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2013년이 아닌 1987년 대통령 선거때 지금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정당에 의해 저질러진부정선거에 관한 글입니다.
!!그 장한 젊은이들과 함께하며
12. 16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나와 본당공동체의 자세는 “우리가 특정정당과 후보를 지지할수 없지만,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져야 하며 부정선거는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극히 자명했다.
많은 본당 교우들이 ‘공정선거감시단’교육에 참여했고, 투개표 참관인으로 나섰다. 또 각 반상회를 통하려 공정선거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토론토록 했다. 구로지역을 맡은 대학생들은 선거 일주일 전부터 우리 본당에와서 잠도 못 자면서 활동을 준비하였는데, 선거 당일에는 신자들, 특히 주부들이 열띤 호응을 하여 기쁜 마음으로 식사와 음료수 등을 마련하여 주었다. 신앙과 사회생활의 일치를 찾으려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날 구로구청에서 부재자 투표함을 옮기려다가 적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느낀 충격은 실로 컸다. 수도 서울에서 투표를 위해 줄을 서 있는 구로갑구의 중심지인 구청마당을 가로 질러 투표함을 빼돌렸다면 다른 곳은 어떠했겠는가? 이번 선거의 기본적인 공명서마저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16일 저녁 10시경, 사태의 진행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구청구내에 들어갔다가 주위의 요청에 의해 주민대표의 일원이 되었다. 대책위원들과 각 단체 대표들은 ‘선 진상규명, 후 개표’를 요구하였으며, 선거관리위원장과 이 사건에 직접 관련된 사무장의 조직적인 부정에 대한 고백과 자인을 받기 위해 지리한 추궁과 해명의 싸움을 계속했다.
17일 낮 동안 사건소식을 듣고 몰려든 시민들에게 이 사실을 계속 알리는 한편, 압수된 투표함을 언제 어떻게 개봉하여 부정여부를 확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검토하였다. 시민, 학생들은 구로을구가 조직적인 부정선거의 구체적 사례로 여론을 집중시킨 후 문제의 부재자 투표함을 합법적 절차에 의해 진실을 밝히려는 소박한 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꿈은 결국 18일 새벽 먼 동이 틀 무렵 엄청난 공권력의 개입으로 무참히 꺾이고 부정선거의 진상은 은폐되고 말았다. 농성진압은 너무도 잔인해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아직도 확인 안된 소문들이 난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7일 저녁부터 경찰과 학생, 시민 사이의 대치가 계속되면서 학생들의 안전보장이 걱정되었다. 난 한 사목자로서, 구로지역으 한 시민으로서 진실은 어디까지나 밝혀져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싸움에 참가한 시민, 학생들과 본당 청년들에 대한 연대와 책임감 때문에 사건현장에 머물러 수습을 위해 중간역할을 자처했으나 경찰은 나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진압은 갑작스레 너무도 빨리 닥쳐왔다. 구로경찰서장은 진압 5분전까지 진압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지만, 결구 공수표였다. 쏘지 말라는 주님들의 항의는 최루탄 소리에 묻혀갔고 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개를 숙인채 끌려갔다. 원래 구석진 방으로 연행되었기 때문에 진압 정황은 잘 모르지만 수많은 희생자가 있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명색이 지역대표라는 책임을 지고 사건중심에 있다가 함께 있던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는 와중에 나만 훈방되어 나오니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다. 그 젊은 사람들과 함께하려 했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폭력적인 진압을 막았어야 했는데… 나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젊은이들이 지니고 있는 순수함, 정의감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달리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이에 분노하고 싸우며 자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너그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진압 때 옥상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 양원태(서울대 경제학과 2년 제적)은 “곧 회복될 겁니다.”라고 웃으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우리 본당 신자인 그의 어머니는 양군이 한번도 구두를 사 신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어떻게 구두를 신을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한다. 이 아들의 옆에서 간호하며 오히려 이런 장한 아들을 대견하게 여기고 계시던 어머님의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통곡하시는 마리아의 다른 분신이었다.
구요비 신부 (구로 1동 주임)
(1987년 대통령 부정선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인터넷으로 '구로구청 부정선거'를 검색해 보세요.)
이 당시 저는 초등학생이었지만 지금도 그 당시 청년들과 붙잡혀서 감옥에 계시던 신부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2013년 부정선거와 신부님들 기사를 보면서 다시 기억이 나서 인터넷에서 예전에 신부님께서 쓰신 글을 찾아 올렸습니다.
새누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당이름만 바꿔가면서 더욱 꼼꼼하게 발전해왔을뿐입니다. 1987년에 구로구청의 한 사무실에서 위조지폐 찍듯 투표용지에 하나하나 도장을 찍어가며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면 26여년이 지난 지금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모든 기관을 총동원하여 온라인상에서 부정선거를 저질렀습니다.
지금 신부님들의 박근혜 대통령 하야 요구가 지난친 것입니까?
개신교 목사님들의 박근혜 지지발언은 괜찮고, 천주교 신부님들의 박근혜 하야 발언은 왜 안 됩니까? 개신교의 정치개입은 환영하고, 천주교 신부님들의 정치개입은 안됩니까?
대한문에서 쌍용해고자들과 함께 하고(이제는 더이상대한문 미사를 안 드리지만 대한문에서 해고자들을 위해 200일이 넘게 매일 미사를 드리는 동안 단 1명도 자살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강정마을에서, 밀양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위의 활동들도 모두 종교의 정치 개입이 아닙니까? 부정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정책을 집행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정말 힘없는 백성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의 역할을 해준 이들이 누구입니까?
종교지도자들이 불의를 보고도 외면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의 종으로서 올바른 행동일까요?
몇달전 어느 성직자께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후 미사 강론중에 본인 어머니 평생 소원이 박근혜 대통령되는거여서 어머니 소원 들어드리기 위해 박근혜 지지 운동을 하고 다녔다는 강론을 들으면서 참 많은 허탈감에 시달렸습니다.
지금도 박근혜를 좋아하는 분들, 정확히는 박정희를 좋아하는 분들의 이유는 단하나입니다. 힘들고 가난한 나라를 살린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전태일 평전’을 추천해 드립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대한민국을 발전시킨 것은 박정희 단 한사람이 아닌 수백만의 전태일과 같은 어려운 환경에서 묵묵히 일했던 국민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