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유 가입후 처음 글써보는거라 살짝 떨리네요..
오늘 저녁 병원에 입원한 언니 보러 막내동생이랑 함께 병문안 갔다온후 집에 가는데,
집앞 슈퍼앞에서 길냥이랑 마주쳤어요.
그동안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고다나 냥이네, 유기동물보호시스템을 기웃거리며 지내왔었고,
만약 입양한다면 내 집 근처 냥이를 입양해 키울 생각이었거든요.
더구나, 제가 이동네에 1년넘게 사면서 오늘처럼 길냥이를 마주친 적이 한번도 없어서,
오늘 본 길냥이가 그렇게 반가울수 없었어요.
타지방에 사는 제 동생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건지,
왜 그런말 있잖아요, 고양이 키우는 사람은 고양이를 부르는 기운이 있다고.
우리곁을 맴돌면서 냐아~ 냐아~ 하길래 배고픈가보다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맴돌다가 골목으로 가길래 살짝 따라가보니 두마리가 더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동생한테 집에 냥이들 먹을만한거 물어보고 곧장 집으로가 국물용 멸치랑, 물통에 물 떠다 와서
냥이가 간쪽으로 가봤죠. 골목 안을 자세히 보니 차 밑에 한마리가 앉아있더라구요.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서 멸치랑 물 놔두고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으니
경계하면서 조심조심 나와서 먹더라구요. 멸치 냄새때문인지 주변고양이들이 여기저기서
뛰쳐나와서 먹는데 총 4마리더군요. 부족하겠다 싶어 동생보고 슈퍼에 참치사오라고 한뒤 먹는걸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어요.
참치사오니 애들 더 흥분해서 서로 먹을려고 난리난리도 아니어서 서열낮은 애들도 먹을수 있게 멀리 던져주기도 하고
그러고 있는데 골목안쪽 어느집에서 누가 나오더라구요.
앞에 차가 있어서 잘 안보였는데 고개를 빼고 보니 골목 가로등에 비춘 모습이 백발의 할머니셨어요.
동생은 가자고 하는데 할머니이시니까 괜찮겠지 하고 생각한게 오산이었어요.
손에 물통을 들고 계셨는데 우리를 발견하시더니
"너거들 여기서 머하고 있노? 어? 머하는데? 고양이 밥주고 있나?"하시길래
"네.. 왜그러시죠..;;?"
"오냐 잘만났다. 내 너거들 언젠가 내손으로 잡을려고 했다, 너거들이 고양이 밥주는 바람에 내 여기서 키우는 고추, 상추 죄다
고양이 똥오줌으로 다 배렸다. 너거들이 다 책임질거가? 어? 밥왜주는데? 어? 대체 머하는 애들이고? 어디사는데? 너거집까지 같이 가야겠다. 앞장서라 어? 내 아들이 경찰서장이고 하버드대까지 나왔다. 어? 내 아들한테 말하면 너거 잡아넣는거 일도 아니다. 어? "
속사포처럼 무슨 말도 못하게 고래고래 말씀하시면서 손에 들고계시던 물통으로 면전에 물 퍼부으시면서 (피하긴 했는데 ㅠㅠ)
말씀하시는데 너무 놀라 멘붕상태로 있었죠. 오늘 처음 길냥이 밥주러 왔다가 이게 웬 봉변인가 싶기도 하구요.
정신차리고 할머니를 진정시키기로 했죠.
" 할머니, 진정하시고 저희는 여기에 처음 밥주러 온거예요. 요 앞 슈퍼에서 처음본 고양이가 저한테 다가오면서 울길래
배고픈가보다 해서 처음 준거예요. 정말이예요. 그리고 할머니가 고양이 때문에 피해보시는 지는 정말 몰랐어요. 할머니"
하니까
"내가 그렇게 밥주지 말라고 여기 다 써붙여놨는데 밥을 주긴 왜주노? 너희는 눈도 읍나? 글도 몬읽나? 어? 아이고 할아범~ 여기 나와보이소. 밥주는 인간들 잡아써예. (그리고 우리쪽으로 다시 와서) 고양이 똥오줌이 얼매나 독한지 여기 고추, 상추,작물들 죄다 버리놔서 다시 모종 사다 심었는데 그것도 싹 버리고. 어? 밥 주지 말라고 이래 써붙여놨는데 그래도 아침에 보면 통조림 캔 이런것들 굴러다니고, 어? 내가 싹다 치워놔도 또 놔두고 가버리고 어?고양이 때문에 이 골목이 얼마나 더럽고 시끄러운줄 아나? 그렇게 좋으면 다데리고 가라? 어? 니가 다 데리고 살면 되겠네. 어? 너거 머하는 아인데? 어? 너거 아빠 엄마는 머하는 사람인데? 집에서 니가 이러고 다니는 거 아나? 고양이 밥 사주는 돈으로 책을 사서 보든지, 이럴시간에 공부나 해라.어?"
그러면서 계속 집이 어디냐고 같이 가자고;;;가서 내 부모를 만나야겠다고 ;;;;
그래서 제가 글을 어디에 써붙여놓으셨냐고 물으니 아까 고양이 밥줄때 있던 차 뒷편에 보니 할머니께서 키우시는 작물이 가득한
화분이 있더라구요. 화분뒤 건물 벽에 '고양이 밥주지 말것' 이라고 붙여있었습니다. 그 글을 보지 못한 제 불찰도 있고
할머니의 분노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어서 정중히 말씀드렸어요,
" 할머니, 글이 있는지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할머니 화분들 보니 속상하실 만도 하겠어요. 할머니 말씀 들어보니까 고양이 때문에
불편하신 부분도 있으니까 저희가 대신 구청에 신고해드릴게요. "
하고 말씀드리니 그제서야 화가 좀 누그러지시더군요..
"그래, 제발좀 신고해라. 고양이 때문에 못살겠다. 어? 젊은 애들이 이럴시간에 공부한자 더하고, 책하나 더사서 봐라. 너거 어디서 왔는데? 집이 어딘데? 우리아들이 경찰서장인데..(무한반복--;;;;) "
제가 "할머니 심정 충분히 알았고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올게요. 걱정마세요. 할머니"하니
"그래 맹세했제? 어? 다시 와서 발각되면 진짜 너거 경찰서에 다 잡아넣을거다. 어? 그리고 젊은 처자가 밤늦게 이래 다니면 되나?(여기까진 걱정해주시는가보다 했죠..) 너거 집이 어딘데? 요즘에 뉴스에 강간이다 머다 이런거 많던데, 다 이렇게 밤늦게 돌아다녀서 그런거 아니가? 너거들도 그런일 당하고 싶나? 저거들이 밤늦게 다녀놓고 나중에 강간한 사내만 나쁜놈 되서 불쌍하지. 안그렇나? 어?"
이렇게 말씀하시는거보고 다시 2차 멘붕.. 뭐.. 옛날분이시기도 하고 골목에 있는 주민분들 창밖으로 내다 보고 계시기도 해서
더이상 대화는 무리인걸로 생각해 그래도 웃으면서 (--;)
죄송하다는 말씀 계속 드리고 다시는 안오겠다고 약속하고 구청에 꼭 신고한다는 말도 거듭 드리고 겨우 집으로 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 생각이 정말 복잡하더군요..
동생과는 주민과 고양이가 공존할수있는 방안을 생각해봐야겠다라고 얘기하면서 왔긴 왔는데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긴장이 탁 풀려
순간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이유없이 모르는 사람한테 욕을 먹어서 인것 같기도 하고..
내심 처음으로 용기내어 좋은일을 한 것 같은데 그것이 다른사람한테는 화가 나는 일인데서 오는 허무함? 이랄까..
길냥이한테 처음 밥주는데 이런일을 겪게 되어 이젠 무섭기도 하고..
이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도움이 필요한 동물에 무관심해지는 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
어떤 이유든간에 지금은 그저 서럽기만 하네요.
친구는 인기척이 들었을때 바로 튀었어야지라고 말하는데..
전 정말 처음인데 줄곧 밥을 주는 사람으로 오인받아 물세례 받을뻔 하고..
하... 할머니 심정도 이해가 되지만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네요.. ㅠㅠㅠ
그래도 오유에 글쓰면서 조금 진정이 되긴 되었네요..
고양이를 키우는 동생도 구청에 신고하면 어느정도 괜찮아질거라는데
구체적인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는 님들 있으면 댓글 부탁드려요.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네요..(진정하고 쓰느라 두시간 정도 걸린듯..ㅠㅠ)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줄요약
1. 동생과 우연히 집앞에서 울고있는 길냥이를 발견해 밥을 줌.
2. 이웃주민인 할머니께서 그 모습을 본후 무섭게 따짐.
3. 할머니를 진정시키고 안오겠다고 약속한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놀란가슴에 눈물이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