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세상은 완전히 미쳐버린 것일까?’
태현은 창문에 매달린 사람들의 새까만 머리통이 바둑판 위의 바둑알 같다 생각했다.
창문마다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내밀고 있는 수백명의 사람들은 모두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때는 5월, 따사로운 햇살이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잎이 풍성하게 자란 가로수들은 미풍에 잔가지를 이리저리 흔들고, 티끌하나 없이 새파란 하늘은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것 마냥 아름다웠다. 하지만 세상에 흐르는 건 오로지 정적, 그리고 훅 숨을 들이 삼키는 긴장감 뿐. 눈을 돌려 모처럼 좋은 날씨를 즐기고, 풍경에 감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추락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눈에 서린 광기가 태현에게까지 보이는 듯했다. 족히 수십미터는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묘한 광경에 태현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순간 건물의 1층에서 사고순간을 목격한 젊은 남자가 “오마이갓!!”하고 외치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폴짝폴짝 뛰기 시작하자, 몰려든 사람들이 그를 따라다니며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땠어요?”
“고통스러워보였나요?”
“아니면 행복해보였나요?”
마치 다들 기자라도 된 마냥 직설적인 질문을 퍼붓던 사람들 중에 젊은 여자가 뛰는 남자의 어깨를 탁 붙잡아 세웠다.
“당신도 뛰어내릴 건가요?”
그녀는 겉보기에 성격파탄자는 아닌 듯했다. 파스텔 톤 원피스에 얇은 가디건을 걸친 얌전한 인상의 여자였다. 묻는 목소리는 조금 수줍은 듯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걸 두려워하는 듯도 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꼭 물어봐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엿보였다. 젊은 남자는 잠깐 멍하니 여자를 응시했다. 그리곤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네, 그럼요!!” 하고 호기롭게 외쳤다.
“저는 내일 뛰어내릴 겁니다! 내일 이 시간, 이 자리에서요!”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사람들의 박수와 환대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밖에 있던 사람들도 그를 따라 건물로 들어갔다.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흥미진진하게 이 사태를 관망하던 사람들도 머리를 쏙 집어넣고 창문을 탁, 닫아버렸다. 아마 그들도 젊은 남자를 보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고 있겠지.
태현은 벤치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추락한 사람은 중년 남자였다. 도심의 빌딩 숲에 가려진 어느 회사의 사무실에서 일하다 뛰쳐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고지식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그는 손때 묻은 서류가방을 들고, 빳빳하게 다림질한 와이셔츠에 보라빛 넥타이를 둘렀다. 아니, 푸른색 계열의 넥타이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금은 피에 물들어 제 색깔을 알아보기 힘드니까. 그의 손에는 검은색의 가죽 서류가방이 꼭 쥐어져 있었고, 신발은 한쪽만 신고 있었다. 신발을 신고있지 않은 발에는 회색 양말이 신겨져 있다. 다른 발에서 날아간 낡은 구두는 도로 위에 나뒹굴고 있다. 추락 당시의 충격의 여파로 튕겨나간 모양이다. 구두 주위로 유리파편이 모자이크 조각처럼 빼곡이 흩어져 있었다. 남자는 모자이크 작품의 주인공처럼 차의 지붕 위에 양팔을 펼치고 누워있었다. 건물 바로 옆에 대어놓은 SUV 위였다. 호일처럼 콰직 구겨진 차체 위에는 몸과 다리가, 와이퍼 위로는 팔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는 잠들어있는 것마냥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리파편이 박힌 입꼬리는 위로 조금 말려올라가 있었고, 때문에 기분좋은 꿈을 꾸며 미소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조금 전에 그의 죽음을 목격한 수많은 이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떨어진 사람을 저렇게 모른척할 수 있지?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조차 보이지 않은채,
내일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남자에게만 광기어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돌 가수 마냥 자기 목숨을 내걸고 군중을 이끌고 사라진 젊은 남자의 의기양양한 표정이,
찌그러진 차체 위에 누워있는 중년남자의 얼굴 위로 오버랩된다.
세상 모든 생물에게 공평한 햇살은, 산산조각 난 중년남자의 머리 위에도 뽀얗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햇살은 태현의 머리 위에도 스며들고 있었다. 이를 깨닫자 태현은 울고 싶어졌다.
“뭐해? 여기 앉아서.”
지애였다.
그녀는 웨이브진 긴 머리카락을 귓뒤로 쓸어 넘기면서 태현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사가지고 온 테이크아웃 커피컵을 태현에게 내밀었다.
“아....왔어?”
태현의 잠긴 목소리를 들은 지애가 턱을 옆으로 기울였다. 그녀도 조금전의 추락 순간을 목격한 모양이었다.
“뭐하러 일찍 나와서 기다리다 흉한 꼴 보냐.”
“저사람 신고해야 되는데......”
“누가 했겠지.”
지애의 목소리는 태평하다기보다 무심했다. 그렇다고 그녀의 성격이 무심한 것은 아니다. 최근들어 ‘자살자’가 급격하게 늘었기 때문에 무심해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자살자를 목격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두가지로 나뉜다. 구경거리로 삼거나, 본보기로 삼거나.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구경하던 사람들과, 조금 전 자살을 예고하며 뛰어다니던 남자처럼. 요즘 사람 중에 태현처럼 충격을 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웨에에엥-!
저 멀리 언덕길에서 구급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지애는 “거봐”하며 자기 말이 맞았음을 강조했다.
태현은 목을 바짝 조르고 있는 넥타이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서 느슨하게 만들었다. 지애는 그 옆에서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었다.
태현은 지애의 옆모습을 보고, 길 건너에 정차하는 구급차를 보았다. 손 안의 차가운 아이스커피는 마음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그가 기대고 싶은 온기마저 앗아가는 듯했다. 가슴이 서걱서걱 부서져 내린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그들은 스스로 이번 생을 끝내기로 결심했고,
다음번의 생을 기대하며 무서운 일을 계획했을 터였다.
겉보기에는 예전과 똑같이 복작대며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풍경은,
사실은 아주 살풍경했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도시를 평화로워 보이게끔 포장하고 있을 뿐.
태현은 최초로 자신이 환생했음을 ‘증언’한 남자를 떠올렸다.
그 사람의 그 터무니없는 허풍이 이렇게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기다린 것처럼. 평범한 내 이웃, 나의 동생, 또는 나의 어머니가 사실은 '환생'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이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삶의 고단함에 찌든 직장인들과 자영업자들이 가장 먼저 시작했을른지 모른다. 그 다음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춘기 여고생, 군대 내에서 폭력을 당하고 있는 군인, 가정주부.... 금세 각 계층의 사람들이 최초의 남자를 좇아가기 시작했다.
불과 3년만에 그는 신화적인 인물이 되었고, 어느단체에서는 그를 신격화시키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제 세상은 완전히 미쳐버린 거다.
이런게 종말이 아니면 뭐가 종말일까.
그들이 앉아있는 벤치 옆의 디지털랜드의 커다란 브라운관에서 뉴스화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근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자살자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나는 행인은 몇 명 있었지만 뉴스를 주의 깊게 시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재‘를 버리는 사람들’이란 자막이 큼직하게 화면 한구석을 차지하며,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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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셨는지 모르겠는데 '환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부터 쓰고싶던 이야기라서
잘써졌으면 좋겠어요. 근데 벌써부터 어려운 것 같네요ㅠㅠ
어느덧 새벽이네요.
공포 가득한 밤 되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