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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고마운 내 오유 친구들아..
게시물ID : gomin_9220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jwkxkgnrks
추천 : 13
조회수 : 1066회
댓글수 : 202개
등록시간 : 2013/12/01 02:17:42


아 제목만 썼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서
제목만 써 놓고 펑펑 울다가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려..

허락도 없이 말을 놓는거 먼저 양해 구할게..
누구보다 오랜친구처럼 느껴지는 오유사람들에게
츄리닝입고 공원에서 만나는 친구처럼
그렇게 말을 걸어 보고 싶어서
미안해..

지루한 내 얘기지만 그래도
덤덤하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



오유 고게에 글 참 많이 올렸었는데
친구들아.

매번 왜 울어요? 왜그래요? 우리 얘기좀 할래요? 라고 따뜻하게 물어와줘도
난 내 얘기를 꺼내지 못했었어..

위로해주길 바라면서도 내 얘기는 안해주는 이기적인 친구였지
그래서 오늘은 내가 마음 받은 만큼
나도 내 마음 열어놔 보려고 해..



스물일곱, 아니 곧 스물여덟로 가고있는 여자야.
수많은 자해흔적과, 수많은 자살시도 경험을 가진.

태어날때부터 선천적 기형인 심장을 가지고 태어나서
다섯살즈음 수술을 했고..

할머니가 내 옆에서 늘 같이 잠자리를 지켜주며
주무시다가도 흠짓 하시며 내 심장에 귀를 대고
혹시 잘못되어서 죽었을까봐..
내 심장이 뛰는걸 확인하시고서야
눈물 훔치며 안도하시는걸 느끼며 자던 어린시절.

아마 난 그때부터 
내가 힘든걸 숨겨오기 시작했을거야.

아파도 무슨일이 생겨도 힘들어도 말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거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울게 하는것 걱정시키게 하는게 너무 싫었어.


난 아직도 소리내서 우는 방법을 모르겠어..
어쩐지 울고싶을땐 인상찡그리고 이 악물고 참다가..
그래도 어쩔수 없이 눈물이 흐르고 오열하게 될땐
끄윽끄윽 하고 숨넘어 가는 소리만 내더라고..


수술 직후 부모님은 이혼하시고
난 동생과 엄마와는 떨어져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나 이렇게 넷이서 살았어.

난 책을 많이 읽는 외골수였던것 같아.
지금도 무척 책을 좋아하는 편이고 말이야..

이어폰과 책으로 나를 무장시키고 다가오는 친구들을 스스로 단절시키는
그냥 그런 아이었어.
난 초등학교때 선생님의 교탁에 하나 붙인 책상. 거기서 수업 듣는 학생이었어
수술때문에 체육수업도 해본적이 없구..


머리가 깨치기 시작할때부터 
죽음에 대한 글을 무척 많이 썼던것 같아.

초등학교 4학년때 쓴 일기장을 봤는데 말이야..
"수면"은 죽음에 대한 예비연습이라고. 사람들은 매일 죽고 다시살아난다고.
그렇게 썼더라고.



친구들아, 지금 생각해보면 책을 많이 읽는다는건 꼭 좋은건 아닌것 같아.
생각이 많다는건 절때 좋은게 아닌것 같아.

책장에 꽂힌 책의 갯수가 내 지식량을 대변하는거라 생각했고
스스로 우월감에 도취해서
또 얼마나 타인들을 스스로 무시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다.




그리고 열네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마지막 그 순간에 아빠가 나를 찾았는데 난 무서워서 가보지 못했어.
그냥.. 어린마음에 시체란게 무서웠어. 아니 곧 시체가 될..
내 생에 가장 후회하고 가장 슬펐던 일중 하나일거야..

오열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들을 보면서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그래도 난 울지 못했어
어떻게 울어야 할지 그땐 정말 몰랐어..


그리고 열네살. 그때부터 자해가 시작됐어.

첫 자해의 기억은
모두들 아버지 장례식장에 있고 나는 잠시 집으로 왔을때
순간적으로 부엌에 들어가 식칼로 내 손가락을 자르려고 한것.


그 후로 마음이 아플때마다 자해를 해 왔어.

열네살때부터 스물일곱 지금까지.
몇번이나 그엇는지 나도 모르겠다..

난 그때 내가 우는 법을 몰라서 그러는줄 상상도 못했거든
그냥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져서 한거야..


눈치채지 못하게
아프단 말조차 꺼내지 않고
매일 같이 잠드는 가족들조차 모르게 그렇게.



난 친구가 없었어

중학교때 신나게 음악얘길 같이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떤 학교의 설문지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적으란 란에다가 
그친구 이름을 적었거든


그리고 쉬는시간 다른반이던 그 친구한테 달려가서
나 네 이름 썼어! 너도 나 적었어?? 라고 말했을때

그 친구가 
아니 대체 왜 날적었어? 난 너 안적었는데..
라면서 보내던 눈빛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어 ㅎ



난 고등학교를 3개월 다니고 자퇴했어. 하고 싶은게 있었거든..
엘리트셨던 할아버지와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

그렇게 자퇴하고, 가족을 적대시하며 갖혀서 공부할때
몰래 할아버지가 "검정고시기출문제집" 이라는 책을 
내 책상에 올려 놓고 갔을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런데 말이야..


17살. 
내가 할아버지와 심하게 싸우고 말 한마디 안하고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던 그때 말이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차마 내 합격을 기쁘게 알려 드리기도 전에 말이야.

할아버지 묘비에 내 합격증을 올려 놨을때의 기분은
지금도 표현하질 못하겠다.


사실은 말이야..
난 할아버지를 정말 많이 사랑했거든 정말 많이 존경했고..

머리에 글만찬 혼자 콧대 높은 사춘기의 아이가 말이야.
여태 " 난 절때 지난 실패는 후회하지 않아, 반성할수 있다면 그건 후회가 아니야. "
라고 당당하고 오만하게 굴던 아이가 말이야.


그때 처음으로,
아 반성의 여지조차 없는 후회도 실패도 있을수 있구나
하고 깨달았지

그리고 다른사람들이 고등학교 다닐 시절 내내
집에만 있었어. 히키코모리 처럼.

그리고 그때부터 검은옷만 입었어. 지금까지..
남들이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모두들 웃으며 호상이라고 하는게
너무 싫었거든.

그냥 혼자 죄책감에 위안이라고 해도
자기만족일지 모르겠지만.
내 나름의 애도의 방식이었단다..



18살, 19살, 두번의 수능과 대학교 입학.
처음 진짜 친구를 만나고 잠시 자해를 멈출수 있었어.

잠시 숨어서 좌절의 시간을 지나서..
사람들에게 고개숙일수 있는 방법도 배우고.
조금이라도 말을 꺼내며 커뮤니케이션을 할수 있는 방법을 배웠지
대학교때 정말 즐거웠던것 같다.


그리고 스물넷,
우물안 개구리가 멋도 모르며 시작한 사업
보기 좋게 망했지.

망한것에 대한 충격보다. 
앞서 말한 친구와의 동업이었는데
그 친구의 칼이 너무 아팠어

재산은 제로가 됐고
온갖 법적인 가해자로 몰리고

무엇보다 목숨같았던 친구의 그 배신이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어


일어나려고 할때마다 밟혔어.
모든 문제를 다 제외하고도
채무로 치면 내가 당연히 가해자니까.

처음 자살시도를 했어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말이야
금방 건져내더라고.. 얼마나 허무했는지..

그리고 난 숨었어. 사라져버렸어
정말 견딜수가 없어서.
"사장님"의 기간에 웃고 떠들고 유쾌한 사람인줄 알던
친구들 모두 그때 버렸어.

게다가 동업자와 너무 오랜기간에 함께 친구였고
함께 아는 사람들이 많았기때문에.
24살. 그 이전의 모든 사람들과 칼같이 인연을 잘라냇어.

휴대폰도 뺏겼어
어자피 연락할수도 없었지만..


한달동안.
모든 일을 그만두고, 
술밖에 먹질 못했어

차마 집에 들어갈수도 없었고
몰래 집에 들어가 다락방에서 떨면서 자고
할머니가 일어나시기 전에 나가서
길거리를 배회하고 
진짜 배가 너무 배가 고파서.. 
교통카드가 있잖아. 그땐 현금환급이 없었으니까

5000원 정도가 있더라고, 
교통카드로 구매할수 있는 음료 자판기 알지?
찾았는데 없더라구..

5000원,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 안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빼먹고
다시 내리고.
그렇게 배채웠다 음료 한캔에


집에 있는 동전을 끌어 모아
못할짓이지만 몰래 할머니 지갑에 손도 대가면서
돈생기면 너무 씻고 싶어서 목욕탕 가서 씻고..
남은돈으론 술과 담배를 사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 뛰어내릴 생각만 했지.
이제 발만 떼면돼.
발만.

그 한달동안 스무번을 넘게 올라갔어

같은 동네 친한 형이 말이야.
발견하고 나 얼마나 고생한줄 몰라

만취한 상태인 나를 때려가며 택시태워서
모텔에 가둬 재워놓고 가고
그렇게 강제로 막고.
밥 억지로 먹이고.
정신차리라고 뺨도 맞고
몇개의 내 가방속의 자해용 칼을 버리고

진짜 고마웠어
많이 의지하고 고마웠어
사실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잠도 못자가며 나를 그렇게 막아줬던게 너무 고마웠어.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아무도 모르게 했으니까.
막을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장소가 모텔이어서였을까.
그사람이 남자이고 내가 여자여서 였을까.
아니면 기집애가 겁도 없이 만취한채로 모텔따라간 내가 멍청한걸까.
내가 너무 의지하고 믿어서였을까.


그날도 만취하고 끌려 내려오고
모텔.
정신차리니 난 하지말라고 소리치고 있었고
그렇게 당했어.


근데 더 병신같은건 뭔줄 알아?

그래도 나 살려 준거 고마워서
그날 이후 난 방항하지않았어
그냥 가만히 있었어.

근데 말이야.. 솔찍히 토할것 같았어.

그래도 가만히 있었어.
진짜 고생 많이 했으니까 그사람도.



술에서 깨고 잠에서 깨면
환청에 시달렸어
왜 아직 살아있지? 라고.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올 일말의 틈도 없이.

또 그곳에 올라가고
아래를 바라보는데
기괴하게 피투성이인 내가
나를 보면서 기어올라오더라


그 후로 정신이 돌아오더라.
피씨방에서 하루 열여섯시간 열일곱시간씩 일하면서
다시 컴퓨터 살돈, 고시원 살돈을 만들었어.


지금 내가 지내는 고시원.
지금 내가 쓰는 컴퓨터.


정신잡을게 필요 했어.
너무 내가 나를 잡을수가 없었거든.
객관적인 상황도 물론 나빴지만
그렇게 목숨같던 동업자와, 나를 살려주려고 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나니..

나를 잡을게 필요 했어.



그리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자해를 멈추고 사랑하고 나를 잡고
내 생에 이래도 될까 싶을만큼 행복하고 너무 행복했어.


정말 미안하게도 
나쁜 상태의 나를 하필 그럴때 만나서
너무너무 피해만 줘서 미안한 사람이야.

존재만으로도 내가 슈퍼가해자인데도
아니, 감정적으로가 아니라
진짜 물질적 정신적 객관적으로 난 진짜 쓰레기같은 상대였어.
그래도 사랑해서 이기적이라 내가 잡고있었어

여전히 사랑하는데 사실.
그것조차도 너무 미안해질정도로
지금은 그사람에게
혐오감 드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나.

피해망상이라 해도 어쩔수가 없네..
나같은 가해자가 피해망상에 시달리는건 당연한 벌이라고 생각하니까.



친구야.
근데 사실 난 그 점이 견딜수가 없어.




그 아이가 사라지고.
또 다시 난 이전 상태로 돌아가버렸지

그리고 그때부터 오유 고게에 
울다울다 토해내듯이 한마디씩남겼어


울어도 돼냐고 묻기도 하고
또 높은곳에 올라갔다가 내려왔을때 
나 지금 자도 괜찮은거냐고 묻기도 하고.

그냥 힘내라고 한마디 해달라고 해달라기도 하고



사실 처음 고게에 글 남겼을때 말이야.
어그로꾼이라고 욕듣고 싶어서..
죽겠다고 글 남겼는데 말이야..

난 날 아는 사람들에겐 말 못하고
그때도 여전히 숨기기에만 급급하고
혹 내 상태 알아서 걱정하는 기미라도 보일새면
혹시 내가 잘못되었을때 슬프지 않게
오히려 냉정하고 못되게 구는것만 했지..


그런데 오유사람들은
신고해줬어.

정말 많은 경찰들과 조우했고
내가 뛰어내리려고 갈때마다 많은 경찰차를 보게 되었고

심지어 어떤분은
나를 모르는데도 땅끝에서 땅끝까지 직접 말리러 와주더라
뛰어내리기 직전에 온몸으로 나랑 싸워가면서 말이야.
어떤분은 물질적으로 도움도 줬어.

고게에서 친목한것 물질적인 도움받은것.
이곳의 룰이 아닌점 너무 잘 알지만. 
너무 미안해..



난 사실 익명이라
어자피 내가 진짜 죽어도 모를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그냥 말 못하는 답답함 해소해보겠다는 이기적인 맘
토해내듯 남긴거였는데말이야.

경찰 덕분에 일종의 아웃팅이 되어버려서
사촌동생뿐이지만 가족이 알게 되었고.


재수하면서 자기도 힘든상황인데도
멍청한 언니 챙기느라
틈틈히 시간내서 또 안먹는 나 밥 챙겨주고
자해하면 몰래 피닦고 나 잘때
마음아파해 가면서 내 팔 치료해 주고가고

사촌동생한테도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하면
시크한 이녀석이 
웃으면서 그럼 친족,동성결혼 가능한 나라 가서 결혼하자고 임자ㅋ
막 그런다....ㅋ



그렇게 최선을 다해 주면서 
나 하나 살리겠다고
그렇게 고생하는거

도저히 배신할수가 없더라


너무 고마워서
너무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난 그냥 너무 말을 못하는 멍청이니까
주변엔 말 한마디 못 꺼내는 멍청이니까..
익명으로나마 
어자피 무시 될거라 생각하고
토해낸 그 글에
그렇게 최선을 다해 준것이
너무 벅차고 고마워서.

고맙다고 오유에 글을 남기고.



친구들아.
난 너무 고마웠어

처음으로, 제대로 정신과도 정신보건센터도 가게 해줬던것 다 진심으로 너무 고맙다.
내가 아파하는 방식이 잘못된것이라는것.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몰라



엄마,
내가 사랑하는 엄마.
난 24살때 엄마가 내 생모가 아닌걸 처음 들었어요
그때의 충격은 잊질 못해요..

우리 같이 살았던 기간도 짧고
나를 낳아준것도 아니지만
내가 엄마를 엄마로 그리워하고 사랑한 기간은 진짜잖아.

누군가 생모가 궁금하지않냐그러면 지금은 단호히 궁금하지 않아.
내겐 엄마가 있으니까.

몇주전..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라는 공문서를 작성해야 할때
참 비참하고 집에 와서 많이 울었어.

사실 엄마가 책을 낼때
미안한데 네 얘긴 없어.. 라고 내게 미안해 하면서 양해 구할때도
괜찮아 하면서도 비참했어.







있잖아 친구야.

사실 난 또
어제까지도 몇번이고 투신을 위해 높은곳으로 갔다 내려온지 몰라.



멘탈이 약한건 내가 정말 쓰레기라 그렇지만.
조심조심 살아보겠다고 케어해던 멘탈이


단 한마디에 와르르 깨져 버리더라고.

딱 한마디였어.


아니, 정확히 단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너만 없으면 돼" 라는 뉘앙스의 말이었어.
사실이었어. 난 누구에게나 폐끼치는 존재더라고 정말 객관적으로.


그순간 유리멘탈이 와장창 깨져 버리더라고.

그말을 내게 한 사람에 대한 비난은 부디 거둬주길 바랄게.
지금 내 멘탈이라면
어느 누가,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말했더라도

난 지금처럼 깨져버렸을거야.



친구야 사실.
지금 상태는 그래.


내가 사실 얼마나 오유친구들을 의지하는지 표현할수 있으면 좋을텐데.


사실 난 여기서도 이제말을 가려야해.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볼 가능성이 있어서 말이야..
만일 나를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부디 개인적인 연락으로라도.. 댓글으로라도 티내주지 않길 바래요.. 꼭 부탁해요.


울어도 돼냐고 물었을때
울어도 괜찮다고 토닥거려준것 마음깊이 너무 고마웠어.
죽지 말라고 걱정해준것
몇번이고 나를 진짜 끌어내려와준것

내가 말까지 놓으면서 친구라고 불러도 용서해줄래?




매번.. 왜? 냐고 물었을때 대답 못해줬던것 미안해...
일방적인 위안만 바란것도 너무 미안해..

나 사실 고게에 글 쓰지말라고
몇번이나 경고 받았거든.

그리고 나 이젠 알잖아..
진짜 맘속얘기 걱정할까봐 못꺼내는거..




오늘 이렇게 지루한 장문의 내 말을 꺼내게 된거 말야

나 이만큼 힘들었어요. 혹은..
나 지금 이렇게힘드니까 죽을거야 또 말려줘.

그거 절때 아니야 친구야.


오늘도 많은 말을 빼버리고 글을 쓴건
참 고질병이다.
난 진짜 나쁜앤데 내가 나쁘단건 다 빼고 쓰는거 보니
나도 진짜 나쁜애다..



벌써 나흘째 나는 투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나는 또 미친듯이 자해를 시작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오유 친구들에게
진심인 내 진짜 얘기 꺼내면서 마음 잡으려고.



사실 미안하게도
난 여전히 내 문제는 나 아니면 누구도 답을 내릴수 없고 이겨낼수 없다고 생각해.

누군가의 조언이나 위로가 도움이 될순있지만
그래도 내가 나를 이기는건
오로지 나 혼자만이 해결할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


하지만, 여태 내가 얼마나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았는지
내가 그 부분에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고

뛰어내리기 전 오유친구들이 내게 해줬던 말들
생각에 얼마나 망설이는지.
꼭 말해 주고 싶어서
장문의 글을 남겨.




벌써 두시간을 글을 썼으니
굉장히 긴글일테고 지루한 글일테지만

이까지 읽어줘서 다시 한번 너무 감사해.


오늘도 난 또 난간위에 올라설지 모르지만.
걱정마. 


나는 내 오유친구들을 마음속에 넣고

이 악물고 버티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내 아픔에 내 스스로 무릎꿇지 않게.
내가 내 죄책감에서 도망가지 않게.


많이 고맙고 사랑해서 오늘은 용기내서 글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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