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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명언68 - 모든 게 노래 / 김중혁<음악에 관한 소설가의 산문>
게시물ID : lovestory_679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좋아헤
추천 : 1
조회수 : 69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07 19:05:21

출판일 13.09.10
읽은날 14.08.07

26p. 
지나치게 자신을 믿고 지나치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는 선생님을, 상대방을 위한다는 구실로 상대방의 의견을 전혀 들어보지 않는 선생님을 나는 신뢰할 수 없다.

38p.
내가 좋아하는 보컬은 대부분 '무심한 목소리'다. 이게 참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감정이 없다깁돠는, 옳고 그른 것이나 좋고 나쁜 것에 경계를 두지 않는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감정을 애써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던져두고 멀리서 바라보는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39p.
목소리를 내고, 목소리를 듣는 과정은 참 의미심장하다. 나는 정확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내 목소리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상대방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듣는 내 목소리를 정확한 내 목소리라고 보기도 힘들다. 그 소리 역시 공기 중에서 왜곡된 것이니까. 진짜(라는 게 있다면) 목소리는 내가 내는 목소리와 상대방이 듣는 목소리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방식 역시 비슷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진짜 나는 어디쯤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나에 가까울까, 아니면 상대방이 생각하는 나에 가까울까. 어쩌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차이를 좁혀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110p.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1인칭의 세계'에 푹 빠져 있었다. 세계의 중심에 내가 있었고, 무엇보다 '나'가 중요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향하는 길이 중요했다. 지금은 조금 바뀌었다. 요즘의 내 세계는 '3인칭의 세계'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은 무덤덤해졌고,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1인칭의 장점이 있고, 3인칭의 장점이 있다. 1인칭의 세계는 열정적이지만 배려가 부족하고, 3인칭의 세계는 공정하지만 솔직함이 부족하다. 1인칭과 3인칭을 넘나드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134p.
모든 작가는 각각 하나의 완결된 세계다. 생각과 문체와 문장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이다. 그 세계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지만 그 세계에다 등수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작가들이 있다. 수많은 작가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작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만큼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설이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면, 그래서 누군가 밤새 들려주기만 하면 되는 거라면 세상에는 단 한명의 작가로 충분할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와 레이먼드 챈들러와 스티븐 킹과 미야베 미유키는 모두 다른 글을 쓰지만 세상에는 그 모든 세계가 필요하다.

147p.
노래를 듣다가 울컥,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누구에게나 그런 노래가 있을 거다. 듣는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되는, 갑자기 한숨을 쉬게 되고 어느 순간 가슴이 아릿해지는 노래가 있을 것이다. 한번 눈물을 쏙 빼고 나면, 들을 때마다 슬픔은 반복된다. 오랜 시간 동안 노래에 익숙해지면 슬픔은 사라지지만, 몇 년이 지난 후 그 노래를 들으면 슬픔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150p.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뜻이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나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뜻이다. 혼자 차지하던 세계에 타인을 들어오게 하는 것이고, 타인이 잘 살 수 있게 내 영토를 줄이는 것이다. 내가 자꾸만 작아지니까 슬픈 거고, 그래서 자꾸만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날 사랑하느냐고, 날 좋아하느냐고' 묻게 된다.

152p.
외로움이라는 것은 아마도 사라지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감정일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라면 절대 알 수 없을 감정.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영토를 줄여본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을 감정. 함께하는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결코 그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 바로 외로움일 것이다.

162p.
우리는 어쩌다 만나게 됐을까. 평행선이었던 두 사람은 어째서 교차점을 만들게 됐을까. 둘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직선을 포기하면 혹은 궤도를 수정하면 우연은 생기게 되어 있지만, 서로를 마주 보는 내내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는, 정말, 어쩌다가 만나게 된 것일까. 우주의 역사를 생각하고 지구의 역사를 생각하고 모든 것의 역사를 생각해도 이 우연은 참으로 놀랍다. 교차점은 불편하고 관계는 지옥이지만 우리는 매번 우연에게서 받은 선물 포장을 뜯어보고 싶은 마음에 내일을 또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72p.
사람들의 성격이 모두 다르다는 게 놀라울 때가 있다. 각각 고유한 퇴적층이 되어 유일한 삶과 생각들을 쌓아올리며 자신만의 성격을 완성했을 테니 성격이 다르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문득 생각하면 놀랍다. 동물들도 그럴까. 같은 동물이라고 해도 태어난 시간이 다르고 자라온 동네가 다르니 자신만의 성격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수많은 동물 애니메이션 때문에 동물의 입장을 제대로 상상하기 힘들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다. 같은 종의 고양이라도, 같은 종의 개라도 성격과 취향과 철학이 다를 것 같다.

175p.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로는 다양하다. 얼굴이나 표정이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몸매 때문일 수도 있고,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사소한 동작에(예를 들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손목의 각도가 아름답다든지)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단어'와 '목소리'에 가장 민감한 것 같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떤 단어를 사용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하는가에 따라 호감도가 달라진다. 좋은 단어로 빚어진 경쾌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좋게 느껴진다.
좋은 목소리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목청을 타고날 수는 있지만 좋은 목소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수많은 대화 속에서 자신만의 단어를 골라내는 시간이 필요하고, 자신만의 음역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을 어딘가에 비유하는 걸 무척 싫어하지만 목소리에 대해 할 말이 많지 않은 관계로 인간을 (내 멋대로 지금 눈 앞에 있는) 도자기에 비유해보자면, 도자기의 표면 굴곡은 외모에, 도자기의 내부 굴곡은 목소리에 비유할 수 있겠다. 세월이라는 원심력을 이용하여 뭉툭한 외모를 미끈하게 만들어나가듯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목소리 역시 세월의 원심력으로 다듬어나가야 한다. 외모와 목소리의 두께가 일정해야 하고, 모든 면이 고루고루 균형 잡혀 있어야 한다. 나이가 더 들면, 쓸데없는 말을 다 버리고 (쓸데없는 비유도 하지 않고) 꼭 필요한 단어와 그 단어를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는 목소리만 남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207p.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까. 과거의 우리가 응답할 수 있다면 미래의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1989년에 나가 있는 20세 김중혁 통신원, 응답하세요." "네, 잘 들립니다. 43세 김중혁 씨, 2013년에 저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나요?" "음, 음, 뭐랄까, 그러니까……." "별로인가 보네요." "아니에요. 제법 잘 늙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거긴 어때요? 스무 살, 힘들죠?" "여기도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우리 햄내요." "그래요."

209p.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최후의 가방을 꾸리면서 짐 싸기의 효율을 평가해본다.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이 꼭 있다. 들고 갔지만 읽지 않은 책이 있고, 챙겨 갔지만 쓰지 않은 약들이 있고(이건 다행이고), 꾸역꾸역 넣었지만 한 번도 입지 않은 스웨터가 있고 ,넉넉하게 준비해 간 탓에 입지 않은 속옷이 있다. 비효율적인 짐 싸기다. 트렁크 속에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을 다시 넣다 보면 효율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입지 않은 스웨터, 입지 않은 속옷, 보지 않은 책도 트렁크에 필요하다. 사무실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씩 꼭 있듯, 예비 명단에 포함되어 긴 여행길에 올즤만 잔디도 밟아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선수들이 있듯, 전자 제품과 함께 들어 있는 수많은 전원 어댑터 중 한 번도 쓰지 않고 버리는 종류의 것이 있듯, 때로는 부피를 줄일 수 없는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짐이 커지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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