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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론에 대한 반론
게시물ID : phil_67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훈이아빠
추천 : 0
조회수 : 842회
댓글수 : 252개
등록시간 : 2013/09/24 09:17:11
신론에 관한 것은 철학의 가장 큰 화두입니다.
신론은 서양철학에서 가장 크게 오랜기간 동안 다루어져 왔던 문제이고 또한 이 문제의 답에 의해 너무 많은 것들이 변화됩니다.
 
저는 물릭학도도 아니며 생물학도도 아니며 단지 철학을 즐기는 사람으로써 이신론에 대한 반론을 잠시 제기 할까 합니다.
 
하버드 철학자의 대부인 힐러리 퍼트넘은 '나는 철저한 무신론자이자 믿는 사람이었다. 단지 이 둘을 내 속에서 독립적으로 유지했을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래의 포스태크님의 글을 빌려쓰자면 폴 디랙이라는 물리학자도 '현재의 지식으로는 자연이 설계되었다고 대답하는 수 밖에 없다.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상황을 두고 신은 굉장히 높은 차원의 수학자이고 고등 수학을 사용해 우주를 설계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라도 말합니다.
 
후자는 전형적 지적설계 이원론이며 전자는 철학적 이원론으로 명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두 발언의 공통점을 찾겠습니다. 공통점은 신을 긍정해야 되는 이유입니다.
전자는 이성의 한계에 대한 언급이며, 후자는 과학의 한계에 대한 언급입니다. 즉 이 두 언급은 공통점은 한계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과거의 신의 존재가 필요했던 이유를 살펴보면 그것 또한 인간 한계에 의한 반작용으로써의 신의 존재의 필요입니다. 이 부분이 포스테크님이 언급하신 고대인들의 신의 접근법과 유사하다는 부분입니다.
 
위 두 언급을 이신론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칸트 이후로 이원론은 박살났다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겠습니다. 그 접근법은 있다 없다 다르다.입니다.
유신론은 있다이며, 무신론은 없다입니다. 그리고 이신론은 다르다.입니다.
결국 이신론은 있지만 기존 유신론의 있다와 다른 있다로 이해 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있다'는 어떤 의미입니까? 그냥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고 최고 원인존재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토마스 아퀴나스의 제 1원인 논증처럼
최초의 한번의 움직임만 있다는 것입니다.
 
제1워인론의 가장 막강한 반론인 지적설계자에 대한 원인론을 대입해 봅니다. 퍼트넘의 신, 디랙의 신의 원인은 누구입니까? 결국 신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또 형이상학적 난제에 빠져 버립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가정하는 순간 우리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맞이해야하고 또 그 주제와 씨름을 해야 합니다.
이신론은 종교행위가 없기에 유신론이 아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조소하고 싶습니다.
종교행위는 그 신을 찾으려 자신의 의식에 신이란 허상을 가져오는 순간 부터 시작 됩니다.
 
포르메테우스란 영화가 있습니다.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신이란 존재를 찾기 위해 우주선에 오르는 그 순간 종교를 갖는 다는 것이죠.
이신론과 유신론은 정말 한 끗 차이입니다. 그래서 이신론을 작은 유신론이라고도 합니다.
이신론이 신의 존재를 자신의 존재와 떨어진 존재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자신의 사고에 가져오는 순간 그는 유신론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신과 자신과의 상호소통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디랙이 자신의 과락적 한계를 알고 망삭적 신의 존재를 가져와 자신의 한계를 이해하는 순간 그는 유신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적 설계란 신을 믿는 종교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유추과정을 변증이라 합니다. 변증이란 사물과 대상이 내재하는 모순을 발견하고 그 모순에 집중함으로써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요즘 기독교 변증이란 말이 있는데 이 기독교 변증이 이 이신론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유신론이지만 종교를 자기고 있지 않다라는 말은 기독교 변증에 의하면 너도 우리와 다 똑같다라는 빌미를 주는 것입니다.
 
저는 종교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망상의 동물입니다. 개인적 이상도 개인이 신앙하는 신도 모두 망상일 뿐입니다.
망상은 우리 생할에 활력을 주는 촉매역활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망상이 반드시 존재하니 너도 나의 망상을 따라라는 아니라고 봅니다.
나에게는 나의 망상을 따를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 이야기의 설명으로 니체를 가져오지 않아도 될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신론을 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유신론과 다름이 없습니다. 반대로 이신론을 논리적 관점에서 본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이신론은 변증에 의해 새로운 신의 존재가 새롭게 인식될 경우 가집니다. 인식이 없는 이신론은 그냥 말장난입니다.
다음 단계를 위한 초석일 뿐입니다.
 
나는 신을 믿는다. 하지만 종교가 없다. 그 신은 의미없는 신입니다. 신이라 불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변증이 말하고 있듯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신에 대한 해석을 위한 초석일 뿐입니다.
결국 말장난입니다.
 
나는 이(유)신론자이지만 종교가 없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그래서 뭐? 유신론의 신과 다르다는 이야기냐? 아니면 신이 있다는 것이냐? 
다르다는 결국 너도 유신론자란 이야기이고, 그냥 있기만 하다는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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