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기억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
일시에 세상이 흐린 화면으로 바뀌었다
네가 남긴 것은
어떤 시간에도 녹지 않는
마법의 기억
오늘 그 불꽃으로
내 몸을 태운다
김강호, 초생달
그리움 문턱쯤에
고개를
내밀고서
뒤척이는 나를 보자
흠칫 놀라
돌아서네
눈물을 다 쏟아내고
눈썹만 남은
내 사랑
김남조, 너를 위하여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 뜨는 건
믿을 수 없는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 버리고
못다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서정주, 첫사랑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열 두살 이었는데요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해서요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그러면서 산에 가선 산돌을 주워다가
국화밭에 놓아두곤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
이수동, 동행
꽃 같은 그대
나무 같은 나를 믿고 나서자
그대는 꽃이라서 10년이면 10번 변하겠지만
나는 나무 같아서 그 10년,
내 속에 둥근 나이테로만 남기고 말겠다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길 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 않게
그대의 꽃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