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뒤덮는 재앙의 먹구름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공포의 메뚜기떼~
순 우리말에, '누리'라는 단어가 있다. 동음이의어로써 누리는 세상, 우박, 유리(평안), 노을(강원)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황충이라는 뜻 또한 가지고 있다. 이 때 황충은 삼국지와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촉한의 노장수 黃忠과는 다르다. 황충은 메뚜기과 곤충, 특히 그중에서도 몸빛은 누른 갈색 또는 녹색이며 날개에는 검은 갈색의 큰무늬가 있는 메뚜기를 지칭한다. 한자로 蝗1蟲이라 쓰며, 날아다닌다 하여 비황(飛蝗)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23누런 충성
메뚜기가 작물을 갉아먹는 해충이긴 하지만, 각각의 개체들이 따로 작물을 섭식할 때의 피해는 미미한 편이다. 큰 동물이 다가오면 도망치는 등, 수동적이고 약하다. 하지만 다수의 개체가 모이게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가뭄이 들어 식물들의 생장이 더뎌지면 메뚜기들의 먹이가 줄어들게 되며, 부족한 먹이의 영향으로 메뚜기들은 남은 먹이를 먹기 위해 한데 모이게된다. 이렇게 모인 메뚜기들은 엄청난 속도로 세를 불리다가 어느 순간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주인공처럼 갑자기 돌변하여 갑자기 날기 시작하는데 일제히 날아오는 모습이 먹구름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지만, 작물의 살리는 보통의 먹구름과 달리 모든 걸 파괴하는 재앙과도 같은 구름이다.
한번 먹구름을 형성한 메뚜기들은 먹성이 매우 좋아져 섬유질이 포함된 것이면 무엇이든 먹어치운다. 작물은 물론이거니와 화초와 나무, 심지어는 옷까지 너덜너덜하게 만들 정도이며, 메뚜기로 가득한 먹구름이 지나간 자리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4 문제는, 먹성이 좋아진 만큼 겁대가리를 상실해버려서 아무리 내쫗으려 애를 써도 눈 한번 깜박 안하고 제 할 일 하고 제 갈 길 간다.5
~저항할 수 없는 대기근의 상징~
성경의 "요한계시록"에는 아바돈 혹은 아폴루온, 아폴리욘이라 불리는 악마가 등장한다.6 이 악마는 악마가 벌을 받아 떨어지는, 절대 헤어나올 수 없는 영원한 구렁텅이인 무저갱에서 기어올라온, 독하디 독한 악마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지옥의 악신이오, 파괴자라 지칭하는 아바돈이 바로 황충의 왕이다. 파리대왕으로 불려지는 바알제붑과 비교되곤 하지만, 아바돈의 황충의 경우 피해가 직관적으로 보인다는 점이 더욱 무섭다 할 수 있다. 또한 구약성경에서 람세스가 모세의 이집트 탈출을 방해하자 유대민족을 편애하는 야훼가 이집트 땅에 내린 재앙 중 하나가 바로 메뚜기떼의 습격이었다. 이 정도면 메뚜기떼가 서양에서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는지 어느정도 알만하다.
중원에서 역사에 기록된 기록적인 황충의 출현은 후한 말, 가뭄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가뭄과 탐관오리의 수탈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기록적인 황충의 등장으로 인해 농민들의 생활은 피폐해져갔고, 굶어죽거나 병들어죽는 사람이 늘어만 가자 태평교의 교주인 장각이 농민들을 이끌고 농민봉기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를 황건적의 난이라 부르며, 중원 최초의 종교집단에 의한 농민봉기가 된다.78 결과적으로 황충에 의해 황건적이 등장했으며, 이로 인해 중원이 전란에 휩싸이고 주인이 바뀌는 등, 역사를 바꾸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현대에서도 죽지 않는 불사신 요괴~
과학과 철학 등, 학문의 발달로 인해 실체가 없거나 과장되어 전래된 대부분의 요괴와 괴물은 한낱 이야깃거리로 전락해버렸지만, 실체가 존재하면서도 과장이 거의 없는 황충은 이른바 불사신 요괴라 할 수 있다. 다행히 한국의 경우 황충의 대규모 습격은 사라진 상태지만, 가난한 개발도상국은 여전히 황충과의 전쟁으로 시름하고 있다. 실체가 없는 괴물은 교육으로 퇴치할 수 있지만, 실체가 있는 괴물은 그럴 수 없다. 요괴든 현상이든, 실체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출처 : 은여우 공작소
[출처] [한국 요괴 대사전] 037. 황충(누리)|작성자 은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