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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 일하며 겪은 에피소드#95
게시물ID : soda_69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마핱
추천 : 84
조회수 : 3855회
댓글수 : 31개
등록시간 : 2024/04/09 09:5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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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유 독자님들^^

어제 저녁부터 애기가 설사를 해가지고..부리나케 아침에 병원에 갔다 출근했네요.

생각보다 줄이 길지않아 일찍 끝낼 수 있었습니다. 업로드는 좀 늦어졌지만요..ㅋ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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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자리 이후, 약간은 팽팽하게 대치되는듯 하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 들었음.


일단 이모텝 과장과 전청조 과장은 본인과 창희에게 일과 중에도 찾아와

커피한잔 하거나 회사내 참고 자료, 설비 메뉴얼, 공유폴더 보관 자료 같은걸 같이

이야기하며 협조적인 분위기가 되었고


술자리에서 열심이 왔다갔다 돌아다니던 카푸어 대리는 과장들에게

약간은 '동생' 같은 느낌으로 한결 가볍게 서로를 대하게 되었음.


그에 따라 대리 이하급들이 좀더 과장급들과 섞이기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졌음.


이런 결과에 햄릿 이사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사무실을 둘러보았음.

겉으로 보기엔 이전과 비슷하게 회사가 잘 돌아가는 분위기.


그에따라 햄릿이사, 포청천, 렌야 셋이서 자주 회의실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 시작했음.


무슨 남자들이 저리 '꿈'이 많을까..? 이 회사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걸까..?


이 시기의 변화라면 헬보이의 위치였음.

이전에는 포청천, 렌야, 헬보이 이렇게 셋이서 항상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면..

그 자리에 햄릿 이사가 함께 섞여 들었다는 거임.


그리고 자연스레 헬보이는 '나가리' 혹은 '아웃' 되었음.

왜냐..그를 견제하던 렌야가 있었으니까..


렌야: 이봐. 헬과장.


헬보이: 네?


렌야: 자네 과장 아니야?


헬보이: ??


렌야: 여기 지금 '관리자'급들이 얘길 나누는 자리 아닌가.


헬보이: .......


렌야: '과장' 직급이 '관리자' 직급은 아니지?


헬보이: .......아...


포청천: 그래. 렌야 수석말이 맞아. OO아. 너도 이제 자리가서 일해라~


헬보이: ;;;;;;


햄릿: ......크흠..


얼굴이 벌게진 헬보이를 오랫만에 만나볼 수 있었음. ㅋ 예상대로 헬보이 그는 조련사가 아닌 '침팬지' 였음.

그냥 대장 침팬지 정도..? ㅋㅋㅋ

자기 자리에 앉아 푸들푸들 떠는 모습이란..그 옆에서 앙드레가 얍쌉하게 미소짓고 있었음.

박쥐 새퀴들아..니네 둘다 동굴서 쫓겨 나온거라고 ㅋㅋ


그렇게 우리 조직은 하나의 격차가 만들어졌음.


천룡인(관리자): 햄릿, 포청천, 렌야

그외 백성들(침팬지들).


2019년 중반기.. 아마도 이때부터 뭐랄까...예전만큼 일이 많지 않았음.

디스플레이 업계가 점점 쇠락하는 분위기는 느꼈는데. 이때부터 현저히 일이 없어졌음.

그러다보니 총 6팀 까지 있던 비전팀도 1개 팀이 해체되었음. F팀장의 F팀.


그곳의 인원들은 각 파트로 쪼개어 인원배정 되었음.

퇴사하는 인원들도 많았음. 비전팀들 끼리는 경쟁의식이 있어서, 자기네 팀이 해체되고 다른 팀에 들어가는걸

마치 패전한 장수들이 치욕적으로 적국에 충성해야하는 상황으로 여긴듯...


사람들은 참 자기 '위치'도 모르고 쓸데없는데 '자존심'을 부리는듯..

관리자도 아닌 일반 직원들이 뭐 그리 남에 눈치를 보는지 원.. 

'실력'만 있다면 어딜가도 큰소리 치는거 아닌가??


회사에서 그나마 안정적으로 돌아가는곳은 D사 였음. 그들은 일이 많이 없어진 

시기라고 해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 했고, 연구했음. 그럴때 마다 회사에 돈이 들어왔고.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주는걸까..? 이제는 더이상 손볼 곳이 없는 과거의 장비 마저도

이런 저런 이유를 만들어 기능의 추가나 수정을 했음.


그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일은 AI 관련 업무였음.

본인이 개조한 ADN 장비에 뒤이어 창희가 추가한 RBD 장비의 AI 시스템.


고객사는 이 AI 시스템을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했으며, 그 실험으로 인한 

코드 수정건은 본인과, 창희를 지속적으로 '바쁜척'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음. ㅋㅋㅋ


물론 창희는 요령 같은거 피우는 스타일이 아니라, 정말 열심히 일을 한 것이었지만,

본인의 경우는 보통 3일 걸리는 일이면 하루에 끝이났음. 일부러 일정을 설렁설렁 부풀려서 일했음.

왜냐.. 본인과 창희는 항상 비슷한 시기에 동일 기능에 대해 업무를 받았기 때문.


본인이 하루만에 끝내버린 일이 생기면, 창희의 일정도 하루로 고정이 되어 버리는거임.

본인 혼자 치고 달리면 창희가 지쳐 쓰러지는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


호카게의 타임리프 스킬이 어느덧 본인에게 적용된 상황이라

본인이 제시하는 일정에 D사는 군말없이 따라왔음.


그러다보니 항상 본인에게는 시간이 남아 돌았는데...

남은 시간에는 계속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연구했음. 티리엘 과장님의 코드는 이제 익숙하다 못해

본인과 한몸이 된양 당연한 코드가 되었는데.. 그럴수록 뭔가 부족한게 느껴져 아리송한 상태..


.........................

....................


이 시기에 아몬드 대리도 이직을 하게 되었음. 신기술 팀에서 텐서플로를 통한 AI 개발을 진행했고

부족한 자료나마..다행히 이 시기에 AI에대한 오픈 소스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성과를 낼 수 있던 시기였음. 우리가 상상했던 AI와 실제로 구현하는 AI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었음. 당시만해도 알파고 같은 뭔가 멋들어진 무언가를 상상했지만..


실제 이쪽 비전 분야에서 AI란 학습의 연속이었음.

AI에서 학습이 차지하는 비율이 거의 80%~90% 이상이었음. 즉, 완전 노가다. ㅋㅋㅋㅋ

AI라는게 바로 뭔가를 만들면 돌아가는 그런 구조가 아니었음. 


처음 식품공장에 도입되었는데, 일단 AI를 사용하기 위해 이미지가 필요했음.

그런 이미지를 수집하기 위해, 일단은 식품공장의 장비를 돌려 엄청나게 많은 이미지들을 '수집'해야 했음.

그리고 이 이미지들을 유형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했음.


이런 작업만 몇달이 걸렸던 것으로...


예를들어 5가지의 불량 유형이 있다면 유형별로 1만장 정도의 이미지를 모으고 분류해야했음.

이것도 그나마 적은 거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자세한 상황은 직접 본게 아니라 모르겠음 ㅋ

어쨌든 몇달의 노가다 작업 끝에 하나의 모델이 완성 되었고. 그걸 공장에 적용했을 때 

기존 검사로 95%의 정확도를 보이던 수치가 99%까지 정확도가 올라갔음. 


그러나 아무리 날고 기는 AI라도 고객사와 영업을 잘 만나야 함. 

고객사가 원하는건 100%...세상에 100퍼센트가 어딨나?

그걸 덜렁 받아들이는 '영업'...헬게이트를 연거임.


100퍼센트를 만들기 위해 다시 이미지를 수집해야 했음. 1%로 오검 처리가 되는 유형의 이미지를 모으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했음. 하루에 나올까 말까하는 1%의 이미지를 얻기위해 역시나 엄청난 시간을

갈아넣어야 했음. 1000개의 예외 이미지를 모으기 위해 몇달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가 없다는 것.


인터넷의 오픈 소스를 참고하여 만든 AI 수준으로는 완성도 높은 AI를 만들어 내는데 

우리같은 일반인들은 한계가 있었음. 결국 AI 적용의 취지. 식품공장에서 낭비되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도입한 AI가 오히려 사람과 시간/비용을 더욱 갈아넣아야 하는 상황이 된것.


AI에 대한 성과는 있었으나...'결과'는 예전과 다를바가 없는 상황으로 이 개발건은 중단 되었음.

100퍼센트를 약속한 영업 대리도 사직서를 내야했음.


한편, 아몬드가 AI에 시간을 투자한 목적은 따로 있었음. 무쌍이가 다니는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AI 솔루션으로 유명한

업체 였으니까. 사전에 AI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어 간다면 회사 업무에도 적응하기 좋으니..


무쌍이와 통풍이는 2달이나 3달에 한번씩 회사앞으로 찾아왔는데. 특히나 정이많은 무쌍이는 너무 자주와서

회사 임원들의 눈에 들키는 일도 많았고...ㅋ 회사 앞 커피숍에서 커피 먹다가 햄릿 이사, 비전총괄 상무랑 눈이 마주치는 등..

소문이 좋지 않게 났음. 


우리 인력들을 빼가기 위해 왔다고 ㅋㅋㅋ 

회사에 끝까지 복수하려고 저러는 것이라고..


어쨌든 그런 소문따위 신경 쓸 무쌍이가 아니기에..

무쌍이가 다녀가면 회사내 임원들은 본인을 불러 면담을 하는 패턴이 발생했음. ㅋㅋㅋ


그러다보니 창희도...무쌍이를 한번도 만나본적 없고 얘기한적도 없지만 불편해 했음.

같이 인사 해보자고 불러도 창희는 싫다고 했음. 혹시나 본인이 무쌍이쪽에 슉- 붙을까봐 걱정한듯 함.


눈치빠른 무쌍이는 그러고보니..연봉 협상 시즌이 다가오면 뻔질나게 회사앞으로 찾아오곤 했음. ㅋㅋㅋ

이런 고마운 친구가 어디있을까!? ㅋㅋㅋ

실제로 그가 본인을 배려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쌍이가 회사로 찾아오는 날은

본인이 햄릿 이사나 그외 관리자 급들과 트러블이 있는날. 


혹은 연봉협상 시즌 같은 날만 귀신같이 골라 찾아왔음.

그리고 보란듯 관리자들에게 본인과 함께 커피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돌아갔으니.. 


본인은 그가 본인을 위해 '고의' 적으로 얼굴도장을 찍고 간다고 볼 수 밖에 없었음.

그러다보니 이 회사에서 무쌍이는 '회사의 종말' 을 바라고 어떻게든 사람을 빼가려는

저승사자 같은 소문의 인물이 되었음.


무쌍: OO씨. 이제는 때가 됬어요. 이쪽으로 건너와요. 제가 OO씨 중국어 실력까지 쫙- 말해놨어요.

사장님도 꼭 데리고 와 달라고 하신단 말예욧!!!


나: 가고는 싶지만...부숴 버려야 할 놈들이 있어요..!!


무쌍: 아이참;; 이건 사실 대외비인데..!! 자세한건 말하면 안되지만..지금이 마지막 시기에요;;


아몬드: ?? 그래요?


나: 아몬드. 갈려면 빨리가. 나도 이제 큰 미련없어 여기. 부숴줄 놈들만 좀 손봐주고 ㅋㅋㅋㅋ 

저 비전총괄상무 한방 먹이기 전에는 못간다. 회사를 말아먹은 원흉 새퀴들 ㅡㅡ


아몬드: 그럼..무쌍이형. 저 면접 한번 보러갈 수 있을까요?


무쌍: 그래. 내가 부르면 와서 면접봐.


무쌍: OO씨. 잘생각해요. 이게 마지막 기회에요.


나: 음..생각해볼께요. 근데 아무래도 나랑은 맞지 않는것 같아요..ㅎ


무쌍: 뭐...아쉽지만..그래도 OO씨랑 일하면 재밌을것 같은데..


나: 우리가 재밌었던 이유는..장비 업계였기에 가능했을것 같아요. 그곳에서는 왠지 그렇게 안될것 같아..ㅎ


무쌍: ........


식품공장에 AI가 적용되는 과정을 보면서, 생각했었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본인이 대단한 수학적 지식을 가진것도 아니고..뭔가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성할 만한 인공지능적 지식이 전무한데..

따라 만드는 수준이라면 몰라도..앞서가며 개척해 나가기에는 본인의 적성과는 맞지 않은 곳이었음.


이 장비 업계에서는 내가 잘 할수 있는일이 있다. 그래서 재미있고. 

그런데 안정적인 무쌍이네 회사로가서..내가 잘 하지 못하는 분야를 일해야 한다면 과연 재미가 있을까..


그리고 AI 지식이 부족한 우리 장비업계 프로그래머를 과연 제대로 대우해 주면서 사용해줄까? 한국 회사도 아닌 외국계 회사가?

거기 다 박사 출신들 많다며...그것도 서울대...티리엘 과장의 박사 머리를 한번 경험해본 본인 입장에서는 ㅎㄷㄷ한 인력풀...


만화 '송곳'이 생각났음. 거기서 한국 관리자들이 외국인 오너들에게 받는 대접을 상상해 보았음.

거기에 우리는 '박사'도 아니지 않나.. 우린 그냥 '부품' 취급일텐데..


그렇기에, 눈치보며 몸사리는 용꼬리가 되기보다는, 내 마음껏 판단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뱀 대가리를 택하겠다..

본인은 마음을 굳혔고, 아몬드는 그렇게 떠나게 되었음.


언젠가...그럴일이 없어야 하겠지만...너희들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게 되어 낙오 되었을때..

그대들이 언제든 건너와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다..

너희들의 '보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

.......................


몇달 후, 무쌍이네 회사는 2000억에 이 영상처리 솔루션 업계에서 가장 거대한 회사로 합병 되었다는 얘길 듣게 되었음.

입사하며 연봉이 20% 올랐는데, 합병하며 다시 25%씩 올랐다는 얘길 들었음. 거기에 기존 회사 주식까지 직원들이 

스톡옵션을 받게되었으니...아몬드와 무쌍이는 단숨에 억대 연봉자가 되었음. (실제론 1억 조금 안되지만..아무튼!!)


이런 제길 ㅋㅋ 좀 더 나를 설득해 줬어야지!!! ㅋㅋㅋ


그런얘길 들을때 순수하게 기뻐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인데..

받은만큼 돌려줘야 할 부담이 얼마나 클지..


어쨌든 학사 페밀리들은 아몬드를 마지막으로 완전히 떠나갔음. 그리고 2명은 억대 연봉자. 

한명은 죽어가던 회사를 살린 프로그램팀 팀장으로써 다시 시작 한다는 사실이 본인을 더 기쁘게 만들어주었음.


외국계 기업으로 발돋움한 무쌍이네 회사는 몇년동안 기존직원들을 해고 하지 않는 조건으로

운영이 되었는데.. 약속한 몇 년이 지난 후 칼바람이 불어닥쳤음. 

수많은 직원들의 해고. 혹은 부서 뺑뺑이 돌리기....


무쌍이도, 아몬드도 예외가 아니었음. 기존의 잘 하던 일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업무들이 내려오는 경우가 주기적으로 벌어졌음. 못버티는 인원들은 스스로 나가고...

버티려고 해도 새로운 업무에 적응을 못하면 그 역시 해고 사유가 되는거 같았음.


[혹시나...무쌍이나 아몬드도 잘리면....다시 같이 하자고 해볼까...?]


하지만 아쉽게도..소설을 쓰는 지금까지도 무쌍이와 아몬드는 건재했음 ㅋㅋㅋ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잘려나가고 칼바람이 불어왔지만 무쌍이와 아몬드는 그 모든

폭풍속을 당당히 뚫고 지금도 잘 살아남아있음. 지금은 각자 다시 프로그래머 본업으로 돌아가 잘 지냄.

대단한 친구들임.


저 회사는 뺑뺑이를 돌리며 기존의 직원들 속에서 '사자' 나 '호랑이' 새끼를 

걸러 내려고 했던걸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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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잘나가는 예전 동료들을 보며 본인도 이제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것 같음.

이 알듯 말듯한...뭔가 프로그램에 대해 보일듯 말듯한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해 보겠다는 마음이었음.


그런 상태를 계속 고민해보며 느낀것은...아직까지 다양한 코드를 경험 해 보지 못했다는것.

이 회사의 코드는 누구보다도 많이 봐 왔으나, 결국은 스타일에 있어 이 회사의 '틀'이라는게 있음.

결국 본인이 경험한 코드의 '틀'은 회사와 티리엘 과장. 2개 밖에 경험하지 못한것.


이때부터는 더이상 코드를 열어보기 보단 외부로 연락을 많이 돌렸음.

무쌍이나, 통풍이, 그외 설비업계에 일하며 우연히 알게된 지인들. 대학교 친구들. 등등..

프로그래밍 업계에 종사하는 본인이 닿는 모든 인맥들을 추적해서 연락을 취해보기 시작했음.


우선은 통풍이. 이미 잘 나가는 팀장이 되어있는 통풍이에게 대뜸 요구했음.


나: 야. 니네회사 코드좀 보여줘라.


통풍: 응!? ㅋㅋ 산업 스파이냐? ㅋㅋ


나: ㅋㅋㅋㅋ 달라는건 아니고. 보여달라고. 내가 시간내서 찾아갈께.


통풍: 뭐 땜에 그러냐? 뭐 대단한건 없을텐데?


나: 구조를 좀 보고싶어. 내가 아는 회사코드 외에 다른 회사는 어떤 구조를 이루는지.


통풍: 나야 남는게 시간이니까. 너가 올수 있으면 와. 노트북 들고 만나면 되지.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일요일에는 카페에서 공부를 하기 보다는 

노트북을 짊어지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음. 타 회사 사람을 알게 모르게 연락해서

같이 커피숍에서 서로의 회사 코드를 보여주고...


함께 코드 리뷰를 하는 시간...어떤 목적으로 구조를 잡은 것이며, 잘된 사례와 실패한 사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음.


이 시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것 같음. 굳이 장비 업계가 아니라 분야를 넘어서 까지

C++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코드좀 보여달라고 매달렸던 기억임.


물론 가장큰 도움이 되었던건 통풍이였음. 

그는 수많은 회사를 거치며 보관하고 있던 각 회사들의 코드를 가지고 있었음.


거의 장비업계에 이름있다 하는 대부분의 회사들 코드는 다 훔쳐봤던것 같음.

그리고 생각보다 '특별한' 코드는 없다는 사실이 의외였음.


그리고 매번 스파게티 코드라고 무시하던 우리 회사 코드가 그래도 본인이 봤던

수많은 회사코드들 중에서 제법 상위권이라는 사실이 충격적 이었음. 확실히 사장님과 연구소장님이 대단한 사람들이긴 했음.

거기에 티리엘 과장님의 코드는 단연코 어떤 회사코드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그만의 설계가 있었음.


수많은 장비 코드들을 보며 알게 된게, 티리엘 과장의 코드 스타일은 이쪽 '설비 업계' 코드가 아니었음.

어찌보면 순수 소프트웨어 코드에 가깝다고 할까? 추상적인 개념과 상속, 가상함수 등등

다른 장비회사 코드에서는 찾기 힘든 프로그래밍 개념들이 많았음.


이미 나무랄데 없는 티리엘 과장의 코드가 왜 내 눈에는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까..

일단 첫번째, 그의 서브클래싱 방식으로 UI 컨트롤을 구성하는 방식은 불편했음. 주로 bmp 이미지를 사용해 왔는데

bmp 이미지나 아이콘은 '투명화'가 안되었음. 가끔 멋들어진 UI 디자인을 보면 약간의 반투명한 이미지가 신비감을 자아내는데

비트맵 이미지로는 투명화 표현이 안되었음. 일반인들이 프로그램을 본다면 디자인이 반이상은 먹고 들어가는데..ㅋ


두번째, 각각의 모듈들은 잘 구성 되어있었으나 티리엘 과장님 역시 설비업계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비에 대한

이해는 많이 떨어졌음. 좀더 범용적으로 크게 만들어야 할 파트들이 조각조각 나뉘어져 조립해 넣기 곤란한 경우도 있었음.

언제든 레고 블럭 쌓듯이 가져다 쓸 수 있는 모듈의 완성도가 떨어졌음.


세번째, 그의 내부적 비지니스 로직 속에는 뭔가 '올드'한 느낌이 들었음.

modern c++의 새로운 문법이 보이지 않았음. 물론 저걸 개발할 당시는 시대적 타이밍이 맞지 않았겠지..

아마도 끝없이 공부하는 티리엘 과장님이라면 지금쯤 modern c++ 문법으로 환골탈태 했을 것이리라..


책방에서 최신판 Modern c++ 서적을 여러개 구매하여 공부하기 시작했음. cpp refernce 사이트도 항시 체크하며

깊이있게 공부하고자 노력했음.


2019년도....새로운게 많이 보였음. push_back 만 있던 것들이 emplace_back으로 새로 생겼고, &&연산자의 추가와 constexpr 키워드.

가변인자 템플릿, range_based for loop, lock_guard, async 등등..방심하던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새로운 문법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있었음. 솔직히 좀 당황했음..


프로그래머로 산다는 것이..평생 공부를 해야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본인은 회사에서 이렇게 쓸데없는 정치질에, 기싸움 한다고.. 사람들 편이나 갈라놓으며 No.1이라고 정신승리 하며

시간 낭비 하는동안...

 

프로그램 기술은 저 혼자 저~~~만치 앞서 달려나가고 있었음.


[그래..이대로 반년만...아니..1년만...미친듯이 달려보자...낭비할 시간이 없어...]

 

 

***

 


이날부로 회사에 가서도 관리자들이 무언가 찝찝한 짓거릴 해도 

다 무시했음. 왠만한건 그냥 따라갔음. 회사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지만 평소라면 10을 할 것을 4나 5만 했음.

나머지 남은 시간은 공부하는데 모두 투자했음.


솔직히 4만 일해도 다른 이들보다는 훨씬 업무 양도 많았고 빨랐음. 왜냐면 모두가 설렁설렁 일하니까...ㅋㅋㅋ

다행인것은 업계 경기가 나빠져, 예전만큼 새로운 일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음.

타이밍이 아주 적절했음. 어찌보면 점점 암운이 드리워지는 이 업계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공부'로 털어버리고자

했을지도....


주말이면 여러 회사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코드 구걸을 하고 다녔음. 

본인이 사는 우물이 좁다 느꼈기에 어쩔수 없었음. 코드를 보여주는 사람들 중에는 쓰레기 코드를 들고와서

쎈척하는 허당 같은 부류들도 있었지만, 진지하게 성장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음.

간혹 코드보러 갔다가 강의를 해주고 오는 경우도...


산업 스파이 같은 짓이었지만, 본인이 보고자 한건 핵심 코어 코드가 아니라, 전반적인 코드의 '틀' 이었음.

솔직히 설비 프로그램에서 '코어'라고 해봤자 영상처리 알고리즘 말고 볼게 뭐있나..ㅋ


그러나 알고리즘은 이미 부족하지 않을만큼 쌓아왔음. 본인은 '형태'가 궁금했을 뿐.

그렇기에 코드를 살펴보는 시간은 30분을 넘기지 않았음. 어떤 코드는 열자 마자 닫아버리는 경우도 ㅋㅋㅋㅋ

보면 눈만 버릴 코드들...ㅋㅋ 어쨌든 불특정 다수에게 커피 조공을 바쳐가며 열심히 뛰어다녔음.


대학생활을 잘 하지 못했는데..프로그래머들은 대학 생활을 잘 했어야 한다는걸 깨달았음.

여러 분야에 진출한 많은 동문들을 통해 이럴때 도움 받기가 참 쉬움. 본인은 늘 놀던 친구들과만 놀았기에..

전혀 모르던 사람들을 대면하며 무안했던 경우가 많았음.


어쩔때는 OOO톡 오픈채팅방을 파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본인이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 심취하여 지식을 탐닉하는 동안 

창희는 열심히 달렸음.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게 본인이 4를 하며 발생되는 공백을 창희가 매꾸었다고 할까..?

예전 같았으면 항상 새로운 기능을 만들때는 본인이 우선으로 진행하고, 창희는 후발대로 나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본인이 뒤로 한걸음 빠지자, 창희가 전방으로 나서 일을 해나가기 시작했음.

그러다보니 어느순간 No.1의 칭호를 위협할 만큼 창희는 사내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음.

이젠 누가 뭐라해도 창희는 회사내에서 해결사 이자 무시못할 입지를 다지게 된것.


관리자들은 선을 어느정도 지켰음. 적어도 본인과 창희에게는 어떠한 '간섭'을 하지 않았음.

어쨌든 반년에 가까운 시간...회사는 조용했고..그럭저럭 돌아갔음.

왜냐면 일이 없었으니까...ㅋㅋㅋ 이때부터 회사 매출이 적자를 치기 시작했음.


2019년 매출 -90억.


회사로서는 큰일날 일이었지만, 워낙에 쌓아둔 돈이 많았기에 연말에 


'우리 내년엔 좀더 잘하자!!'


정도로 넘어갔음.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시간이 헛되진 않았는지..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드디어 본인 스스로 만족 할 만한 개발 구조(플랫폼)을 만드는데 성공(?)했음.

불행한건...이 코드를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었다는것...


그렇기에 이래저래 고민을 참 많이 했던것 같음. 당장에 써보고 싶은데..이걸 함부로 풀기엔

과연 이게 맞을까? 하는 생각..


그러던 어느날..그래..나는 너무 먼곳을 돌았던것 같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가장 두려운 사람을 찾아가야 하지 않겠나..

당장에 내 대학교 가장 절친 중에 우리나라 소프트웨어라면 No.1이라는 개발 회사에 시니어로 일하는 친구가 있었음.

그 친구가 개발하는 코드는 우리나라 최대규모 프로그램 아닌가!!


이전엔 고작 이런 장비업계 따위 코드로...찾아가서 좀 보여달라기엔

그레듀 에이트 주제에 그랜드 마스터에게 한 수 청하는 기분이라 힘들었음..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용기를 내어 친구를 찾아갔음. 본인은 재수생이라 1살 많았기에.. 


나: 코드 내놔! ㅋㅋ


친구: 에이;;형;; 누구 회사 잘리고 송사 휘말리게 할 일 있어요? ㅋㅋ


나: 달라는게 아니라. 보여달라고.


친구: 왜요;; 왜 볼라는 건데요;


나: 내가 최근에 나름 개발 플랫폼을 하나 구상한게 있어. 근데 이걸 비교 해 볼 만한 대상이 없더란거지..

근데 니가 다니는 회사는 다르잖아? 대한민국 No.1 아니냐!


친구: 흠....진짜 눈으로 보기만 할...꺼..죠?? ㅋㅋ


나: 어!! 제발!!!


당시 그 회사는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를 허용해 주었기에 친구의 방은 회사나 마찬가지였음.

그렇게 조심스레 그 엄청난 코드를 열어보았음. 


그리고 뭔가 익숙함을 느끼게 되었음...


[코..코드가...구조가...형태가...내 플랫폼과 거의 흡사하다...]


만류귀종(萬流歸宗)

모든 물줄기와 수없이 많은 물결 그리고 흐름이 결국 바다에 가서 하나가 된다는 말.


티리엘 과장님..극의에 이르면 이렇게 하나로 만나는 것일까요..?

물론 본인은 편협한 '장비' 하나일 뿐이고, 친구의 코드는 거대했음. 형광등과 반딧불의 차이일까?

그러나 상관 없었음. 본인이 추구한 것은 '규모'가 아닌 '형태'.


이 '형태'라면 지금 이 코드와 같이 거대한 세상을 담아낼 수 있다..! 이미 담아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옆에서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보는 친구에게 대략적인 코드 분석을 말해보았음.


나: 여기 싱글톤 형태를 취한걸 봤을 때, OOO에 XXX을 하기 위한 거겠구만?


친구: !?!?


나: 음..여기에 커맨트 패턴이 들어간걸 보니 OOOO에 XXX하는 형식으로 설계가 될듯 하네.


친구: 잉!?!? 형. 여기만 봤는데 그런 전체적인게 보여요??


나: 어. 내가 항상 고민하던 것들 이거든...


친구: 와...학교 다닐땐 그렇게 공부 안하더니...언제 이렇게 실력이 늘으셨데? ㅋㅋㅋㅋ

당장 여기 입사해서 일 해도 되겠는데?


나: 그정도는 아니지...ㅋㅋ 고맙다 동생.


친구: 열심히 해요.


그날 가슴속에 뿌듯함을 안고 집에와 잠을 청했음.



***


꿈을 꾸었음. 잠이든 내 모습을 바라보는 꿈...

 

코에서 희뿌연 안개...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 기운이 뭉쳐 세 송이의 꽃이 피어납니다...삼화취정(三花聚頂)

몸을 뒤척일때 마다 5색의 고리가 일렁입니다...오기조원(五氣朝元)


오래된 침대에 있는 벼룩 때문인지 온몸이 가렵습니다.

벅벅 긁어내는데 무언가 개운해지는 느낌입니다..

드러운 각질들이 모두 벗겨지는 듯 합니다..


새로운 경지로 환골탈태 합니다...



현묘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현경(玄境)]


[불필요한 잡다 버프 효과들이 모두 사라집니다.]


업적이 불필요 합니다..

명성이 의미 없습니다.....

경력이 무의미 합니다......

실력은 말할 필요 없습니다...

무쌍이는 억대 연봉 천상계로 떠났습니다..

파티고 뭐고 정치고 다 버렸습니다...혼자서 다 씹어먹습니다.



회사내 본인 스텟



현경(玄境): 코드를 내 의지대로 어떠한 형태로든 자유롭게 개발 가능합니다.


항마력: (가족같은 회사를 버텼습니다. 공격력으로 커버합니다.)


인품: 받은만큼 돌려줌



스킬


- 운동장 부수기 : 실세들 사이에 균열(이간질) 이벤트를 발생 시킬 수 있습니다.


- 명불허전: 분노한 고객사에 '본인'이름 세글자만 들이대면 분노가 사라짐


- 타임리프: 고객사의 개발요구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



2020년...새해가 밝아오고 있었음. 4.2년차의 시작...


34살이 되었음.



2020년 한 해를 표현 하자면 하나 뿐.


['지존'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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