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건, 꽃과 마음
나는 꽃을
만질 수가 있지만
내 마음을
만질 수는 없어요
하지만
꽃은
내 마음을
만질 수가 있답니다
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색색가지 예쁘게 물드는 것은
꽃이
색색가지 예쁜 손으로
내 마음을
만지작거리는 때문입니다
하청호, 마중물과 마중불
외갓집 낡은 펌프는
마중물을 넣어야 물이 나온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땅 속 깊은 곳
물을 이끌어 올려주는 거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도
마중불이 있어야 한다
한 개비 성냥불이 마중불이 되어
나무 속 단단히 쟁여져 있는
불을 지피는 거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끌어 올려주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펴주는 마중불이 되고 싶다
오순택, 징검돌
개울을 건널 때
등을 내어 준
돌이 아파할까 봐
나는 가만가만 밟고 갔어요
김현태, 겨울 편지
그대가 짠 스웨터
잘 입고 있답니다
입고, 벗을 때마다
정전기가 어찌나 심하던지
머리털까지 쭈뼛쭈뼛 곤두서곤 합니다
그럴 때면 행복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매 순간 순간마다
뜨거운 그대 사랑이
내 몸에 흐르고 있음이
몸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임보, 귤꽃 앞에서
어떤 시인은 죽음을 일러
모차르트를 더 이상 못 듣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이 아침 나도
한 그루 귤나무 앞에서 아부한다
죽음은
나로부터 네 향기를 앗아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