽 주요 국가들의 홀로코스트 부인 처벌법규를 비교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이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거나 정당화, 혹은 사소화하는 시도를 처벌하는 사례를 들며 "지씨가 프랑스, 오스트리아에서 '다른 제노사이드(학살)'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증오의 고취를 규제하는 선동죄로 규제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독일형법은 집회 등에서 나치독일의 학살을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자는 벌금형 또는 5년 이하의 자유형(구금)에 처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나치금지법'은 인쇄물,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해 나치의 범죄를 부정하거나 정당화를 시도하는 경우 최대 20년형에 처할 수 있다. 스위스 역시 공연히 인종, 종족 또는 종교를 이유로 증오 또는 차별을 사주하는 등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경우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이 교수는 "국제적으로 홀로코스트 부인과 증오·차별을 사주하는 '증오적 표현'을 동일한 맥락에서 취급하는 국가가 많다"며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증오적 언동의 규제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 경우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아니라 선동죄 유형으로 취급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밝혔다.

◆한국 '방어적 민주주의' 미흡 = 정치적 극단주의를 중립적으로 규제하지 못하는 법체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이 교수는 "독일은 좌·우극단을 동시에 규제하는 법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방어적 민주주의'라고 한다"며 "한국은 좌익을 규제하는 광범위한 법제를 가지고 있지만 우익, 극우를 규제하는 논리는 법체제 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현실을 감안할 때 특정한 역사관을 처벌하기보다 공통의 인식지평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일정한 유형의 차별적 언동, 증오적 언동에 대해서는 경중을 가려서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