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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奇談 - 두번째 기이한 이야기 (1)
게시물ID : panic_614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곰
추천 : 15
조회수 : 2196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12/09 09:55:05
  신병이 어설프게 꼿꼿한 걸음걸이로 내무반에 들어오자 사방에서 환호와 야유가 터졌다. 야유는 반쯤 말린 오징어마냥 바닥에 늘어져 있던 말년 최병장의 입에서 나왔고, 환호는 부려먹을 후임이 하나 늘어난 일병들 사이에서 나온 것이었다. 상병도 꺾인 참이었던 나는 무심한 척 코웃음을 치면서 놀려먹을 거리를 찾느라 재빨리 신병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다 나는 흠칫 놀랐다. 미처 머리가 돌아가기도 전에 입이 먼저 열렸다.
 
  “너 해원이?”
 
  내무반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선을 정면 15도 각도로 유지하고 있던 녀석이 눈만 데굴데굴 굴려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확인한 녀석의 입꼬리가 신병답지 않게 쓰윽 올라갔다.
 
  “어 원순아!”
 
 
 
  일과시간이 지난 후 나는 녀석을 데리고 내무반 건물 뒤편으로 돌아 창고 옆으로 갔다. 창고 벽에 가려서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이라 말년들이 종종 짱박히는 곳이었다.
 
  “야 반갑다 진짜.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처음 만나는 건데 하필이면 군대라니 원.”
 
  그때껏 일부러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던 얼굴을 펴며 내가 말했다. 군대는 상명하복이니 아무리 사회에서 친구 사이였다 해도 군대에서는 티내지 말라며 훈계조로 젠체하던 김 병장의 지겨운 잔소리가 지금까지 귓가를 맴돌아 인이 박힐 지경이었다. 나는 투덜거렸다.
 
  “젠장, 상명하복은 얼어 죽을. 얼굴 굳히고 있느라 죽는 줄 알았다.”
 
  “우리 주원순 상병님의 근엄하신 얼굴 볼 만하시더라. 언제부터 그렇게 인상을 쓰고 다니게 됐냐?”
 
  녀석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녀석도 김 병장에게 군대가 사회인줄 아냐는 둥, 군 생활 꼬이기 싫거든 고참에게 존댓말 딱딱 붙이라는 둥 별별 잔소리를 두 시간이 넘도록 듣고 온 참이었다.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야 말도 마라. 김 병장 잔소리 진짜 죽여준다고. 내가 군대를 늦게 와서 저 인간 후임이 된 게 진짜 내 인생 최악의 실수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말이야. 젠장.”
 
  “그럼 빨리 좀 입대하지 그랬냐.”
 
  “남말하기는. 나보다도 늦었으면서.”
 
  나는 툴툴대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요즘은 담배 피냐?”
 
  “아니.”
 
  “헤, 역시 모범생이네.”
 
  고등학교 시절에 녀석을 처음 만난 때가 생각나서 나는 씩 웃었다. 벌써 칠 년 전이었다. 나름 우수한 성적에 성실한 학생을 가장했지만 남몰래 날라리였던 나는 그날 오후의 체육시간을 땡땡이치고서는 별관 4층 남학생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별관은 주로 예체능 수업을 하는 곳이었는데 가장 위층인 4층은 언제부터인가 출입 금지가 되어서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다시 말해, 4층 화장실은 몰래 숨어 담배를 피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곳에서 한참 담배연기에 취해 있을 무렵,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기겁하며 담배를 든 오른손을 뒤로 감췄으나 어차피 자욱한 담배연기 때문에 쓸데없는 짓이었다. 다행히도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선생이 아니라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다. 얼굴이 살짝 눈에 익었는데, 녀석은 문을 연 채 화장실 안을 두리번거리다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뭐랄까, 마치 어물전에 널린 고등어를 살펴보는 주부 같은 눈빛이었다. 그 묘한 시선에 당황한 나는 엉겁결에 뒤로 숨겼던 오른손을 다시 앞으로 내밀었다.
 
  “한대 피울래?”
 
  “아니.”
 
  녀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태연히 대답했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줄곧 어울려 다니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나야 사이비 모범생이었지만 녀석은 진짜배기 모범생이었는데, 그러면서도 공부와는 거리가 먼 취미가 있었다. 예컨대 무당의 굿판을 찾아다닌다거나, 으슥한 밤에 외딴 건물을 방문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녀석이 미쳤나 싶었지만 함께 몇몇 일들을 겪고 나서는 나도 녀석의 행동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기를 입 밖으로 천천히 내뿜으며 나는 물었다.
 
  “너 아직도 그거...... 하고 다니냐?”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게 내 일이니까.”
 
  “정말이지 간도 큰 녀석이라니까.”
 
  한숨 섞인 내 말에 녀석은 픽 웃었다.
 
  “뭐, 익숙해지면 괜찮아.”
 
  그게 사람이 쉽게 익숙해지는 일이냐.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동시에 뭔가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대체로 그렇듯 내 예감은 이후 지나칠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아 버렸다.
 
 
 
  시작은 옆 중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해원이 자대 배치를 받고 백일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무렵, 옆 중대에서 총기사고가 터진 것이다. 그것도 오발이 아니라 자살이어서 부대 전체가 야단법석이 났다. 자살한 사람은 정 모 일병. 평소 군생활은 별 문제 없었고 딱히 자살의 징후가 보였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오히려 성격이 시원시원했고 주말마다 군데스리가에서 맹활약했기에 다른 대대에도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사단에서는 내무반 부조리나 폭력 쪽으로도 조사하는 모양이었지만 아무것도 나온 게 없다는 소문이었다. 그저 사건이 벌어지고 이틀째 되는 날, 유가족들이 부대를 방문해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을 뿐이었다.
 
  소문은 오히려 그 후에 퍼졌다. 정 일병이 귀신에 홀려서 자살했다는 것이다. 소문의 출처는 사건이 벌어진 날 정 일병과 함께 야간근무를 나갔던 박병호 상병이었다. 후임이 자살하는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바람에 충격을 받아 며칠이나 입원했었는데, 그가 병원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뒤늦게나마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해원을 내무반 뒤로 불러냈다.
 
  “야. 이거 뭔가 수상하지 않냐?”
 
  “그래 인마. 밑도 끝도 없는 게 아무래도 네가 수상하다.”
 
  “그러지 말고 좀 들어봐. 정 일병 걔는 절대 자살할 이유가 없는 애라니까? 그런데 걔가
근무 잘 서다 말고 갑자기 막 이상한 목소리로 횡설수설 이야기를 하더라는 거야. 그래서  걔 선임이 놀라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입에다 총을 집어넣고는 쏴버렸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한 자살이 아닌 것 같아서 그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해원이 혀를 찼다.
 
  “뭐 그렇긴 한데, 너 왠지 자세하게 알고 있다?”
 
  “어, 실은 병호가... 그러니까 정 일병이랑 같이 근무 나갔던 걔가 나랑 훈련소 동기여서 꽤 친하거든. 그래서 어제 이야기를 좀 들었어.”
 
  “그랬냐. 그래도 이미 끝난 일 아냐?”
 
  “사실은 그게 아닌 거 같아서......”
 
  “아닌 거 같다니?”
 
  나는 주변을 잽싸게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도 목소리를 낮춰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 어젯밤에 오발사건이라고 총소리 난 거 알지? 어제도 한 사람이 또 자살하려고 했대. 이번에는 옆에 있던 사람이 총을 쳐내서 간신히 살았다고 하던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해원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같은 곳에서 말이야?”
 
  “같은 곳에서.”
 

  
  병호와는 피엑스에서 만났다. 아무리 아는 사이라도 아들 군번이 넘어서는 후임을 너무 끼고 도는 것 아니냐는 김 병장의 잔소리를 간신히 피해 해원을 데리고 온 참이었다. 병호는 며칠 사이에 완전히 해쓱해져 있어서 처음에는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작대기 세 개짜리 계급장을 보고 조건반사적으로 냅다 경례부터 하려 드는 해원을 내가 끌어다 앉혔다.
 
  “옆 중대면 선임이 아니고 아저씨야 인마. 경례는 관두고 인사나 해라. 여기는 내 동기 병호고, 이쪽은 내 고등학교 친구 해원이. 우리 다 동갑인데 어쩌다 보니 이 녀석만 군대를 좀 늦게 와 버린 모양이야.”
 
  “아, 안녕하세요......”
 
  “네, 그,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둘이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나자 해원이 갑자기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병호를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병호는 당황했는지 눈만 깜빡이다 도움을 청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냥 놔둬. 전에 말한 그거야.”
 
  “아......”
 
  병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해원을 마주보았지만, 매우 불편하고 어색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원은 여전히 말없이 삼십 초 가량 굳은 표정을 유지하다 이윽고 얼굴을 풀었다. 그리고 난데없이 이번에는 나를 노려보았다.
 
  “전에 말한 그거라니,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다닌 거냐?”
 
  아차차.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해원은 예전부터 자기 이야기를 남에게 하고 다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으레 해원 자신이 바보 취급받거나, 잘해 봤자 무당쯤으로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선을 슬쩍 피하며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아니, 거짓말하거나 허풍 친 건 없다고. 그냥 예전에 우리가 같이 다녔던 이야기 정도나 했지 뭐.”
 
  해원은 고개를 두어 차례 흔들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병에게 쩔쩔매는 상병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피엑스병이 은근슬쩍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쪽을 향해 눈을 힘껏 부라리자 찔끔한 피엑스병이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해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원순 상병한테 이야기를 들으셨다니 설명이 빠르겠네요. 우선 이야기를 조금 듣고 싶습니다. 그날 근무 서러 나가서 겪은 일들이요.”
 
  “아 예. 실은 대대장 면담이나 군검찰 조사에서 몇 번이나 한 이야기인데, 전부 다 이야기한 건 아닙니다. 좀 그런 이야기도 있고 해서...... 그래도 거짓말은 없는데 다들 믿어주질 않더라고요. 욕만 오지게 먹고 말입니다.”
 
  “저는 믿어드리겠습니다.”
 
  해원이 온화하게 말했다. 병호는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몸에 힘을 빼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네. 그럼......”
 
  병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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