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완전하고 필요한 것이 없다면 그가 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공감가능한 추론이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무엇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바로 "도구" 이다.
우리가 다루는 것들은 우리가 그렇게 하기 "원하기" 때문에 다루어 진다.
'존재 자체를 현전 Anwesen 이라 하여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것 즉 도구화하는 것
으로 해석해 왔다' 라는 것이 하이데거의 분석이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개념들 또한 도구로써 만들어 내며,
실재를 이성이라는 '도구' 로 판단하고, 실재자체 또한 인간성의 정립을 위해
도구화하였다. '신은 죽었다' 라는 판단은 단순히 사실적 판단을 넘어서
자주적 인간성 정립을 위해 필요한 선언이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필요에 따라 이루어 지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단 하나의 것 만은 이견의 여지를 지닌다. "사랑"
과연 인간은 사랑 또한 필요에 따라서 하는 것인가? 혹자는 그렇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하여, 즐거움을 느끼기 위하여, 등등의 이유들로.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이 사랑을 곡해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애초에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하는 것을 지칭한다. 즉 사랑은 애초에 그 의미가
초월적이다. 자아가 아닌 타인을 향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레비나스적 윤리학에서
타인의 '얼굴' 을 향한 초월적 의무를 아는가? 바로 사랑은 존재론적으로도 바로 이런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나 라는 존재를 초월하게 하는 것. 바로 타인의 '얼굴'을 통해서 말이다.
만약 사랑이 나의 필요에 괘념치 않는 것을 포함한다면, 신이 인간을 그리고 세계를
창조한 것이 어찌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뜻이 될 것인가?
인간을 창조한 것이 신 자신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며, 인간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한것이라면, 신의 완전성과 창조의 난점은 해결될 것이다.
댓글답변
Kierkegaard2 //
의무로써 도덕이라고 함은 도덕이 교육되어 진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마음속의 양심에 대한 의무로써 도덕을 실천한다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상대방에 대한 입장을 생각해보지 못하는 경우(이게 사이코패스 공감의 감정이 이 부분입니다.) 어떻게 의무로써 도덕을 실천할 수 있나요?
---->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설
칸트의 실천 이성은 이론 이성에 대하여 의지를 규정하는 이성 즉 의지 능력이다. 도덕적 행위에서는 의지의 내용이 자연적 욕망(감성·애착)·경험적 동기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을 배척하고 오직 이성이 자기 자신에게 주는 법칙에 의하여 의지의 형식을 규정한다. 여기에서 순수 의지·이성적 의지가 곧 실천 이성이다. 이론 이성 보다 우위에 서서 그가 증명하지 못하는 자유·영혼 불멸·신의 존재의 필요성을 인식한다.
정언 명법
단언적 명법(명령) 혹은 무상명법이라고도 한다. 가언명법, 즉 조건적 명령이 ‘네가 행복을 얻으려면 이렇게 행위하라’하는 목적 달성을 위한 방법으로서 행위를 명령하는 것인 데 반하여, 단적으로 ‘무엇 무엇을 하여라’라고 하는 누구에게나 무조건 들어 맞는 명령을 이른다.
칸트에 의하면 도덕 법칙의 명령은 방법이나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고, 그 자신을 목적으로 하여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언명법이다
Kierkegaard2 //
아 그리고 사이코패스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은 불행한 걸까요? 아니면 신의 오류나 불량품 같은 건가요??
---->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파괴한 것이므로 그것을 신의 탓으로 돌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은 그런 사람들을 회복시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