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을 덩케르크처럼 찍었으면 더 잘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만약 그렇게 찍었으면 달라질 점이 엄청 많았겠죠.
1 시점은 철저히 이순신 장군과 휘하 장수 몇 명 병사 몇 명의 시점으로 제한됨. 일본군 시점은 존재하지 않고 아군에 비해 압도적인 군세를 가진, 전쟁과 전쟁이 불러오는 죽음 그 자체로 기능함.
2 대사량이 줄어들고 이순신 배우는 눈빛과 분위기로 영화 전체 분위기를 지배.
3 병사들의 출신 배경, 설정들은 나오지 않음. 한 명 한 명을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이름없는 병사들로 만들어서 오히려 관객의 감정이입을 극대화.
4 신파 따위 존재하지 않음. 단 우는 장면이 있다면 멀리 산에서 배들의 출항을 보며 울부짖는 백성들의 소리만 멀리서 들려줌. (칼의 노래의 경우 묘사가 이렇습니다. 정말 건조하지만 무시무시할 정도로 가슴을 치는 묘사죠)
5 명량 전투 돌입 시점이 확 당겨짐. 전투 바로 전날 저녁부터 시작. (아무래도 이순신 장군의 그 연설과 의지만큼은 표현되어야 하기에)
6 병사라기보다는 피난민에 가까운 수군의 참상 묘사
7 전투는 멀리서 엄청난 양의 탄환을 쏟아부으며 미친 듯이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질러대는 일본군의 등장으로 시작, 겁 먹은 병사들의 시점으로 보이기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음. 이순신 장군의 시점으로 봤을 때야 간신히 상황 파악 가능. 백병전을 허용하면 모두 죽는 것을 알기에 모두 가까이 붙기 전에 격침 시켜야 하는 상황 부여. 화포 장전 시간동안 점점 더 가까이 오는 일본군. 전투가 진행될수록 적들은 점점 더 가까워 오고 막바지 무렵 얼굴이 보일 정도로 근접전이 벌어짐.
8 전투는 민족주의적 요소를 띈다기보다,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굴하지 않고 싸우는 인간의 의지 내지는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묘사됨. 따라서 후손들이 우리 공을 모르면 호로자식이란 대사는 없음.
9 고증은 완벽에 가까울 것.
제가 시나리오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시각으로 우리나라 시대극이 나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신파는 질려요 이제. 사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가 이미 이순신 장군 입장에서 명량의 공포를 제대로 그렸습니다. 제가 써놓은 거와 덩케르크하고 분위기도 비슷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