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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명언84-비행운/김애란<두근두근 내인생 작가의 소설집>
게시물ID : lovestory_684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좋아헤
추천 : 1
조회수 : 17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29 18:31:02

출판일 12.07.18
읽은날 14.08.29

17p. 너의 여름은 어떠니
선배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쉽게 판단하거나 충고하지 않았고, 범박하고 산뜻한 농담도 잘 해줬다. 상대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으면서 위로하는 방법을 알았다랄까. 얼마 뒤 나는 자연스럽게 선배가 주도하는 시 모임에 들어갔다. 선배는 내 글이 좋다고 했다. 나는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나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불 때라고 준 돈으로 술 사 먹고, 꽁꽁 언 방에서 파카만 입고 자도 행복했다. 왜냐하면 그날은 선배가 처음으로 내게 뭘 사달라고 한 날이었으니까. 

133p.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어디. 언제나 '어디'가 중요하다. 그걸 알아야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있다고. 그녀는 '짜이날'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라 했다. 그 말이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줄 거라고. 그다음, 그 곳에 어떻게 갈지는 당신이 정하면 된다고.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 잃은 나그네에게 친절하다고. 그러니 외지에 나가선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할 줄 아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용대가 기억하는 것보다는 투박한 한국어 문장으로 설명해줬다. 용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말을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그런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 그럴 자격이 있는 사내로 여겨지곤 했다. '이 여자, 언제나 내겐 좀 과분하다'는 느낌이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정성으로 이야기하면 서로 이해 못 할 게 없다는, 소통에 관한 한 순진할 정도의 믿음이 있던 여자. 일도 참 잘했지만 공부를 했다면 더 좋았을 젊은 아내. 처음, 손바닥에 땀을 닦고 악수를 건네자, 세상에서 제일 작은 부족의 인사법을 존중하듯, 웃으며 따라 한 북쪽 여자. 웃을 땐 하얗게 웃고 죽을 땐 까맣게 죽어간 여자.

163p.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간혹 혀를 차며 충고하려 드는 이도 있었다. 그 여자,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지 않았냐. 비자도 없고 돈도 없고 갈 데 없고 병드니까 너한테 붙은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헤어져라. 용대는 그들에게 바보 취급당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했지만, 자꾸 듣다 보니 사실인 것 같았다. 한 날 용대는 술을 억병으로 마신 뒤 명화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아내의 끊임없는 신음과 뒤척임에 지쳐가던 때였다. 너 진짜 몰랐냐. 다 알고 시집온 거 아니냐. 그게 아니면 니가 나 같은 놈을 왜 만났겠냐.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냐. 뒤지려면 혼자 뒤지지 누구 인생을 조지려고 그러냐. 눈이 희번덕해져 '씨발년아' '쌍년아' 상욕도 서슴지 않았다. 명화는 아무 저항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순한 아이처럼 무기력하게 용대의 바짓가랑이에 토를 했다. 용대는 눈이 뒤집어져 "이게 정말?" 하고 한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주저앉아 아이처럼 꺼억꺼억 울기 시작했다. 불명확한 발음으로 씨발년아, 미친년아, 개같은년아를 반복하며. 자길 속인 여자. 이용한 여자. 끝까지 순진한 척하는 여자. 이 나쁜 여자를, 살리고 싶다, 생각하면서.

165p.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얼마 후, 명화는 그에게 녹음테이프를 한가득 내밀었다. 한 문장씩 자기가 직접 녹음한 거라고 했다. 억지로 하지말고 노래처럼 들으라고. 그러다 보면 귀에 익어 따라 하게 될 거라고. 이걸 다 외면 백 문장 정도는 술술 읊을 수 있을 거라 했다. 용대는 명화와의 데이트에 요긴하겠다 싶어 테이프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뿐이었다. 결혼 후, 용대는 그런 게 있었단 사실도 잊고, 테이프를 검은 봉지에 담아 처박아뒀다. 그런데 아내가 세상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현듯 그게 눈에 들어온 거였다. 얼마 뒤 용대는 다시 회사에 나갔다. 그리고 출근할 때마다 집에 있는 테이프를 한 개씩 가지고 나왔다.
...
그런데 그가 고른 첫번째 테이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런스 니 헌 까오씽."
용대는 무심하게 따라 했다.
"런스 니 헌 까오씽."
이어, 명화가 한국말로 말했다.
"당신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용대도 그 말을 따라 했다.
"당신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테이프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명화가 한마디 하면 용대가 한마디 하고, 용대가 서투르게 몇 문장 외면 명화가 똑같이 답해주는 식이었다. 용대는 아무렇지 않게 반갑다는 말을 계속 따라 했다. 그러곤 테이프 한 면이 다 돌아갔을 즈음 갑자기 핸들에 머리를 박은 채 대로변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197p. 하루의 축
기옥 씨는 얼마 전, 아들과 사소한 말싸움을 한 뒤 면회를 2주째 안 간 상태였다. 그래 놓고 마음이 좋지 않아 잠자리에서 매일 뒤척였는데…… 다시 찾아갈까 싶으면서도 이번만은 아들이 먼저 연락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정말로 오늘 영웅이에게서 편지가 온 거였다. 초등학교에서 숙제로 내준 어버이날 카드를 제외하곤 기옥 씨도 처음 받아 보는 거였다. 기옥 씨는 A4지를 가로로 두 번 접은 모양의 종이를 조심스레 펼쳤다. 그러곤 벌써부터 답장은 뭐라고 쓰나 걱정했다. 연필 잡아본 지 하도 오래돼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건 기옥 씨가 아들에게 편지 대신 신문기사를 오려 보내는 이유이기도 했다. 기옥 씨는 편지지를 활짝 펴 설레는 맘으로 안에 담긴 내용을 바라봤다. 몇십 개의 줄이 그어진 하얀 편지지 위엔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단 한 개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엄마, 사식 좀.'
…… 순간 기옥 씨는 바보같이 종이를 뒤집어봤다. 혹시 뒷면에라도 뭐가 더 쓰여 있지 않나 확인해본 거였다. 하지만 편지지 뒤에도, 앞에도 다른 내용은 없었다. 잘 계시냐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없었다. 편지지 맨 윗줄에 적힌 엄마 사식 좀, 그 한마디 뿐이었다.

293p. 서른
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니까 제가 겪은 모든 일을 거쳐갔겠죠? 어떤 건 극복도 했을까요? 때로는 추억이 되는 것도 있을까요?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는데. 다른 친구들은 무언가 됐거나 되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저 혼자만 이도 저도 아닌 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져요. 아니, 어쩌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요.

300p. 서른
어쨌든 우리는 서로에게 '빠졌'어요. 어느 땐 제 자취방에서 해가 지는지도 모른 채 서로를 안고 마냥 뒹굴었지요. 그리고 그때 저를 위로해준 건, 제가 직접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는 누군가의 체온이었어요. 욕망이나 쾌락은 그다음 문제였지요. 어쩌면 사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기는 그리 많은 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이만하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면서요.

305p. 서른
특히 제가 있었던 곳은요, 언니. 사당에서 뉴타운으로 지정됐다 사업이 이뤄지지 않아 꽤 오랫동안 방치돼 슬럼가처럼 흉흉해진 동네였어요. 거기서 저처럼 공동 생활을 하며 '선진국형 신개념 네트워크 마케팅'을 하는 젊은이들이 꽤 많았어요. 처음엔 저도 한 5백? 아니 천 명쯤 되나? 싶었는데 실제로는 거의 만 명 가까이 된다 하더라고요. 전국 단위도 아니고 단지 그 동네에 있는 애들만 꼽아봐도 말이에요. '칼밥' 먹고 '칼잠' 자고 최악의 환경에서 지내는 애들이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말쑥하니 정장으로 갈아입은 뒤 변신을 하고 나왔어요. 그러곤 삼삼오오 무리 지어 우르르 파도처럼 한 도시로 쏘당져 나오는데 그 모습이 가위 장관을 이룰 정도였어요. 그즘 되니 '저렇게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이 그렇게 이상한 일일 리 없다'는 자기암시를 걸게 되더라고요. 저 역시 1년치 합숙비며 식비까지 미리 낸 뒤라 발을 빼기 어려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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