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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록무서운. '불효자'
게시물ID : panic_678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xpiation
추천 : 34
조회수 : 5054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4/05/15 22:52:46
 
 "동정심 같은 거 갖지마. 절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듣지마. 정말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할거야."
 
 인경이는 몇 번이나 당부했어요. 지금부터 하는 얘기에 절대로 동정심이나 불쌍하다는 생각을 갖지말라고 했어요.그렇지 않으면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고 했어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자 인경이는 정말 기분 나쁜 이야기일 거라고 전해주었어요. 불쾌한 이야기니까 듣기싫으면 듣지 말라고 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나가지 않았어요. 인경이는 차분히 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어요.
 
 
 
 인경이가 9살 때 일이었어요. 인경이네 반 친구들 중에 왕따를 당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친구들은 그 애를 '싸이코' 라고 불렀어요. 또래 아이들보다 떨어지는 지능에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 아이였어요. 특히 친구들이 놀 때면 몰래 다가와 나쁜 장난을 치고 그랬어요.
 
 "아아! 하지마. 저리 가라고 싸이코야!"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할 때면은 뒤에 다가와 손으로 밀어 넘어뜨렸어요.
 
 "야 이 싸이코야! 내 옷 물어내~ 으앙~"
 
 점심시간에 밥먹는 친구들에게는 숟가락에 국물을 퍼서 뿌려댔어요.
 
 이렇게 나쁜 장난을 서슴치 않는 아이였어요. 친구들은 모두 그 애를 싫어했어요. 그래서 담임선생님에게 몇 번이나 일러바쳤지만 선생님은 그저 짖궃은 아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크게 혼내지는 않았어요.
 반 아이들 모두가 그 애를 '싸이코' 라고 불렀지만 인경이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 애를 볼 때면 왠지 모를 가여움이 느껴졌어요. 친구들은 인경이도 자기들과 같이 그 애를 '싸이코' 라고 불러주기를 바랐어요.
 인경이는 그 아이와는 정반대로 친구들 모두가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항상 예쁜 말만 골라하고, 친구들을 배려해줄 줄 아는 아이였어요. 이따금씩 친구들이 '싸이코' 라고 부를 때 마다 정색하면서 혼냈어요.
 
 "싸이코라고 부르지마. 그래도 우리 친구야."
 
 인경이가 친구들을 혼내주고 그 아이에게 다가갈 때 마다, 그 애는 항상 도망쳤어요. 인경이는 그 애와 친해지고 싶었어요. 나쁜 아이라고만 보기에는 무언가 슬픔이 서려있는 아이였어요. 
 인경이는 사실 그 아이와 1학년 때 부터 같은 반이었어요. 1학년 때부터 유별난 행동 때문에 반 친구들은 물론, 같은 학년 친구들 모두 그 아이를 싫어했어요. 하지만 1학년 때도, 2학년 때도 그 아이는 항상 학교 선행상과 효행상을 받았어요. 인경이는 그 때 부터 그 아이에게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먼저 다가가 인사도 하고 말도 걸어보려고 했지만 도망칠 뿐이었어요. 정말 이상한 아이였어요. 다른 친구들에게는 나쁜 짓을 하고 다니지만 인경이에게는 장난은 커녕 말 한 번 나누지 않았어요.
 
 
 
 
 어느 가을 운동회 날이었어요. 인경이는 들뜬 마음으로 엄마 손을 잡고 학교 근처에 있는 문구점으로 갔어요. 평소 갖고 싶었던 인형 놀이 세트를 사러 가는 길이었어요. 인경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문구점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에는 어떤 할머니와 그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는 레고 장난감을 들고 있었어요. 학교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들뜬 표정이었어요. 인경이는 조심히 엄마 뒤에 몸을 가리고 할머니와 아이를 지켜보았어요.
 
 "저... 그래서 얼마죠?"
 
 할머니가 문구점 아저씨에게 물었어요.
 
 "5천원이에요."
 
 아저씨가 대답하자, 할머니는 늘어난 바지자락을 잡고 주머니에서 봉지를 꺼냈어요. 봉지안에는 10원짜리, 50원짜리가 들어있었어요. 간혹 100원짜리도 몇 개 보였어요. 할머니는 근처에 있는 책상에 동전들을 부었어요. 그리고 천천히 동전들을 세기 시작했어요. 문구점 아저씨는 그 모습을 보고 난처했지만 조용히 기다려주었어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던 아이는 들떠있던 표정이 지워졌어요.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어요.
 
 한참의 시간이 지났어요. 할머니는 동전을 쥔 손을 바라보다 문구점 아저씨를 쳐다보았어요.
 
 "저어, 죄송한데. 지금 3260원밖에 없어서... 나머지는 다음에 제가 꼭 갖다드릴게요."
 
 할머니가 사정하자, 아저씨는 입술을 꼭 깨물었어요.
 
 "아... 저, 그게."
 
 할머니는 고개를 숙였어요.
 
 "다음에, 다음에 꼭 갖다드릴게요. 우리 손주가 이거 갖고싶다고 해서."
 
 할머니는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렸어요. 아저씨는 그러지말라고 손을 흔들었어요.
 
 "아,아니에요 할머니. 그냥 그 돈에 드릴게요. 이러시지 마세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핑 돌았어요. 아이는 손에 있던 레고 장난감을 옆에다 툭- 던져놓고 할머니를 밀쳐내며 나갔어요. 할머니의 손에서 동전들이 떨어졌어요.
 
 달그락-
 
 동전들이 바닥에 떨어져 굴러나갔어요. 10원짜리 하나가 인경이와 엄마 발 앞으로 굴러왔어요. 인경이는 조용히 동전을 집어들었어요. 그 때 문구점 밖으로 나가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어요.
 
 "저어..."
 
 인경이가 머뭇거리며 말했어요. 하지만 아이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손으로 급히 가리고 나갔어요. 인경이와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멍하니 서 있었어요. 문구점은 안은 조용함만 가득했어요. 할머니가 허둥지둥 떨어진 동전들을 주우고 있을 뿐이었어요.
 
 
 
 
 다음날. 학교에 온 인경이는 어제 일을 생각했어요. 할머니와 같이 문구점에 온 아이의 모습을요.
 
 '할머니 손에서 자랐나 보다...'
 
 또 다시 가여움이 느껴졌어요.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 것도, 매 년 선행상과 효행상을 받는 것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 시작했어요. 너무나 가여웠어요. 그리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린 마음에 친구들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했어요.
 
 "우와 진짜? 진짜 완전 나쁜 애다!"
 
 인경이의 예상과 다르게 친구들은 모두 그 아이를 욕하기 시작했어요.
 
 "어어, 아니야. 내가 하고싶은 말은..."
 
 인경이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꺼냈어요. 하지만 친구들은 그런 인경이의 말을 무시하고 저마다 얘기했어요.
 
 "맞아. 진짜 나쁘다. 할머니한테 그래도 되는거야?"
 
 "싸이코인줄만 알았는데... 진짜 못됐어! 불효자야! 불효자!"
 
 친구들은 싸이코니, 불효자니 험담을 늘어놓았어요. 인경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만하라고 소리쳤지만 친구들은 듣지 않았어요.
 
 마침 교실문을 열고 그 아이가 들어왔어요.
 
 "어? 싸이코다! 불효자 싸이코가 왔다!"
 
 친구들이 아이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어요.그러자 아이는 당황해서 어버버거렸어요. 친구들의 놀림이 계속되자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어요.
순간 아이는 인경이와 눈이 마주쳤어요.
 
 '아, 아니야...'
 
 인경이는 무언의 눈빛을 보냈어요. 하지만 아이의 눈은 경멸감으로 가득찼어요. 그리고 조용히 자리로 갔어요.
 
 그 이후로 아이는 나쁜 장난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어요. 하지만 친구들은 매일 '불효자 싸이코' 라고 놀렸어요. 아이가 매 번 느끼는 슬픔만큼 인경이도 죄책감이 늘어갔어요. 괜한 말을 꺼냈다고 몇 번이고 집에서 후회했어요. 하지만 달라지는건 없었어요. '불효자 싸이코' 라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인경이는 가슴 한 쪽이 뜨끔거렸어요.
 
 '아아. 나때문이야...'
 
 친구들도 인경이에게 '불효자 싸이코' 라고 놀리자고 말했어요. 하지만 인경이는 그럴 수 없었어요. 친구들에게 하지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어요. 애시당초 그런 별명이 생긴게 인경이 자기 때문이었어요. 인경이는 하루하루 그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그 사건 이후로 학교 선행상과 효행상은 아이의 손을 떠나 다른 아이들에게 넘어갔어요. 사실 선행상과 효행상은 선생님들이 모두 입을 모아 그 아이에게 주는 거였어요. 어렸을 적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정신적으로 이상해졌다는 할머니의 말을 들었었거든요. 그리고 부모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랐던 아이였기에 상으로나마 무언가 해주고 싶었었어요. 하지만 학교내에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들이 계속 나오자 결국은 다른 아이들에게 주기로 결정했어요.
 
 그렇게 한창 재밌게 친구들과 보내고 즐거운 추억만을 간직해야할 초등학교 시절은, 아이와 인경이에게는 깊은 어둠과 슬픔의 시간이었어요.
 
 
 
 
*
 수십 년이 지났어요. 인경이는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기위해 집을 나왔어요. 20여년도 더 지난 시간이라 친구들 얼굴 모두 까마득하지만 왠지 모를 기대감에 설렜어요. 다들 잘 살고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그 앳된 얼굴들이 얼마나 변했을지 호기심이 들기도 했어요.
 동창회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한 인경이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에게 반가움을 표했어요.
 
 "하하, 진짜 오랜만이야."
 
 어느새 아기엄마가 되어있는 친구. 어렸을 때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화가' 라고 불렸는데 지금은 웹툰 작가가 된 친구. 하도 말라서 '뼈다귀' 라고 불렀는데 어느새 훤칠한 키에 적당히 다듬어진 몸으로 나타난 친구. 예뻐지고 싶다고 엄마 화장을 하고 학교에 왔다 '삐에로' 라고 놀림을 받았던 친구도 모두 모였어요. 어린 아이가 아닌 어른으로서 모두가 모였어요.
 
 '우리 이제 어른이구나...'
 
 인경이는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일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풋- 하고 웃음이 나왔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동창들과 즐거운 분위게 취했어요.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즈음, 친구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어요.
 
 "야, 근데 걔는 안왔대?"
 
 "누구?"
 
 "그 있잖아. 우리가 막 싸이코라고 불렀던 애..."
 
 입을 연 친구는 말 끝을 흐렸어요. '싸이코' 친구 얘기가 나오자 그 곳에 있던 친구들 모두 조용해졌어요.
 
 "어. 안 온 것 같아."
 
 "그 때... 우리가 너무 심했지?"
 
 "응... 그렇지. 너무 어렸어 그 때는."
 
 여기저기서 조그마한 반성의 소리가 나왔어요.
 
 "그냥 재밌으니까 놀렸던건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진짜 못났다 우리."
 
 저마다 입안에서 웅얼거렸어요. 그러자 한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지금 그 애는 여기 안 왔지만. 뒤늦게라도 우리 사과하자. '불효자 싸이코' 라고 불렀던거 정말 미안하다 친구야."
 
 말을 끝낸 친구는 술잔을 들었어요.
 
 "앞으로 '불효자 싸이코' 라는 말은 없는거다! 그런데 그 애 이름이 뭐였지?"
 
 친구는 주위를 둘러보며 대답을 요구했어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애의 이름을 말하지 못했어요.
 
 "뭐 어때. 아무튼 그 애를 위해서 건배하자. 건배!"
 
 그제서야 친구들은 웃으면서 술잔을 들었어요. 그 모습을 보던 인경이는 말 없이 물을 들이 삼켰어요.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정리를 하고 자리를 떠났어요. 가끔씩 서로 연락하자며 포옹하는 친구도 보였고, 술 먹고 상기된 얼굴로 어릴 적 다툼을 다시 꺼내 싸우는 친구들도 보였어요. 술을 마시지 않은 인경이는 마지막까지 남아 친구들을 배웅해주었어요.
 
 '하아. 이제 겨우 마무리가 됐나?'
 
 인경이는 마지막 친구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주차장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차를 타려고 주머니를 뒤적이고 있었는데, 가게 앞에서 서성이는 어떤 남자가 보였어요. 가로등 불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낡은 옷차림. 그리고 꾀죄죄한 얼굴. 낯이 익었어요.
 
 '혹시?'
 
 인경이는 차 키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주차장을 나와 가게로 향했어요. 그 때까지도 남자는 계속 문 앞에 서있었어요.
 
 "너, 혹시?"
 
 인경이가 말을 꺼내자 남자는 돌아봤어요. 평범한 아저씨 얼굴이었지만 분명하게 남아있었어요. 그 때 그 아이의 모습이요.
 
 "맞구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인경이는 웃으며 남자의 어깨를 쳤어요.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머뭇거렸어요.
 
 "일찍 오지! 다들 재밌게 놀다가 갔는데."
 
 인경이가 밝게 말했지만 남자는 그저 말 없이 서 있었어요. 인경이는 순간 생각했어요. 그 때 일 때문에 자기에게 경계심을 보이는게 아닐까 하고요. 인경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의 손을 잡았어요.
 
 "일단 들어가자. 우리 둘만이라도 동창회하자."
 
 
 
 
 
 가게로 들어가 간단한 식사를 시키고 둘은 말 없이 기다렸어요. 인경이는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어요. 어지럽게 정리된 머리며, 누런 이빨이며, 낡은 옷차림이며. 어느 것 하나 성한 모습이 없었어요. 인경이는 무어라 말을 꺼낼까 몇 번이고 생각했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했어요.
 
 "저기..."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어요.
 
 "어? 으응. 왜?"
 
 인경이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어요.
 
 "어릴 때. 너는 항상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어? 어, 어. 그랬었나. 하하."
 
 남자는 고개를 들고 인경이를 바라보았어요.
 
 "다른 애들은 나한테 '불효자 싸이코' 라고 했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어."
 
 남자는 웃으며 말했어요. 기분 나쁘게 섬뜩한 웃음이었어요. 인경이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어요. 하지만 태연한 척 말을 꺼냈어요.
 
 "에이. 아니야. 안 그래도 아까 동창회 때 애들이 다 그랬어. 그 때 너 놀렸던거 엄청 후회한다고."
 
 "그...그래?"
 
 남자가 다시 고개를 숙이자 인경이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어요.
 
 "그나저나 연락 한 번 안하고. 그간 어떻게 지낸거야?"
 
 "구... 궁금해?"
 
 남자가 다시 고개를 들었어요. 누런 이빨을 들어낸 남자의 모습에 인경이는 몇 번이나 구역질이 올라왔어요. 하지만 무릎을 꼬집으며 태연한 척 하려 애썼어요.
 
 "으, 응. 어, 어떻게 지낸거야?"
 
 "그래. 너라면... 다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남자는 물 컵을 들고 한 번에 다 마셨어요. 그리고 입을 열었어요.
 
 "정말 하루하루가 힘들었어. 누가 말했었지.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가난이 죄가 아니라고? 아니야. 가난은 죄야! 남들보다 덜 아끼고, 남들보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았는데. 결국 내게 돌아오는건 가난이었어... 흐흑."
 
 남자는 울먹였어요.
 
 "중학교 가서도, 고등학교 가서도 싸이코라는 소리를 계속 들었어... 내가 정신적으로 좀 이상하다는 이유만으로 날 그렇게! 그렇게... 흐흑."
 
 남자는 겨우 참았던 눈물을 쏟았어요. 인경이는 마음이 약해졌어요. 그리고 남자의 말에 더욱 더 귀를 기울였어요.
 
 "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수학여행 한 번 못가봤어... 선생님한테 수학여행 못가겠다고 말하는데... 돈 없어서 못 간다는 그 말이 그렇게도 힘들더라... 아니, 애초에 선생님들은 날 보는 눈빛이 ' 넌 그냥 가난뱅이 싸이코다' 이런 눈빛이었어..."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해."
 
 인경이는 남자를 달래주기 위해 말했어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어렸을 때, 너네들이 날 뭐라 불렀어. '불효자 싸이코'? 그게 얼마나 상처가 됐는지 알아? 내가... 내가... 우리 할머니랑... 흑- 진짜, 내가. 흐흑."
 
 인경이는 안절부절 못했어요. 그저 테이블 위의 컵을 손으로 만지작 댈 뿐이었어요.
 
 "우리 할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말해줄까? 내가 고등학교 때 였어. 우리 할머니는 그 때부터 심한 치매가 오셨어. 학교 갔다가 돌아오면 방 구석에 가서는 '아기야. 우리 손주보고 인사하렴.' 이러면서! 손으로 아기를 안은 시늉을 하곤 했어. 너무 무서웠어. 하루도 아니고 매 번 그랬으니까. 그래서 난 친척집에서 살게됐고, 고모가 대신 할머니를 돌봐주었어.
 그리고 어느 날이었어. 주말마다 낮에 할머니를 보러 가곤 했는데 전화가 오더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방에서 누워있다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현관문 앞에 앉아 있다가 돌아가셨다고 했어... 흑. 고모가 말했어... 할머니가 현관문 앞에 앉아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대... 이제 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걸 알고 내 얼굴 보고싶어서 현관문에 나와 있었다고 했어. 그런데.. 흐흐흑-"
 
 남자는 눈물 어린 눈빛으로 인경이를 보며 말을 이어갔어요.
 
 " 현관문에 앉아있던 할머니한테 고모가 말을했어. 손주 지금 빨리 오라고 전화할까 하고 여쭈었어... 그런데, 할머니는...흐흑.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거 싫어하니까 깨우지 말라고! 이따가 낮에 올거니까 그냥 기다리겠다고... 그렇게 기다리셨대. 흐흑... 그냥 기다리셨대!"
 
 남자는 테이블을 내리쳤어요. 그리고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뜯었어요.
 
 "맞아... 난 불효자야. 할머니의 임종을 옆에서 지켜드리지도 못하고! 불효자 싸이코야... 불효자 싸이코가 맞아... 흑."
 
 인경이는 일어나서 남자의 어깨를 두드려줬어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
 
 그렇게 한동안 인경이는 남자의 어깨를 감싸주었어요. 엄마와 아이같은 모습이였어요.
 
 
 
 
 어느정도 진정되었는지 남자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어요.
 
 "미안해.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꼴이나 보이고."
 
 "아니야. 괜찮아."
 
 남자는 훌쩍이는 코를 막으며 얘기를 이어갔어요.
 
 "그래서 나 속죄하고 있어. 여기 옆에 '정다운 마을' 알지? 그 곳에 혼자사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 그래서 매일 찾아가서 옆에 있어드리고 있어. 할머니의 임종을 옆에서 지켜주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그 빚을 갚아야지."
 
 남자의 말에 인경이는 기분이 묘했어요.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매일 혼자사시는 분들 옆을 지켜드린다는 그 말. 자기때문에 '불효자 싸이코' 라는 별명을 듣게 된 남자에 대한 죄책감은 그저 시간에 지워내기 바빴는데 말이에요. 인경이는 남자에게 너무나 미안했어요.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고 남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어요.
 
 "너무 늦었다. 나 가봐야겠어."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아, 응. 약속이라도 있나봐?"
 
 "약속이라면 약속이지... 오늘 저녁에 그 마을에 계신 할머니 집에 가기로 했거든."
 
 인경이는 뭐라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남자에게 그 마을까지 바래다 준다고 말했어요. 남자는 괜찮다고 연신 사양했지만 인경이는 이렇게나마 해야 마음속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았어요.
 
 
 
 
*
 '정다운 마을' 에 도착했어요. 차에서 내린 남자는 인경이에게 감사하다고 전했어요.
 
 "내 얘기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아니야. 얼른 들어가봐. 할머니 기다리시겠네."
 
 남자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어요. 인경이는 먹먹한 가슴을 두드리고 차에 기대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빽뺵히 별들로 가득차 환하게 빛나고 있었어요. 그러다 문득 호기심이 들었어요. 나쁜 짓이라는걸 알지만 남자가 들어갔던 집에 몰래 뒤따라 갔어요.
 
 온갖 벌레들이 나돌아다니는 마당 너머로 작은 창문이 보였어요. 거기서 얕은 불빛이 새어나왔어요. 인경이는 조심조심 창문 가까이 갔어요. 방 안에는 어떤 할머니가 누워 계셨어요. 남자는 그 옆에 앉은 체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어요.
 
 "할머니. 몸은 어떠세요? 괜찮아요?"
 
 남자가 할머니의 손을 잡았어요. 할머니는 힘겹게 고개를 돌리고는 남자를 향해 바라보았어요.
 
 "매일매일 찾아오는데. 몸이 이러시면 어떡해요..."
 
 남자의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어요. 남자는 할머니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어요.
 
 "으아으, 으으..."
 
 할머니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남자가 잡은 손을 뿌리치려 했어요. 그 모습을 본 인경이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할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어요. 무언가 말하려는 듯 바르르 떨고 있는 입술.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팔.
 
 "할머니... 할머니? 왜 제 마음을 몰라주세요."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져갔어요.  그럴수록 할머니의 팔도 부르르 떨렸어요. 조용히 지켜보던 인경이는 왠지 모르게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어요. 할머니의 얼굴에서 왠지 모를 두려움이 느껴졌어요. 힘없이 깜빡이는 눈동자에 눈물이 고여있었어요.
 
 "할머니... 흐. 이제 가셔야죠, 네?"
 
 남자의 목소리에 가벼운 웃음기가 느껴졌어요. 인경이는 새어나오는 신음을 손으로 막았어요.
 
 "할머니... 할머니..."
 
 "으으...으으으으..."
 
 남자가 계속해서 할머니를 불렀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알 수 없는 신음만 내뱉을 뿐이었어요. 그 신음이 인경이의 귀에는 흐느낌처럼 들렸어요.
 
 '하아...뭐, 뭐야... 뭐야...'
 
 인경이는 아까보다 더 빠르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어요. 심장이 너무나 크게 뛰어서 방 안의 남자도 그 소리를 들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조용한 시간이 흐르더니,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어요. 인경이는 조심히 창문으로부터 몸을 뗐어요. 왠지 빨리 이 곳을 벗어나야겠다는 두려움이 들었어요. 그 때 남자가 크게 외쳤어요.
 
 "죽어어어!!! 죽으라고-!!!"
 
 "으으으으...으으..."
 
 "나 우리 할머니한테 빚진게 있다고! 그러니까... 지금 할머니가 빨리 죽어야 돼. 나 없을 때 죽지마... 지금 내가 옆에 있을 때 죽어야, 내가 우리 할머니 임종을 못 지켜드린 빚을 갚는거라고!"
 
 "으으으... 으으으으..."
 
 
 탁-
 
 인경이가 다급하게 집을 나오면서 천장에 걸려있던 그릇을 떨어뜨렸어요. 인경이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뛰기 시작했어요.
 
 '세...세상에...!'
 
 인경이는 죽을 힘을 다해 집 밖으로 나왔어요. 그 때 집 안에서 쿵쾅- 하는 소리와 남자가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인경이는 부들부들 거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들었어요. 열쇠 구멍에 몇 번이나 부딪히며 넣으려고 했어요. 그러다 조급한 마음에 열쇠를 떨어뜨렸어요. 뛰어오는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어요.
 
 "하악.... 흐윽..."
 
 인경이는 새어나오는 울음을 꾸역꾸역 삼키며 열쇠를 주웠어요. 그리고 서둘러 열쇠를 꽂고 차 문을 열었어요. 그 순간 집 밖으로 남자가 나왔어요. 남자는 인경이를 발견하더니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어요.
 
 "기, 기다려!!! 기다리라고! 말하지마!  "
 
 인경이는 숨을 헐떡대며 시동을 걸고 급히 출발했어요. 남자가 차 창문에 달라붙은 채 쫓아왔어요. 인경이는 더욱 힘껏 밟았어요. 겨우 골목길을 벗어나 도로로 나가는 와중에도 남자는 뒤에서 계속해서 쫓아왔어요. 인경이는 소름끼치게 밀려오는 울음을 참으며 중얼거렸어요.
 
 "흐흐윽... 흑. 불효자. 싸이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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