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박근혜의 유신
- 이종탁 논설위원
기억의 수명은 생각보다 길다.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어렸을 때 입력된 기억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수십년 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도 어느 날 모종의 신호라도 받으면 엊그제 인화한 필름처럼 선명하게 재현된다. 복원 속도도 놀랍다. 세월의 두께를 감안하면 머릿속의 저 아득한 곳, 켜켜이 쌓인 기억더미 맨 아래층에 있었을 것 같은데 재생될 때는 거의 빛의 속도로 달려 나온다.
지난 5일은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된 지 45년이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이 헌장이 나왔을 때 대한민국은 일대 외우기 경연장이 됐다. 대통령-장관-교육감-교장으로 이어지는 국가교육 지휘체계는 모든 학교 모든 학생에게 완전 암기를 명령했고, 학생들은 일일이 선생님 앞에서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393자로 된 헌장 전문을 막힘없이 술술 외우지 못하면 급식빵을 받지 못하거나, 회초리로 맞거나, 아니면 어두워질 때까지 집에 갈 수 없었다. 얼마 뒤에는 국민교육헌장가(歌)도 나와 교실마다 한 소절씩 이어 부르는 돌림노래를 하곤 했다. 당시 학교를 다닌 세대들은 그래서 이 헌장을 최소한 몇 단락씩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또렷이 기억한다.
요즘 이 나라가 유신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한다. 유신 하면 떠오르는 연관어가 국민교육헌장이다. 유신은 1972년,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에 나왔으니 4년의 시차가 있다. 하지만 유신의 시발이 국민교육헌장이다. 국가가 시키면 국민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며 또한 반드시 할 수 있다는, 국가에 의한 국민정신 개조작업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스스로 “10월 유신은 국민교육헌장의 이념과 기조를 같이한다”고 밝힌 적도 있다.
옛 기억을 되살려 헌장을 외워보자.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중략)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여기까지 읊조리다 보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나 화법과 비슷하다. 창조의 힘은 창조경제, 나라의 융성은 문화융성을 연상시키고 개인의 자유나 권리보다 책임과 의무, 나라발전을 강조하는 문법도 흡사하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통치이념의 기저에 국민교육헌장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그의 초강경 발언도 이 맥락에서 보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국론분열 행위 용납 않겠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부정, 엄두도 못 내게 하겠다.” 이건 그 옛날 아버지 박정희의 언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이런 언어를 사용할 이유도 필요도 없지만, 되고 난 뒤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버지의 언어를 쓰고, 아버지의 통치방식을 따르는 것은 박 대통령의 오랜 소망이다. 그가 척결 대상으로 삼는 ‘종북세력’이란 아버지 시대의 ‘용공세력’, 그가 추구하는 ‘국민행복시대’란 아버지 시대 ‘조국 근대화’와 같은 뜻 다른 표현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2월 청와대에 발을 들여놓을 때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을 게 틀림없다. 아버지를 잃고 비통한 가슴으로 청와대를 떠난 건 33년 전이지만, 그때의 기억을 불러내는 데 걸린 시간은 눈깜짝할 사이도 안되었을 것이다. 청와대 내부에는 그의 추억을 일깨워줄 모티브들이 널려 있다. 어릴 땐 절대 권력자의 총애를 받는 영애(令愛)였고, 꽃같은 20대에는 퍼스트레이디로 7년을 생활한 바로 그곳 아닌가.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이런 경험과 기억들은 박근혜 정권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주요인이다.
한국 사회에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부하로 두고 일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윗분은 연장자보다 연하자를 선호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열 살 이상 많은 연장자를 아랫사람으로 두고도 어색하거나 불편해하는 기미가 없다. 청와대에 입성하는 순간 그의 시곗바늘은 33년 전 옛 시절로 돌아가 있는 것이다. 일흔넷의 비서실장이 역대 최고령이라고 해도 박 대통령 눈에는 아버지 시대 청와대에 근무하던 겨우 마흔 될까말까한 비서관일 뿐이다. 퍼스트레이디가 되었을 때 그의 물리적 나이는 스물둘에 불과했지만, 외국 정상 부인들과 환담을 나누고 국가유공자를 초치해 다과를 베풀고 청소년들에게 충과 효를 강조할 때의 정신연령은 작고한 어머니 나이쯤 됐다고 봐야 한다. 지금 국가와 국민을 보는 박 대통령의 눈은 그때 그 높이에서 출발한다. 지난여름 아버지와 휴가 갔던 곳으로 휴가를 가 아버지를 회상하며 나뭇가지로 ‘저도의 추억’을 모래에 새기고, 귀경 직후 ‘유신 검사’를 2인자로 임명한 것은 ‘박근혜의 유신’을 알리는 나름의 신호였던 셈이다. 앞으로 우리는 유신의 그림자를 얼마나 더 많이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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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읽고 무언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이라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