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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이동국', 부활을 기대합니다
게시물ID : humorstory_683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여비
추천 : 10
조회수 : 23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04/07/11 00:40:13
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에서 한국은 5:0으로 무참히 대패했다.그러나 그 경기에서 그나마 위안거리가 된 것은 바로 후반전이 종료될 무렵 투입되면서 네덜란드의 골문에 위협적인 슛팅을 날렸던 이동국이란 선수의 활약상이었다.그리고 그는 월드컵이 끝난 후 K리그에서 맹활약하며 앞으로 4년뒤에 개막될 한일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성장할 특급선수였다. 

그러나 2000년에 그는 시련을 맞기 시작했다.바로 몰지각한 일부 언론과 부상의 공격을 맞았던 것이다.먼저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부진때문에 언론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스포츠XX을 비롯한 일부 언론은 이동국을 주워먹기만 하려는 게으른 선수로 몰아세웠다.그러나 이동국은 당시 부상때문에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언론은 진실을 외면한채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이동국을 한국 축구의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이동국의 플레이를 소극적으로 만들게 버리는 계기가 되고 만다.올림픽 이후 이동국은 만신창이의 몸으로 부상투혼을 발휘하여 아시안컵에서 중요한 순간에 득점하면서 득점왕을 먹었지만 부상이 심각해졌고 그후 치료를 받고 베르더 브레멘으로 진출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결국 방출되고 만다.정상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 무려 6개월간을 혹사당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는 2002년까지 계속되었다.여전히 언론은 이동국을 맹비난했고 이에 맞대응하기 위해 그는 정상이 아닌 몸으로 뛰었지만 얻은것은 부상뿐이었다.그 상태에서는 정상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결국 영광의 히딩크호에 탈락하고 마는 시련을 겪게 되었다.그후 명예회복을 위해 아시안게임에 출전했지만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해 그는 입대하여 상무소속으로 K리그에서 뛰면서 부활하기 시작했다.27경기에 출전하여 11골을 기록했다.특급스트라이커의 조건인 한경기당 0.4골을 약간 넘은 0.408골을 기록하면서 완벽하게 부활했다.그리고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몸싸움 역시 많이 개선되었다. 나는 올스타전때 이동국의 플레이를 직접 관전했다.비록 그 경기에서 이동국은 골을 넣지 못했지만 여전히 건재한 예리한 골감각은 물론 잦은 부상 이후 상실한 강한 투지와 빨라진 스피드를 보여주었다.그 경기에서 나는 이동국의 부활 가능성을 믿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에 이동국에게 '이동국 화이팅!'이라고 외쳤다.185CM의 신장과 80KG의 당당한 체격을 가지면서 날카로운 센스를 가진 스트라이커는 유럽에서도 보기 힘들다. 이동국이 바로 그런 선수다.그는 상무 입대 직전까지 일부 몰지각한 스포츠 신문 기자의 공격과 잦은 부상으로 인해 실력이 저하되었고 그의 명성 역시 잊혀져 갔다.그러나 그는 작년 이후 부활하고 있다.황선홍은 선수생활 은퇴후 그를 한국을 대표할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지목하면서 그를 믿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본프레레 체제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나이가 25인 그는 부활의 불씨를 힘겹게 살려냈다.이제 우리는 이동국을 주워먹기만 하는 게으른 선수로 낙인 찍어서는 안된다.오히려 그에게 따뜻한 격려와 용기를 주어야 한다.우리는 지금 그를 두번 죽이지 말고 두번 살려야 한다.우리나라의 골 결정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네이버에서 읽고 퍼왔습니다.이동국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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