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주, 헛된 바람
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
예고없이
그대와 마주치고 싶다
그대가
처음
내 안에 들어왔을 때의
그 예고없음처럼.
천상병,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나태주, 멀리
내가 한숨 쉬고 있을 때
저도 한숨 쉬고 있으리
꽃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울고 있을 때
저도 울고 있으리
달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그리운 마음일 때
저도 그리운 마음이리
별을 보며 생각한다.
너는 지금 거기
나는 지금 여기.
나희덕, 천장호에서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 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 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 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황인숙, 꿈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