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가 올린 "인턴의 비밀"편에서 하도 반대를 많이 먹어서 아직도 정신이 혼미하네요. ㅎㅎ
반대 먹는것 자체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미처 잘 생각못하던 부분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해요.
다만, 반대를 일정 수준 이상 먹으면 글이 베스트나 베오베로 못가서 제 글의 존재를 몰라 못 읽는 분이 계실거라는건 좀 그렇더군요.ㅎ
어쨌든 많은 반대의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고, 다른 여러분들의 댓글들을 꼼꼼히 읽어보니 아래와 같이 정리되네요...
1. 인턴이란 자리는 취업준비생들에게는 하나의 성취이자 목표인데, 인턴을 정규직들이 너무 낮추어 대하는게 느껴져서 싫었다.
2. 인턴도 엄연한 인격체인데 회사 상사들이 약자인 인턴의 인격을 이등병 굴리듯이 너무 쉽게 본다.
3. 작성자 글쓰는 스타일에도 거만함이 묻어난다. 특히 심각한 상황에서 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 이런거 기분나쁘다.
일단 반성하겠습니다.
나만 옳다는 아집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제가 아는 사실적인 얘기, 제가 느끼는 것을 씁니다.
추천수 좀 얻어보겠다고 달달한 직장 환타지를 쓸 순 없지요.
삶이 팍팍할 수록 사람들은 슈퍼히어로 스토리를 원합니다.
상황이 짜증나고 주위에 나쁜놈들 반칙하는놈들 투성이인데...
열받으면 헐크로 변해서 모든걸 다 때려부수고 싶고,
어려운일이 생기면 시커먼 박쥐옷 입은 형아가 나타나서 해결해 줍니다.
우리 민중이 힘들때면,
홍길동, 임꺽정, 허생, 김선달, 김삿갓 같은 히어로스토리가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뻥 뚫어 줬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히어로에 투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팍팍한 취업 시장에서
그동안 취업의 8부능선이라고 생각하고 1차 목표로 생각했던, 그 부러워 보이던 "대기업 인턴"이란 자리가
실제 직장내에서는 이제 막 입대한 어리버리한 이등병에 불과하고,
상사들에게는 아직 인정도 못받고 주변인처럼 대우 받는 자리라는 건
팍팍한 현실입니다.
가정, 학교, 군대, 회사는 게임의 룰이 전혀 다릅니다.
그동안 학생 신분으로 한 가정의 소중한 아들 딸로 20-30년을 살아왔겠지요.
그 동안은 부모님으로부터 밑도끝도 없는 사랑과 지원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지요. 그게 당연하니까요.
그것이 가족간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회사에 오면 모든게 바뀝니다.
회사의 목적은 단 한가지예요.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익창출". 까놓고 말하면 돈버는 것이지요.
회사와 당신은 철저한 "계약관계"일 뿐입니다.
회사는 당신이 회사돈 불려주는데 기여하길 바라고, 당신은 회사로부터 그 사례로 돈을 받지요.
근데 "우리회사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라고 하면 사람들이 싫어해서 돈 버는데 지장이 생길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회사는 포장을 하죠.
"우리 회사는 21세기형 기술을 선도하고... 사회 공헌을 통해... 직원들의 자아실현을... 환경보호... 윤택한 삶을..."
착각하시면 안돼요.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게임의 룰은 "돈 버는것"입니다.
모든일은 거기에서 비롯되고 거기로 귀결됩니다. 단 한가지 예외 사항이 있다면 "오너일가"와 관련된 것 정도이지요.
회사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이 쉽게 착각하는게 한가지 있어요.
'A팀장은 성격 열라 까칠하고 더러워. 맨날 야근 시키고 업무도 개념없이 막 던져. 악마같은 인간이야.'
'B팀장은 사람도 너무 좋고 친절해. 성격이 너무 따뜻하고 다정해. 정말 존경받을만한 천사같은 분이시지.'
여기서 A팀장과 B팀장이 원래 성격이 그런걸까요...?
제 생각엔 아마 그사람 본성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겁니다만...
A팀장이 까칠하게 하는 이유는, 그 동안 경험상 그렇게 몰아쳤더니 성과가 좋더라...의 결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B팀장이 따뜻하게 하는 이유는, 그 동안 직원들에게 잘 대해줬더니 다들 똘똘뭉쳐서... 성과가 좋더라... 의 결과라는 거지요.
회사 밖으로 나오면, A팀장은 좋은 형님일수도 있고, B팀장은 일베 워리어 일수도 있어요.
아닐것 같나요...?
미생을 보시면 천과장이 오차장님 팀에 윗선의 지시로 오랜만에 합류를 합니다. 오차장 김대리와 친하다는 이유로요.
김대리는 천과장이 반가와서 좋아라하는데 그런 김대리를 천과장이 회의실로 데리고가서 열라 깹니다. 내가.. 니 친구냐? ㅎㅎ
그러고는 천과장은 자기 캐릭터를 바꿨으니 그리 알라고 말하죠... 물론 좀 있다가 오차장한테 박살나고 정신을 차립니다만...
관리자급이면, 자기 일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 캐릭터를 완전히 바꿀수 있습니다.
남양유업의 그 싸가지 영업직원이 원래 그런 X새끼일까요?
아마도 그 회사가 구조적으로 그런식으로 악랄하게 쥐어짜대었더니, 그동안 수익창출에 도움이 되어 왔을겁니다.
이제 그 못된 방식이 세상에 다 까발려졌으니 수익을 만회할 새로운 구조를 또 만들어내겠죠.
영업 관리자들은 새로운 캐릭터로 변신해서 재무장하구요.
거기 경영 기획 전략 쪽하고 마케팅쪽은 지금 미친듯이 백업 플랜 만들어내고 있을겁니다.
나중에 봤더니, 변한게 없더라... 라고 한다면, 그 못된 방식이 여전히 제일 높은 수익을 주기 때문일겁니다.
회사 게임의 룰의 핵심인 성과 창출, 수익 창출을 위해서는 모든게 가능해요.
법 테두리 안에서, 또는 정치권을 압박해 법을 바꿔가면서까지 돈을 더 벌고 싶어해요.
수익창출, 즉 성과창출이라는 대명제하에서... 팀장 입장에서는 신입보다는 경력직을 뽑는걸 선호해요.
당연하잖아요?
대리급 2-3년차 경력직이면 신입보다 1.5배쯤 연봉이 높다고 해도, 월급은 인사팀쪽에서 나가는 거잖아요.
즉, 인풋은 내가 크게 관여할 바 아니지만, 경력직 대리급이 만들어낼 아웃풋 - 성과는 신입과는 비교할 수가 없죠.
회사 입장에서도, 연봉 50%만 더 주면 신입사원 5명보다 성과를 더 만들어 내는데... 당연히 이건 수지맞는 장사죠.
신입사원 뽑아 놓아도 회사입장에서는 한 2년동안은 그냥 돈 줘가면서 일이 손에 익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러면, 왜 신입사원을 뽑을까요?
그건요, 군대에서 전투 능력 좋다고 용병으로만 채울 수는 없는 것과 같아요.
위장천막 하나 제대로 못쳐서 속 터지더라도, 그래도 이등병을 받아서 훈련시켜서 우리 부대의 기간병을 만들어야죠.
그렇게 밑바닥부터 우리 기업 문화에 맞춰서 트레이닝된 사원은 결국 회사의 근간이 되니까요.
처음 몇년은 기다려주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될 시점이 되면 X나 굴리지요...ㅎㅎ
회사 입장에서, 또는 관리자 입장에서 제일 안타까운게, 한창 일할 직원이 사직하게 되는거지요.
회사입장에선 그야말로 그동안 다른 회사 좋은일만 시킨거지요.
그래서 팀원이, 특히 인사고과가 좋은 직원이 그만두게되면 해당 팀장의 인사고과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팀장인데, 팀원한테 막 비굴해져야 하는 타이밍도 종종 생겨요. ㅎㅎ
당신이 유능한 팀원이라면, 제 말이 맞는지 확인해볼겸 언제 한번 팀장한테 개겨보시는 것도... ㅎㅎ
신입사원의 비밀을 알려준다고 하고는 거의 회사 수익에 대해서만 얘기했어요.
왜냐면, 그게 회사내의 모든 스토리를 풀어갈 핵심 키워드이기 때문이에요.
굉장히 많은 공부와 노력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직원들은 업무에 대한 열정과 포부가 넘쳐요.
뭐든지 시켜주시면 잘 해내겠습니다~~! 라고 말하죠.
근데요...... 못해요.
잘 할 수 없어요....
이건 마치... 이제 막 자대에 들어온 이등병이...
"저는 훈련소에서 모든걸 다 배웠기때문에 소총 하나만 주시면 바로 김일성 목을 따오겠습니다" 라는것과 같아요.
높은 패기와 열정에도 불구하고, 신입사원이 처음 받는 업무는 영수증 모으기에요.
선배, 상사들이 지출한 팀비, 출장비등 영수증을 건네주면 용도에 맞게 구분해서 이면지에다 딱풀로 붙여요. ㅎㅎ
이면지도 막 아무거나 쓰면 안돼요. 이거 구분하는 것도 알아야 해요.
업무가 좀... 그런가요? ㅎㅎ
군대에서 이등병이 자대에 오자마자 침상 걸레 잡는거 봤어요? 화장실용 걸레 빠는것부터 하는게 맞지요?
영수증을 이면지에 반듯하게 붙이는거 잘하면요,
SAP에 들어가서 전표 입력해서 출력하는걸 배워요. 근데 이건 제대로 이해해서 할려면 시간이 좀 걸려요.
영수증마다 코스트센터가 다르고, 프로젝트 오더로 된것도 있고... 뭐 하여간 이건 좀 많이 배워야 해요.
그리고 출력된 전표와 영수증 증빙을 우리 본부의 경리담당 직원에게 가져다 주는걸 시켜요.
그냥 가려는걸 불러다 비타500 하나 쥐어주며, 경리 직원과 인사 잘하라고 당부해요.
전표처리는 무지하게 많은 실수와 에피소드들이 예약되어 있어요. 경리 직원과 친해지지 않으면 헬게이트가 열릴거에요.
이게 내년에 다음 기수 신입이 들어올때까지 본인이 기본적으로 전담해서 할 일이에요.
물론 사수인 이대리가 틈틈히 부서업무 파악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들을 던져 줘요.
신입사원들은 공부하던 가닥이 남아서 그런지 그런 자료들을 열정적으로 읽어요.
근데요, 자료를 너무 집중해서 열심히 읽으면 안돼요.
양쪽 귀는 열어두고 한쪽 눈을 주위를 살피며 읽어야 해요.
자료를 보더라도, 팀내에서 오고가는 상사들의 대화에 늘 관심을 가지는게 좋아요.
자기 주위에 고참들이 어딜 가는지 무슨 업무를 하는지 늘 주위를 기울여야 해요.
회사에서 신입의 자리는 맨 끝자리이자 파티션들 사이의 복도에 접해 있는 자리예요.
타팀, 타본부의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팀에 볼일이 있을때는 주로 가까운데 앉아있는 신입에게 물어봐요.
"팀장님 계세요?", "어? 김과장님 자리에 안계시네요? 어디 멀리 가셨나요?", "이대리님이 자료 주시기로 해서 왔는데..."
이럴때 대답이 척척 나와주는게 좋아요. 상사들이 아주 대견해하고 좋아할거예요.
자료 읽는거 집중하다가 이런거 대응 잘 못하고 어버어버 몇번 하면요... 쫌... 그래요.
어느덧 신입이 들어온지 한달이 다 되어가네요.
며칠 있으면 신입한테는 첫 월급날이에요.
근데, 김과장이 협력업체에 급히 외근을 나가야겠대요. 그쪽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나봐요. 거기서 밤늦게까지 일보다가 퇴근하겠대요.
내용을 들어보니 골치 좀 아프겠네요. 부품 테스트 하다가 밤 샐수도 있겠어요.
김과장한테 신입을 데리구 가라고 했어요.
며칠 후 첫 월급날이 되면, 신입도 자기네 학교 친구들 후배들 불러서 한턱 쏘러 갈텐데,
뭔가 얘깃거리는 하나쯤 만들어줘야 하잖아요? 그리고 배우는 것도 분명히 있을거예요.
앞으로 1-2년 정도는 차근차근 하나하나 배워나갈 거예요.
훌륭한 인재이고 건실한 청년이지만... 아직은 회식 자리 예약하는거 하나 시킬수 없는 신입일 뿐이예요.
회식자리 예약할 능력이 왜 안되냐구요? 비하하지 말라구요?
팀원들이 무슨 메뉴를 좋아하는지 누가 무슨 알러지가 있는지 회사앞 어느 음식점 주인하고 한판 했었는지도 모르면서요?
다 시간이 해결해줄거예요.
조급해 할 필요없이 우직하고 싹싹한 태도로 하나하나 배워 나가면...
어느새 당신이 열라 굴려지고 있을거고, 그건 당신의 능력이 인정되었다는 의미일 거에요.ㅎㅎ
글을 쓰다보니 또 글이 대책없이 길어졌네요.
취업준비생들의 입장에서는 번듯한 직장인이 된다는게 중요한 "단기적인" 목표이겠지요.
그 목표만 이루면 뭔가 자신의 능력과 뜻을 바로 펼칠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들죠.
직장인들은 다 알아요. 그건 환타지 라는것을요.
미생에서 안영이씨가 인턴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분석력을 보여주고, 신입으로 와서는 상사들 기를 확 죽이는 내공을 발휘하죠.
근데, 그 웹툰 잘 보시면요, 안영이씨는 실질적으로 경력자예요. 다른 회사에서 경력이 있었죠.
입사를 목표로 삼으시는 것보다는 과정으로 이해해주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과정은 조정이 가능하죠. 플랜A, 플랜B, 플랜C 가 있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목표는 그야말로 목표여야 해요.
목표는 부자가 되는 것. 행복해 지는 것. 내 가게를 갖는 것. 건물주가 되는 것. 이런것으로 세우시는게 어떨까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